유라비아(Eurabia) 현상에 대한 선교적 이해 - A Missi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Eurabia Phenomenon -

며칠 전 벨기에의 수도요 EU의 수도인 브뤼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미 지난해 연말에 파리 테러를 통해 놀랐던 유럽인들은 정말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한다. 지난 2월 말 유럽과 중동의 선교사와 교역자들이 모여서 <유럽-중동 이주민/난민 파리 포럼>을 가졌었는데, 여기서 리트비아 선교사 신성주 목사가 특강을 하였다. 본 논문은 신성주 선교사의 파리 포럼 특강 내용의 바탕이 된 논문이다. 신성주 선교사는 유럽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코닷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며 이 논문을 보내왔다. 유럽은 더 이상 유럽이 아니라 '유럽+아라비아=유라비아'가 되었다는 신 선교사의 논문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 편집장 주

   
▲ 파리포럼 후 단체사진

 

유라비아(Eurabia) 현상에 대한 선교적 이해  

- A Missi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Eurabia Phenomenon -

▲ 신성주 선교사(선교학박사)

 

"Europe is no longer Europe, it is Eurabia, a colony of Islam, where the Islamic invasion does not proceed only in a physical sense, but also in a mental and cultural sense." - Oriana Fallaci.

들어가면서

1996년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72008)이 세상에 내놓은 책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은1) 냉전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이론으로써 세계에 경각심을 주었다. 그는 냉전이후 국제정치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인은 문화적(cultural), 종교적(religious) 정체성에서 오는 충돌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헌팅톤 박사는 지구상의 가능성 있는 여러 문명충돌 지역들을 다양한 근거들을 가지고 기술하였는데, 2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는 그의 예견이 정확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헌팅턴 박사의 문명충돌에 대한 최대의 관심지역은 유럽(Europe)이었다. 오늘날 유럽은 근본주의 과격 무슬림 테러로 인해 이슬람공포증’ (Islamophobia)이 날로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고, 심지어는 반이슬람과 반이민정책을 주장하는 극우 운동 그룹들이 등장하여 맞불을 놓고 있기도 하다. 최근 소위 IS(Islamic State)의 출현은 세계의 뉴스를 독점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중동과 일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려하는 것은 그곳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과격주의 전사들이 유럽으로 잠입, 유럽 세력과 연계하여 '유럽 지하드'(Jihad) 운동에 불을 당기는 것이다. 그들이 난민으로 위장하여 난민선을 타고 유럽으로 잠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EU국가들은 그 대비에 힘을 쏟았으나, 지난해 1월에 발생한 '샤를리 엡도' 사의 총격난사 사건과 1213일 발생한 '파리 공격'(Paris Attacks)은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사건이었다. 최근 유럽은 국경을 다시 철저히 통제하고, 범죄한 이주민들을 추방하며, 서류가 갖춰지지 않은 난민들을 되돌려 보내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럽에서의 이슬람 운동을 선교적으로 진단해 보는 이 글의 주된 목적은 다중적이다. 첫째는, 유럽의 유라비아(Eurabia)화 현상에 대해 살펴보고; 둘째는, 유럽 이슬람의 부흥을 촉진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셋째는, 이러한 유럽을 선교적 시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유럽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분명히 할 뿐 아니라, 다문화정책을 채택하여 이슬람운동의 발판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메세지를 주고자 한다.

I. 유럽의 유라비아(Eurabia) () 현상

A. 유라비아란?

'유라비아'(Eurabia)란 말은 영어의 두 단어 'Europe''Arabia'의 합성어이다. 그 의미는 유럽에서 아랍과 이슬람의 영향력이 성장하여 유럽이 아랍화(이슬람화) 혹은 '친아랍화' 되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정치적인 신조어이다. 특히, 이 용어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집트 출생이지만 아랍-이스라엘의 수에즈 전쟁(1956)으로 인해 이주하여 영국시민이 된 유대계 저술가 Bat Ye'or의 책 Eurabia: The Euro-Arab Axis(2005)가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이미 1970년대 중반에 프랑스에서 등장하였었는데, 소위 "유라비아 위원회" (Eurabia Committee)라고 불린 <아랍세계와의 우호협력을 위한 유럽위원회>(the European Committee for Coordination of Friendship Associations with the Arab World)의 뉴스레터 타이틀이기도 하였다.2) 이 때만 해도 '유라비아'는 유럽과 아랍의 협력이라는 중도적 입장의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유럽의 아랍화'라는 부정적인 용어로 고착되었다.

B. 역사적 배경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선택과 <드골>의 야망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재건하는 데 힘을 쏟은 사람은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이었다. 1945년 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처칠 수상, 러시아의 스탈린 서기장과 얄타(Yalta)에서 만나 유럽의 미래를 위한 3국 회담을 가졌다. 이 때 프랑스는 회담에서 제외되었는데, 제국 프랑스와 드골의 자존심은 많이 상하였다. 이후 약 15년 동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이르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됨으로써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과 파워도 많이 약화되었다. 드골을 따르는 정치가들은 국제정치에서의 프랑스의 위상강화를 위하여 두 가지 전략을 채택하였다. 하나는, 프랑스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유럽을 통합하여 미국과 쏘련의 파워에 맞설 하나의 큰 유럽을 구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랍권과 아프리카 무슬림세계와의 동맹을 통하여 국제 정치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었다.3) 그래서, 프랑스는 아랍정책을 위하여 1970년에 <유로-아랍 대화>(the Euro-Arab Dialogue, EAD)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하나의 통합된 유럽을 만드는 드골의 위대한 야망은 전통적으로 가장 라이벌이요 적대관계였던 서독(West Germany)과의 화해로부터 시작하였다. 1951, 프랑스와 서독은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6개국이 '파리협약'(the Treaty of Paris)을 맺고, 유럽 경제공동체의 기초가 된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the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the 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유럽원자에너지공동체>(the 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EURATOM)를 창설하여 유럽 통합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1973년에는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가 가입하여 9개국으로 늘어난 이래로 점점 확장하여 201528개국의 회원국을 가진 <유럽연합>(EU)이 되어 국제정치의 한 축이 되었다. 드골의 꿈은 거의 이루어진 듯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서 오늘의 유럽은 아랍과의 밀월로 인한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학자들은 모두 한 세대만 더 지나면 전통적 유럽은 사라지고, 이슬람화된 새유럽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C. 유라비아를 향하여

오늘날 유럽이 이슬람화로 인해 고통받게 된 것에는 EU가 취해온 일련의 정책적 과정들에 기인하고 있으며, 그 정책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 유류파동(1973) 이후 친-아랍 정책의 도구가 된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ies)

