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라스와의 대화: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코람데오닷컴 연구위원회는 종교개혁의 귀중한 유산들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이를 위해 먼저 종교개혁 분야의 세계적 학자라 할 수 있는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Alister McGrath/ 옥스퍼드 대학교 역사 신학)의 다음의 저서들을 리뷰하며 한국적 상황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장 주

1.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이신칭의하나님의 택하신 구원의 방법 홍성철 목사

2.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유승주 목사

3. 기독교의 미래 방석진 목사

4.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김대진 목사

5. 종교개혁 사상 이세령 목사

 

▲ 유승주 목사(주님의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저자(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윌리암 워즈워드의 낙관주의와 희망을 시로써 노래하던 시기에 일어났던 프랑스 대혁명이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했으며, 마르크스주의가 60년대와 70년대의 학생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주었지만 현재는 낡아 기만적인 것이 되었음을 이야기 하면서 복음주의도 잘 대처하지 못하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은 복음주의가 앞으로도 중요하면서도 지속적인 역할을 계속 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현재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프랑스 대혁명이나 마르크스주의처럼 될 수 있다는 비판의식으로 기록되었다고 밝힌다.

1. 복음주의의 새로운 부흥

저자는 개혁신학도 큰 틀에서 복음주의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야 됨을 역설한다. 복음주의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복된 소식인 복음을 보존하고 선포하는데 복음주의 운동의 중심 위치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써 어떠한 교회정치문제도 복음 자체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복