이집트와 시리아는 소련의 도움을 입어 1973년에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여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을 일으켰으나,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만다. 그러자 아랍동맹국들은 <유류파동>(Oil Schock)을 일으켜 원유를 무기로 삼아 유럽이 아랍친화적(Pro-Arabs)이 되도록 하는 작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원유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중동원유에 의존하는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1970년에 창설된 The Euro-Arab Dialogue(EAD)를 통해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에는 석유를 더 많이 공급해 주는 것을 댓가로 친-아랍(pro-Arab), -팔레스타인 (pro-Palestine), -(anti-America), -이스라엘(anti-Israel) 정책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73116, EEC 9개국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3가지 결정을 발표하였는데, 1) 무력으로 땅을 점령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2) 이스라엘은 1949년 국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3) 중동평화를 위하여 팔레스틴의 법적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EAD1974년에 아라파트(Arafat)가 이끄는 <팔레스틴해방기구>(PLO)를 합법화하였고, 아라파트는 그 해 11월에 UN에서 대표연설을 하게 된다. 1975년에는 <유로-아랍 협력을 위한 의회 연합>(the Parliamentary Association for Euro-Arab Cooperation, PAEAC)이 결성되어 유럽공동체(EC)EAD의 정책들을 공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유럽은 오일경제와 국제정치에서의 영향력을 가지고, 아랍동맹은 유럽을 우군으로 만들어 반미-반이스라엘, 친아랍-친팔레스틴 정책을 유도하는 효과를 누려왔다. 이러한 유럽과 아랍연맹의 정치-경제적 정책 연합은 1970년대 이후 약 30여년간의 국제정치의 현실이 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유럽은 유럽 내에서 아랍의 영향력을 키워주고 반미주의, 반유대주의를 싹틔우는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아랍세계의 유럽비전 구체화: 문화적 침투(invasion of Arab culture)

유럽공동체와 정치-경제 영역에서 상당한 우호협력을 이루어 낸 아랍연맹은 EAD를 통하여 더 구체적인 유럽비전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유럽 문화 속으로의 침투 전략이었는데, 순진한 유럽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EAD"문화-문명 영역에서의 협력"(Coorperation in the fields of culture and civilization)이라는 분과를 통하여 유럽과 아랍 문명이 더 가까워지는 것을 강조하였다.4)

197567-8일간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서 열린 PAEAC회의는 유럽이 문화적으로 '유라비아 현상'으로 가게 하는 중요한 실책을 범한다. 그것은 유럽의 발전에는 아랍 문화(Arab culture)가 역사적으로 기여를 하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과 함께 유럽 나라들은 여전히 아랍 문화로부터의 기여 - 특히 인간적 가치 영역에서- 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5) 더우기, PAEAC은 유럽인들을 향하여 더 심각한 "패악"을 저질렀는데, 그들은 유럽 각국 정부들에게 아랍 이민자들을 향하여 더 우호적인 환경들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또 유럽에서 아랍의 문화와 종교(이슬람)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들과 친선그룹들에게 아랍 세계에 대한 공공여론을 더 좋게 진전시켜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6)

유로-아랍 세미나(Euro-Arab Seminars), 1977.

아랍 문화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길을 공적으로 터준 것은 '유로-아랍 세미나'를 통해서 였다. 1977328-30일간 <베니스 대학>에서 열린 그 첫 세미나 주제는 "유럽내에서 아랍의 언어-문학 문명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위한 협력의 방법들과 형태들"(Means and Forms of Coorperation for the Diffusion in Europe of Knowledge of Arabic Language and Literary Civilization)이었다. 그 결과, 유럽의 대학과 도시들에 <유로-아랍 문화센터>를 설립하는 것과 유럽의 대학들과 연구기관들이 아랍어와 아랍-이슬람 문화를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것 뿐 만 아니라, 아랍인 전문가들이 직접 와서 가르칠 수 있도록 결정하였다. 이러한 교류 협력은 1983년 합부르그 세미나를 통해서 더 심화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아랍(이슬람)의 선교전략인 '다와'(da'wa)를 유럽이 정책적으로 수용한 것과 같은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Bat Ye'or에 의하면, 당시 EU는 고집세고 처리하기 어려운 아랍의 진면목을 대면하기보다는 그들이 '상상하는'(imaginary) 아랍 세계를 그리면서 유럽식 대화 국면을 취하였는데 그들은 참으로 눈 뜬 '장님'(blindness)들이었다고 지적하였다.7)

1984. 3. 30. EU의회는 EEC와 아랍연맹이 공동출자하여 Euro-Arab University를 스페인에 설립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자, 1994년에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The EU-Arab School of Management>를 설립하였다. 그라나다는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했던 옛 <안달루스>(Al-Andalus) 왕국을 최후까지(1492) 지켰던 마지막 보루였던 The Emirate of Granada의 수도로써, 유명한 <알함브라>(Alhambra) 궁전이 있는 곳이며, 아랍세계가 가장 회복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하지만, EU가 아랍세계에 설립한 교육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이러한 유로-아랍 정책 동맹의 결과로 지난 약 30여년간 1) 상업-경제 교환, 2) 아랍인들의 유럽 이주, 3) 유럽 정치-문화적 정책들은 아랍과의 연계 속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적인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오늘날 가장 골치아프고 과격하고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전체주의적 하부문화(Islamic totalitarian subculture)가 형성되게 하였다. 헬라와 로마, 유대와 기독교적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유럽은 아랍정책에 있어서 유럽 내에서의 아랍문화를 심는 길을 터주고 강화시켜 주었지만, 유럽적 가치는 깡그리 내팽개쳐 버렸다. 이는 실로 "유럽의 배신"(the betrayal of Europe)이었다.8) 실로, 프랑스와 서구의 정치력 확대를 위해 추구한 드골의 전략은 오늘의 유럽을 이 지경으로 만들게 될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D. 점증하는 유라비아 현상: '디미튜드'(Dhimmitude) 유럽

유럽의 유라비아 현상은 '디미튜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슬람의 지하드(jihad) 개념은 '인피델' (infidels)의 땅 즉, 비무슬림들의 땅을 3종류로 분류한다. 그것은,

첫째, '다르 알 하브'('dar al-harb')인데, 이슬람의 우월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항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이 곳의 사람들을 '하르비스'(harbis)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비무슬림 세계는 모두 여기에 속하며, 강력한 지하드 운동의 대상들이다.

둘째, '다르 알-'('dar al-sulh')인데, 완전히 정복하기에는 이슬람의 힘이 아직 부족하지만 조공이나 특별세금을 받으면서 자치를 인정해 주는 땅이다. 지하드 운동이 절반 이상 성공한 땅이다.9)

셋째, '다르 알-이슬람'('dar al-Islam')인데, 이슬람에게 정복당하여 그들의 '보호' 아래 놓인 땅이다. 이러한 땅을 '디미튜드' (dhimmitude)라 부른다. 지하드가 완전히 성공한 땅이다. 이 곳의 백성들을 '디미스'(dhimmis)라 한다. 유럽에서 이룩한 이슬람 디미튜드의 모델은 과거 이베리아 반도에서 꽃피운 이슬람 제국 <알 안달루스>왕국(Al-Andalus, 711-1492)인데, 아랍은 이 왕국의 회복을 꿈꾸고 있다.10)

'디미튜드'란 그 땅에 적용된 이슬람 법제의 정도가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1991년 가을, <유럽위원회 의원총회>(the Parliamentary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는 이슬람 문명이 유럽문명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확인해 주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디미튜드' 유럽의 모습이었다. , 그 총회는, 1) 이슬람이 유럽문명과 유럽인들의 일상 생활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었지만, 2) 이슬람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3) 이슬람의 가치관들은 유럽이 더 낳은 미래와 삶의 가치를 만드는데 문화, 경제, 과학, 사회 영역들에서 광범위하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이것은 유럽 다문화주의가 유럽의 이슬람화에 고속도로를 닦아준 것과 같았다.11) 유럽의 정책입안자들은 그러한 것들이 결국 유럽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되돌아 올 줄은 아무도 내다보지 못하였다.

E. Dhimmitude의 구체적 징조들(signs)

Bat Ye'or는 다음의 몇 가지들을 디미튜드의 징조들로 제시한다.12) 다문화정책을 취하는 한국 사회에도 교훈이 된다.

첫째는, 자기정체성을 부인하는 현상이다(the destruction of the self). 유럽은 천 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그들의 유대적-기독교적 자기 정체성을 버렸다. 이것은 이슬람이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영향을 부인하는 것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둘째는, 역사의 제거이다(the elimination of history). '유라비안들'(Eurabians), 즉 친아랍적 인사들은 아랍의 주장대로 이슬람 확장의 역사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진행되어왔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과거 이베리아 반도와 발칸반도를 점령할 때 이슬람은 대량학살과 노예화, 전쟁 포로들의 참수의 광란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셋째는, 유럽인의 열세를 인정하는 것이다(Acknowledgment of European inferiority). 많은 유라비안 정치가들과 예술가들은 중세시대 아랍의 예술과 과학, 종교적 관용 등은 유럽을 능가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는, 자책감과 자기격하 현상이다(Self-guilt and self-abasement). 유럽은 수 십년 동안 무슬림 세계에서 자행되는 인권문제,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대해서도 샤리아의 신성모독죄에 대해 복종하는 것처럼 침묵을 지켜 왔다. 아랍이 유럽의 십자군운동과 제국주의 시절의 식민지화를 공격하면 유럽은 죄의식을 가지고 사과한다. 이것을 유럽의 '죄책감문화'(guilt-culture)라 하는데, 유럽은 스스로 자기를 격하하고 있다. 아랍은 동서로마 제국이 일구어 온 기독교 지역들을 칼로 정복하였고, 기독교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여 700여년을 유린했으면서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다섯째, 불균형이다(Asymmetry). 유럽에서 무슬림들은 그들 종교활동을 위해 많은 양보와 특권, 후원들을 얻어내었지만, 아랍세계에서는 이슬람 외의 종교들에 대한 특혜는 없으며, 민주주의 가치 또한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아랍에서 유럽으로의 이민자는 물밀듯 몰려들고 있지만, 타종교를 가진 유럽인들은 아랍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섯째, 아랍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대륙의 모습이다(a tributary continent). 이슬람에 정복당한 나라는 이슬람으로 개종치 않으면 비개종자 인두세(poll tax)를 내야 살 수 있었다. 오늘날 EU는 아랍 나라들에 많은 액수의 돈을 융자해 주었고, 또 아랍권에 투자들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테러 조직들이나 테러지원국들에 대해 취한 불리한 정책들은 없었다.

일곱째, 깜짝 놀라고 겁먹은 대륙이다(a frightened continent). 오늘날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이 화날까봐 잔뜩 겁을 먹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아랍학자 작크 베르크(Jacques Berque)는 말하기를, "아랍 세계의 겸손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사치품과 같다"고 하였다.

여덟째, 증오의 문화이다(a culture of hate). 유럽은 점령당하고 있는 지하드의 땅이어서 증오의 말들 (hate speech)과 테러 문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유럽은 이슬람의 공포 아래 놓여있다.

아홉째, 아랍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현상이다(the agents). 앞에서 보아왔듯이, 유럽의 정책입안자들과 진보좌파 지식인들, 그리고 자유주의 종교인들 등은 반미, 반이스라엘, 친아랍, 친팔레스타인 정책과 문화확산에 앞장서 왔다. 그들은 유럽인들의 공적인 영역에서 하나님(God)과 기독교 가치들을 추방해 버렸는 데, 그것은 무슬림들이 지하드를 통해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제거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아직도 많은 평범한 유럽의 시민들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반감과 저항감을 가지고 있지만, 대항하기에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이슬람공포증만 키우고 있다.

II. 유라비아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A. 다문화주의란?

유라비아 현상을 촉진시킨 것은 유럽의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정책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13) 다문화주의는 한 나라 안에서 단 하나의 문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다른 문화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는 이념 혹은 정책이며14), “한 사회 안에서 민족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다양한 민족적 배경들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들을 배우도록 격려하는 철학적 정신이다.15)

여기에는 묘사적(descriptive) 개념과 규범적(normative) 개념이 있다. 우선, ‘묘사적사용이라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단순한 사실(fact)을 지칭하는 말이다. , 어떤 사회나 조직이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상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반면에, ‘규범적사용이라는 것은 그러한 현상을 단순히 지칭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이 한 사회 혹은 조직 안에 뿌리내리도록 권장하고, 촉진하며, 제도화하는 이념(ideology) 혹은 정책(policy)을 말한다.16)

이러한 이념들이나 정책들은 나라마다 다양한 모습을 띄며 나타난다. 어떤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에 대하여 존중심(respect)을 가지도록 권장하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을 만든다. 이러한 경우, 기존문화(host culture)로의 동화’(assimilation), 적응’ (accommodation), ‘통합’ (integration), 혹은 용광로’(melting pot) 개념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야채들이 어우러진 살라드 그릇’(salad bowl)이나 문화적 모자이크’(cultural mosaic)와 같다고 보겠다.17)

윌 킴맄카(Will Kymlicka)에 의하면18), 묘사적 다문화주의의 키워드는 축제(celebration)에 해당하고, 규범적 다문화주의는 시민화(citizenization)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상들, 음식들, 음악(혹은 예술)들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러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로 하여금 혹은 그들과 함께 나라를 세워가는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국가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19)

B. 유럽 다문화주의의 역사적 배경

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

2차 세계대전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면서 유럽 경제의 회복과 성장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였다. 유럽인들은 그들이 스스로 하기 힘든 영역에서 대신 일해 줄 일꾼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로서의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동기가 되었다.

미국의 영향: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미국의 성공적인 모델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나라들로부터 모여든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은 소위 용광로”(melting-pot) 문화를 이룩하여 더 강력한 나라로 발전하였고, 유럽적 뿌리(European root)를 가진 나라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새로운 글로벌적”(global) 국가로 변모하였다. 유럽은 이러한 미국의 다문화주의 정책의 성공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 정책을 수입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용광로 문화와는 달리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로부터 온 많은 이민자들이 기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함으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들에 봉착하기 시작하였다.

문화적 정체성 위기와 진보-좌파 정치인들

유럽이 다문화주의로 가게 된 데에는 정치적 좌파들(leftists)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계급투쟁을 통한 유럽의 변혁에 실패한 소련시대의 'hard-Marxism'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사상적 방법론인 'soft-Marxism'은 유럽 좌파들(leftists)의 사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20) 그들은 '가난, 억압, 소외'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점령하여 오늘날 최대의 시대적 가치로 부상한 인권’(human rights) 문제와 연계시켜 거부하기 어려운 새로운 '이데올로기'(ideology)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유럽좌파들은 그들의 정치적 라이벌들인 보수적 우파 정치인들을 무찌르고, 유럽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반인종주의"(anti-racism)를 내 걸고 다문화주의 정책과 대량이민 정책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그들은 인권’(human rights)을 기초로 하여 소수 이민자들의 문화와 가치를 무기로 삼아 주류사회의 문화와 가치에 도전하여 변화시키는데 힘을 다하였다. 그로인해 유럽의 도덕적 가치들과 문화적 정체성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21)

소수자 인권법과 차별금지법

2000년에 제정된 <EU기본권헌장>(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of the EU)의 제3장은 <평등법> (Equality)에 관한 것인데, 21조에 <차별금지법>(Non-discrimination)이 적시되어 있다. , 인종, 피부색, 민족, 사회계층, 언어, 종교/신앙, 의견차이, 소수민족, 재산, 출생, 장애인, 나이 등에 기초한 어떠한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제22조에서는 문화, 종교, 및 언어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무슬람 이주자들에 대해서도 평등한 인권을 적용하여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 주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었어도 이주무슬림들은 기존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 유럽적 가치에 통합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슬람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지하드'(Jihad)를 부르짖고 있다. 오늘날 유럽 무슬림들은 '인권 지하드'(human right jihad)를 최고의 전략무기로 삼고, '이민 지하드'(immigration jihad)로 공략하고 있다.

C. 유럽 다문화주의의 결과

무슬림 이민자들의 급증: 무슬림들(Muslims)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이질문화 그룹이다. 미국의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행한 지구촌 무슬림의 미래”(The Future of the Global Muslim Population)라는 연구에 의하면(2010), 오늘날 지구촌 인구 유입의 68.5%가 무슬림들이다. 2010년 한 해에 프랑스는 66,000, 스페인은 70,000, 영국은 64,000명의 이주를 예상하였고, 2030년에는 유럽의 10여개 나라에서 무슬림 인구가 10%를 넘어설 것이라 하였다.22) 2015년 한 해에 EU에 도착한 난민들이 110만 명에 이르고, 그 해 독일에 이주한 무슬림들만 해도 70만 명이며, 독일 무슬림은 이제 600여만 명에 이른다.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신생아 등록 이름들 중 톱 세븐(Top 7)이 모두 무슬림 이름들이다.23) 실로, '이민 지하드'(immigration jihad)를 실감케 하는 통계이다.

'No-Go' Zone의 증가: 유럽의 큰 도시들(파리, 런던, 버밍햄, 루톤, 브뤼셀, 말모, )에는 지역 경찰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무슬림 집단거주지역들이 많이 있다. 소위 -고 존’(‘No-Go’ Zones)인데, 프랑스 도시들에만도 751 군데가 있다.24)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지역들을 예민한 지역들’("Sensitive Urban Zones")로 분류하여 백인들과 비무슬림인들에게는 들어가기 위험한 지역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인 작가 구이 밀리에르(Guy Milliere)는 이러한 지역들에서 근무하는 그 지역의 공권력과 정치인들 및 행정공무원들 조차도 그 지역 안에서는 살 수 없어 멀리 다른 곳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지역들은 경찰들과 소방대는 물론 의사들과 앰뷸런스조차도 들어가지 않는 지역들이다. 이러한 지역들에는 악덕 마약거래업자들과 갱들 그리고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인 이맘들(imams)의 세상이며, 이러한 지역들은 해당 국가의 법보다 이슬람의 샤리아 법’ (Sharia law)이 더 우선적이다. 그래서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비공식적인 작은 주(micro states)와 같다 고 하였다.25) 그러한 지역은 이제 군대(army)를 보내지 않으면 치안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때가 곧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유럽의 무슬림들이 모두 다 과격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이슬람 공동체는 그 자체로 과격주의자들의 은신처요, 자금출처이며, 과격주의 이론가들의 활동무대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전수되고 확산되는 곳이다.

테러리즘: 20019/11 사건은 유럽의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드리드(Madrid) 폭탄테러 사건(2004)과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2005)는 모두 무슬림 이주자들이 자행하였다.26) 런던 남쪽 울위치(Woolwich) 시에서 대낮에 25세의 병사 리 릭비(Lee Rigby)는 길을 가다가 두 명의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였고 목이 잘렸다(2013. 5. 22). 피묻은 칼을 손에 들고 모여든 시민들과 카메라맨들 앞에서 떠들고 외치는 장면이 전세계로 보도되었다. 덴마크의 법무장관 모르텐 보드스코브(Morten Bodskov), 무슬림들에 의한 방화 사건들이 100여 건이 넘지만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킬까봐 쉬쉬하면서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고 폭로하였다(2013.6.23).

유럽에서의 지하드(Jihad) 운동: ()무슬림(Kafirs)을 향한 투쟁 혹은 전쟁’27) 을 뜻하는 지하드’ (Jihad)는 소위 성전’(holy war) 이라고 불린다. 이슬람의 샤리아 법’(Sharia law)은 모든 무슬림들에게 지구상의 모든 비()무슬림들이 샤리아에 복종하는 그 날까지 싸우라고 가르친다 (코란.2:216, 4:89).28)지하드를 무슬림의 의무로 가르치는 이슬람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서 강력한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의 이데올로기 (ideology)가 되었다.

200256, 화란의 우파 정치지도자, 사회학자, 교수였던 핌 포툰(Pim Fortuyn, 19482002)이 암살되었다. 학자였던 포툰은 스스로 우파 정당을 세워 화란의 다문화주의 정책(Multiculturalism)과 이슬람 이민을 촉진하는 정책들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그를 암살한 모로코 출신 26세의 모하메드는 포툰의 몸에 '지하드'(Jihad)라는 단어를 남겼다. 그 후 2004112, 화란의 영화제작자요 정치평론가였던 데오 반 고흐(Theo van Gogh, 1957-2004) 역시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반 고흐는 핌 포툰(Pim Fortuyn)의 지지자였는데, 소말리아 출신 작가 아이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와 함께 이슬람의 여성비하를 비판하는 <복종(Submission)>이라는 필름을 만들었다. 이를 본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그를 암살하였고, 그들의 암살대상 1순위가 된 아이얀 히르시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신변 보호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화란에서는 테러 위협의 수위를 4단계중 최상위 단계인 치명적’(critical) 단계 아래인 두 번째 단계로 격상하였다. 정부에 의하면, 화란의 과격이슬람주의자들 중에는 지하드를 하기 위해 자진해서 시리아 내전에 싸우러 간 사람들(Jihadist travelers)이 많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 뒤에는 더 호전적이 될 뿐 아니라, 지하드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게 됨으로써(traumatized) 더 폭력화되고, 유럽에서의 지하드 운동에 헌신하게 되는 데, 이로 인해 화란내의 테러 위협이 훨씬 증가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스크와 근본주의 이맘들: 유럽의 모스크들은 교도소들(prisons)과 함께 테러와 지하드를 가르치고 과격주의자들을 모집하는 장소라는 보고서는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스웨덴 녹색당 정치인인 대니얼 아로스피데(Daniel Arrospide)는 수도 스톡홀름에서 가장 큰 모스크(the Södermalm mosque)6개월 동안 신도로 위장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는 그 동안 스웨덴 무슬림들을 성전’(holy war)을 위하여 모집하는 것을 10여 차례나 직접 목격하였다. 20131011, 유로뉴스(the EuropeNews)도 모스크들에서 지하드와 과격주위 테러를 위해 자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III. 다문화주의의 반격(Multicultural Backlash)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현상들을 다문화주의의 반격'(backlash)이라 부른다. 다문화주의는 유럽이 선택한 진정한 '자살폭탄'인지도 모르는데, 필자는 이것을 다문화주의의 덫(trap)’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떠오르는 프랑스의 우파지도자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은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다문화주의는 왜(why) 그리고 어떤(what)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오는가?

A. 자학적 관용과 문화적 자살(Cultural Suicide)

유럽인들은 문화적 다양성자체를 나쁜 개념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 다양성으로 인해 그들 자신의 고유한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또 받아들이지 않는 이주자들을 언제까지 일방적으로 이해해 주고, 관용을 베풀고, 복지혜택을 주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유럽인들의 다문화적 관용을 자학적 관용(self-inflicted abuse to tolerance)이라 하였고, 또 그것이 독특한 한 종교(이슬람)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되어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계속 관용하는 다문화정책은 곧 문화적 자살(cultural suicide) 정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B. 사회적 신뢰도에 악영향

하바드 대학 정치학 교수 로버트 풋넘(Robert D. Putnam)은 다문화주의가 사회적 신뢰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약 10년에 걸쳐 연구 조사 하였다. 그 결과, 인종적 다양성을 더 많이 나타내는 공동체일수록 사회적 신뢰도는 더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종족적 다양성이 두드러진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도시의 시장(Major)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많으며, 지역 신문들도 신뢰하지 않고, 그 지역 내에 있는 다른 종족 사람들과 공공 기관들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풋넘에 의하면, 그러한 종족적 다양성 안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숨어서 거북이처럼 행동하였다. 다양성의 효과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까지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는 것이다.

C. 이타적 자비심(altruism) 상실

민속학자 프랑크 솔터(Frank Salter)는 상대적으로 동종의 사회일수록 박애의 차원이 높으며, 공적 선행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의 케이스 연구에서도 발견한 것은 복합적인 종족들의 사회일수록 선행을 덜 하고 공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협력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D. 버토벡과 웨센도르프의 견해

버토벡(Steven Vertovec)과 워센도르프(Susanne Wessendorf)는 그들은 유럽에서의 다문화주의의 꿈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순진한'(naive) 생각이었는지를 지적하면서 다문화주의가 가져오는 일곱 가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42). 그것은,

첫째로, 다문화주의만이 유일한 원칙’(a single 'doctrine')이라고 하는 사상이 팽배하여 종족이나 민족에 따라 문화가 분할하는 현상들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수 많은 이주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다른 점들 속에 안주하거나 갇히는 현상이 나타났고, 기존의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로, 다문화주의는 건전한 토론 문화를 질식시킨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다문화주의가 유럽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유일한 사회정책이라는 의식이 잘못 스며들게 됨으로써, 그에 반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이 거의 금기’(taboo)시 되는 현상이 팽배하여 왔다. 그래서 종족’, ‘이민’ ‘이슬람' 같은 단어를 거론하면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는 딱지를 붙혀 매장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셋째로, 다문화주의는 분리를 조장한다. 다문화주의는 종족적 분리주의, 사회통합에 대한 반발, 그리고 국가가 공유하는 가치의 부정으로 사회를 붕괴로 이끈다.

넷째로, 다문화주의는 공동의 가치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 다문화주의는 공동체의 일치’ (cohesion) 보다는 다름’(difference) 혹은 다양성’(diversity)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공공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다섯째로, 다문화주의는 그로인한 갈등이나 사회적 문제점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 다문화주의는 다문화-낭만주의’(multi-culti-romanticism)에 빠져 이민자들과 소수민족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섯째로, 좌파 인권주의자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다문화주의는 오히려 비인권적, 비민주적현상들을 조장하고 있다. 소수 문화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권리의 불평등, 부모에 의한 강제결혼, 명예살인, 여성할례 등을 묵인하고 촉진한다.

일곱째로, 다문화주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피난처(haven)를 제공한다. 멀라니 필립스(Melanie Phillips)다문화주의와 급진적 이슬람은 폭발하는 칵테일"이라고 했고,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Daily Mail, 2008. 2. 15.)"다문화주의는 영국을 테러리스트들이 그저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43)

이처럼 다문화주의는 기존의 문화에 수 많은 위험적인 요소들을 가져다주는 개념임이 명백하다.

E. 유럽 다문화주의의 죽음

2004, 영국의 <평등과 인권위원회> 의장이었던 트레버 필립스(Trevor Phillips)타임지’(the Times)에서 강조하기를, 다문화주의 정책은 '분리'(separateness)를 조장하기 때문에 이제 버려져야 할 것이 되었다고 하였다.44) 200677, 영국의 데일리 메일(Daily Mail) 지는 다문화주의 정책의 죽음”('Multiculturalism is dead.')이라는 주제를 헤드라인으로 다루었다.45)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의 칼럼니스트 바기홋(Bagehot)도 말하기를, "다문화주의라는 말은 이제 사회주의자네오콘같은 단어처럼 경멸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다. ... 주요한 정당들도 이제는 다문화주의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했던 때 믿었던 바보같은 이념이었다는 데 하나같이 일치하게 되었고, 다문화주의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으며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다"46) 라고 강조 하였다.

201010,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이상적인 다문화주의 사회를 만들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사이좋게 나란히 살아가려던 독일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하였다”(utterly failed)고 하였다. 20112, 영국 수상 데이빗 케머룬(David Cameron)도 다문화주의 정책은 실패하였으며, (이슬람) 과격주의로부터 영국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한 영국적 정체성’(British identity)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고,47) 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Nicolas Sarkozy)도 같은 해 2월 강조하기를, “오늘날 프랑스는 ... 국민 통합 시스템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에 외국 출신자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게 주거와 일 그리고 학교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였다. 프랑스는 국민적 정체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종교나 민족적 배경이 어떠하든 프랑스적임” (Frenchness)을 모든 시민들에게 요구한다고 하였다.48) 전 스페인 수상 호세 마리아 아즈나(Jose Maria Aznar)와 전 호주 수상 존 하워드도 같은 연설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반향들은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였음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IV. 다문화주의 유럽의 미래

A. 진퇴양난의 유럽

위기에 놓인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문화주의 정책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훨씬 더 엄격하게 유럽인의 정체성(European 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 이 갈등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블라디슬라브 벨로프(Vladislav Belov)는 말하기를, "유럽은 이민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49) 여기에는 저항도 있겠지만, 정부는 유럽 사회의 시민으로써 지켜야할 경계를 넘어가는 저항을 하는 상황에서 더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하는 충분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50) 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유럽인들 중에는 역으로 (이슬람) 이주자들의 문화로 동화하여 그들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만약 이러한 현상들이 계속되어지고, 또한 이민자들의 높은 출산율이 지속되어진다면, 오늘의 유럽은 적어도 30-50년 이내에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51)

B. 분리된 사회

프랑스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르(Alexandre del Valle)에 의하면, 유럽은 지금 무슬림(Muslim), 흑인(Blacks), 그리고 백인(Whites) 사회로 나누어지는 현상이 심각해져 가고 있기 때문에, 문명의 충돌로 인하여 서로 자기 문화와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국부적인 시민전쟁(civil war)이 올 수도 있다고 하였다.52)

C.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1992문명들간의 충돌에 대한 강연을 하였고, 이듬해 1993년에는 문명들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이라는 외교 논문을 발표하였다.53) 그리고 1996년에는 그 이론을 더 발전시켜서 그 유명한 책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를 출판하였다. <문명들의 충돌> 이론은 냉전(the Cold War) 이후의 세계에 있어서는 갈등의 가장 첨예한 원인은 이념이나 경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적-종교적(cultural- religious) 정체성이 될 것이라는 개념이다. 헌팅턴은 민족국가들은 세상일들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주체들이 될 것이지만, 글로벌 정치의 주요 갈등들은 민족들과 다른 문명 그룹들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문명들의 충돌은 글로벌 정치를 압도하게 될 것이다.”54) 라고 하였다.

D. EU의 확장과 발칸 이슬람(Balkan Islam) 문제

유럽의 통합은 유럽인들의 오래된 꿈이었다. 일찌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55),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수상,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등이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장 모네(Jean Monnet)와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같은 사회학자들은 통합의 이론들(Integration Theories)을 정립하였다. 드디어, 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1950)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 1957)가 결성되어 유럽의 연합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냉전이 무너지면서 동구권 나라들이 대거 EU에 가입하여 지금은 28개 회원국에 이르렀으며, 6개국의 공식 후보 나라들(알바니아, 아이슬란드,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터어키)2개의 잠재적 후보 나라들(보스니아, 코소보)이 기다리고 있다.56)

EU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는 것은 필연인지 모른다. 하지만, 발칸반도의 나라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신중해야 한다. 발칸반도에는 오토만 터어키 제국(Ottoman Turkey Empire)의 오랜 지배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나라들이 많다. 그 중에서 알바니아와 터어키의 가입은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지도를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발칸 무슬림들은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다른 종교 및 이데올로기들과 공존하면서 사회통합에 가담하여 주로 시골 지역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이주자로서의 서유럽의 무슬림들과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57) 하지만, 터어키와 함께 EU에 가입하게 되면 거의 1억에 가까운 유럽 무슬림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정체성 회복은 요원해 질 것이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가져오게 될 무서운 결과가 될 것이다.

E. ‘후기-다문화주의에는 소망이 있는가?

유럽 전문가들에 의하면, 유럽은 이제 다문화주의 노선의 위기 상황을 직시하여 새로운 후기-다문화주의’(Post-multiculturalism)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58) 후기-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들과 이민자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차원에서 다문화주의를 무조건 지지하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후기-다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순진하게도 잘못 인도한 다문화주의의 문제점들과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다양성은 인정하되, 사회적 일치와 통합(integration), 공동의 가치(common values) 추구, 공유된 시민정신(shared citizenship) 등을 강조하는 수정된다문화주의이다.59) 이것은 복합적인 상황들 속에 놓여있는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diversity)에 대해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다문화주의를 만들어보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후기-다문화주의가 유럽에서 소위 '유라비아'(Eurabia)가 가속화되거나 '이슬람화' (Islamization) 되는 속도를 줄여주는 간접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노력이므로 유럽에서의 기독교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선교적 희망을 가지기에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V. 다문화주의 유럽의 위기에 대한 선교적 진단

A. 유럽 - ‘잃어버린 탕자’(a Prodigal Son)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유럽의 위기는 그들이 스스로 기독교적 문화전통과 뿌리를 던져 버린 데서 온 결과이다. 에딘버러 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경선교대회(2010)에서 스테판 구스탑슨(Stefan Gustavsson)은 말하기를, 유럽인들은 생각없이 자기들의 영혼들을 팔아치웠으며, 그 풍부한 유산들을 흩어버림으로써 오늘날 '탕자'와 같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였다.60) 물론,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 수 백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크리스텐덤 (Christendom) 유럽의 쇠퇴에는 치명적인 두 가지 실패가 있었다.

첫 번째 실패: 절대자보다 인간의 이성(reason)을 더 중시하는 계몽주의(17-18세기)와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19세기)이 유럽을 지배해 갈 때 교회와 기독교사회의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그것에 대항하는 이론과 문화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두 번째 실패: 교회 안에 계몽주의와 진화론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들이 등장하여 교회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끌어내리고, 교인들을 세속주의에 빼앗기도록 만들고 있을 때 교회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WCC 운동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신학으로 서구 교회를 더욱 약화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그래서, 1974년 빌리 그래함 목사와 존 스토트 목사의 리더십 아래 다시 뭉친 복음주의 로잔운동(The Lausanne Movement)61)은 상당한 영향력을 끼쳐 왔으나, 그러한 운동이 19세기 선교의 위대한 세기에 결성되어 전세계적 운동으로 자리잡아 갈 수만 있었더라면 오늘의 세계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유럽은 이제 종교다원주의를 넘어 기독교후기(post-Christianity)신이교적’(neo-pagan) 사회가 되었으며,62) 사상적으로는 모든 기존의 가르침의 권위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포스트모던이즘이 등장한지도 벌써 한 세대가 지났다. 21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사상계에는 포스트-밀레니얼리즘(post-millennialism),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 포스트-포스트모던이즘(post-postmodernism) 등 종잡을 수 없는 개념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정녕 오늘의 유럽 사회는 과거의 크리스텐덤 (Christendom) 영화를 회복할 꿈을 상실한 것인가?

B. <레슬리 뉴비긴>과 교회의 대항문화적사명

지금까지 살펴본 유럽의 문제를 간파하고 그 대안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 오늘날 <선교적 교회론> (Missional Church/Ecclesiology)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한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이다. 그가 38년간의 인도선교사역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1974)의 영국은 이미 세속주의에 깊이 물들어 기독교이후사회에 접어들었던 때였다. 그에게 영국은 이미 이교도 사회였으며, 이런 사회를 선교적으로 대면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영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지적인, 그리고 실제적인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뉴비긴은 서구 사회를 선교사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다보면서 선교사적인 분석적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것은, 기독교의 토대 위에 세워졌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런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복음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이 그로 하여금 그의 인생의 후반기에 서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책들을 쓰게 만들었고, 그것들은 곧 <선교적 교회론>을 태동시키는 사상적, 이론적, 선교학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63)

뉴비긴은 주어진 문화 속에서 복음을 꽃피우려면, 복음과 문화 사이에서 진정한 '선교적 조우'(missionary engagement)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64) 그래서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그가 처한 문화적 상황을 알고, 그 상황에 필요한 선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하였다.65) 크리스텐덤 이전의 초기 교회와 신자들이 이교적 로마제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대항문화적’(counter-cultural) 이었기 때문이었다.66) 그들의 존재성 자체가 선교적이었으며, 삶의 모든 현장이 선교적 조우였다. 그것이 결국 로마를 정복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시 한 번 더 초기의 그 카타콤적인 아래로부터의 교회’(church from below)라는 패러다임을 회복하고, ‘풀뿌리 사회’(grassroot society)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의 희망이 되고, 그들과 함께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 낼 때 유럽교회의 회복은 시작될 것이다.

나가면서

유럽 이슬람의 성장 뒤에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정책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샬롬'(shalom) 안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하려는 훌륭한 정책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위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 비관용적인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은 시위와 방화, 살인과 테러를 일삼고 있다. 많은 정치가들과 이론가들, 심지어 중도-좌파(centre-leftists)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까지도 이제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우파들의 목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 미래의 어느날”(someday)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already) 진행 중인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유럽도 다문화주의 정책이 얼마나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잘 인식하고 있다. 'soft-Marxism'에 물든 좌파들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유럽은 그들의 기독교적 자산들을 다시 꽃피울 때 진정한 희망이 있다. 그래야 마케도니아 환상(.16:6-10)도 용두사미로 끝나는 비전이 되지 않을 것이다.67)

사도 요한(John)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환상을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다. 거기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참석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되어 오직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만을 찬양하고 있다. 그들의 영(spirit)과 가치(values)는 통합되어(integrated) 있어서 조금의 균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7:14)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 환상이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다문화주의의 완성적 모습'처럼 보인다. 이 땅에서 온 인류가 이와같이 아무런 분리나 차별없이 같은 정신, 같은 가치, 같은 마음으로 하나된 공동체로써 조화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7:9-10)

각주

1) Samuel Phillips Huntington,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1996), Simon & Schuster Paperbacks, New York.

2) Eurabia: The Euro-Arab Axis(2005), p.63.

3) Ibid., p.39.

4) Bat Ye'or, Ibid., p.68.

5) Ibid., p.66.

6) Ibid.

7) Bat Ye'or, Ibid., ch.9.

8) Oriana Fallaci, Oriana Fallaci intervista Fallaci(Millan: Corriere della Sera), 2004. pp.102-103.

9) Bat Ye'or, Ibid., ch.2.

10)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아랍과 베르베르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들을 '무왈라둔'(muwalladun)이라 불렀고, 개종하지 않은 '크리스챤 디미스들'(Christian dhimmis)'모자랍스'(Mozarabs)라 부르며 차별통치를 하였다.

11) Bat Ye'or, Ibid., ch.13 & Appendix 6.

12) Ibid., ch.15.

13) Bat Ye'or, Ibid., p.175 & Melainie Phillips's Londonistan (2006), ch. 4.

14) http://wordnetweb.princeton.edu/perl/webwn?s=multiculturalism.

15) http://www.citizenwarrior.com/2008/09/definition-of-multiculturalism.html.

16) http://en.wikipedia.org/wiki/Multiculturalism

17) Ibid.

18)킹스톤의 퀸즈대 정치철학연구회 의장이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Central European University의 민족주의학 (Nationalism Studies) 방문교수로 있다.

19) Steven VertovecSusanne Wessendorf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2010, Routledge)의 제2“The rise and fall of multiculturalism?: new debates on inclusion and accomodation in diverse societies" 참조.

20) "Political Correctness: The Revenge of Marxism" in The Pjordman Report <Gates of Vienna> (an occasional series from Scandinavia), 2006, June 14일자 참조(http://gatesofvienna.blogspot.com/2006/06/political-correctness-revenge-of.html).

21) Melaine Phillips의 책 Londonistan, p.77.

22)

http://www.pewforum.org/2011/01/27/the-future-of-the-global-muslim-population/

23)그 이름들을 순위대로 적어보면, Mohamed, Adam, Rayan, Ayoub, Mehdi, Amine, Hamza이다.

(http://www.cbn.com/cbnnews/world/2011/february/europes-multiculturalism-leading-to-civil-war-/)

24) 'Sensitive Urban Zones'라고 하며, 그 외에도 프랑스 전역에 718개의 방문민감지역들이 조사되었다. (http://en.wikipedia.org/wiki/Sensitive_urban_zone).

25)http://www.cbn.com/cbnnews/world/2011/february/europes-multiculturalism-leading-to-civil-war-/

26) http://en.wikipedia.org/wiki/Alleged_2007_bomb_plot_in_Copenhagen

27) https://www.google.com/search?hl=en&q=meaning+of+jihad

28) *코란 2:216, “You are commanded to fight although you dislike it..."(너는 비록 네가 그것을(지하드) 싫어할 지라도 싸워야 하는 명령을 받았다.../필자의 직역.) *코란 4:89, “...Therefore, do not take any of them as friends until they have abandoned their homes to fight for Allah's cause(‘지하드’). But if they turn back, find them and kill wherever they are."(...그러므로, 그들(비무슬림들)이 알라를 위하여 싸우기 위해 그들의 집을 버리기 전 까지는 그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그러나 그들이 되돌아 간다면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서 죽이라./필자의 직역).

29) Bill Warner의 책 Sharia Law for Non-Muslims (2010, Center for the Study of Political Islam) p.21.

30) http://www.wsws.org/en/articles/2004/11/gogh-n10.html

31) YouTube에서 시청가능하다.

32)http://www.hurriyetdailynews.com/netherlands-germany-alarmed-over-islamist-extremists

33)런던대학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EC(the European Commission)를 위해 연구한 보고서 “Recruitment and Mobilisation for the Islamist Militant Movement in Europe”(2007), p.33ff 참조.

34) https://www.youtube.com/watch?v=HV2A5Btvovw

35)

http://islamineurope.blogspot.com/2010/12/stockholm-extremists-recruiting-for.html

36) http://europenews.dk/en/node/72741

37) Premium Chosun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0/2015042000258.html)

38)

http://www.citizenwarrior.com/2008/11/multiculturalism-and-defense-of-liberty.html

39) http://en.wikipedia.org/wiki/Multiculturalism#Support_for_multiculturalism

40) Ibid.

41) Ibid.

42) 그들이 함께 출판한 책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2010) 참조.

43)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 Edited by S. Vertovec & S. Wessendorf. (N.Y.: Routledge, 2010). Introduction 참조.

44) http://www.bbc.co.uk/news/magazine-12381027

45) Steven Vertovec & Susanne Wessendorfrk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Routledge, 2010)Introduction 참조.

46) Steven Vertovec & Susanne Wessendorfrk, Ibid.

47) http://www.bbc.co.uk/news/magazine-12381027

48) http://edition.cnn.com/2012/03/07/world/europe/france-politics/

49)모스크바국립대학의 국제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 교수.

50)

http://voiceofrussia.com/2013_05_07/Policy-of-multiculturalism-in-Europe-has-failed-expert/

51) Ibid.

52)

http://voiceofrussia.com/2013_05_07/Policy-of-multiculturalism-in-Europe-has-failed-expert/

53)이 용어 자체는 헌팅턴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사용되어온 것이었다. Bernard Lewis1990년 가을판 The Atlantic Monthly에서 "The Roots of Muslim Rage"라는 글에서 사용했었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26년에 출판된 Basil Mathewsdml Young Islam on Trek: A Study in the Clash of Civilizations 에서도 사용되었었다.

54) http://en.wikipedia.org/wiki/Clash_of_Civilizations

55) Immanuel Kant1795년에 쓴 "Perpetual Peace: A Philosophical Sketch"라는 글에서 유럽의 평화를 위한 거대한 통합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56) http://europa.eu/about-eu/eu-history/index_en.htm

57) DoublinTrinity College의 교수인 Ina Merdjanova의 글 "Whither European Islam? Muslims in Balkans and in Western Europe Compared." 참조. (Stoycheva, Katya & Kostov, Alexandre (eds.). A Place, a Time and an Opportunity for Growth: Bulgarian Scholars at NIAS. Sofia: Faber, 2011, pp. 33-41).

58) Steven Vertovec & Susanne Wessendorfrk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Routledge, 2010), p.32f.

59) W. Bradley의 글 "Is There a Post-multiculturalism?"(Afrasian Research Centre, Ryukoku University)Steven Vortovec의 글 ”Towards Post-multiculturalism”(Max-Planck-Institute for the Study of Religious and Ethnic Diversity) 참조.

60) 동경대회 마지막 날 금요일 오전에 행한 “Reaching the Secular Peoples of Europe"이라는 특강에서.

http://www.tokyo2010.org/resources/archives.htm 참조.

61)그 슬로건은 “unite all evangelicals in the common task of the total evangelization of the world’'로써 세계복음화를 위해 복음주의자들이 뭉친 운동이다. 로잔대회에서 랄프 윈터 박사가 발표한 미전도족속그룹’(UPG) 선교개념은 선교계의 새 이정표가 되었다. 그 후 마닐라대회(1989), 케이프타운대회(2010)로 이어졌다.

62) Melanie Phillips, Londonistan(Encounter Books, NY, 2006), Introduction, p.xx 참조.

63) 나의 글 선교적 교회론이 살 길이다!”(kscoramdeo.com 2011.10.11에 실린 논문) 참조.

64) 뉴비긴의 책 Foolishness to the Greeks(1986) 참조.

65) 뉴비긴의 책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1989) 참조.

66)뉴비긴의 영향을 받은 죠지 헌스버거(George Hunsberger)와 크레이그 반 겔더(Craig van Gelder)의 책 The Church between Gospel and Culture: The Emerging Mission in North America(1996) 참조.

67) 그래서 오늘날은 유럽재부흥을 향한 '-마케도니야 비전'(the new-Macedonian Vision)이 필요한데, 이것으로 '유라비아 비전'(Eurabia Vision)과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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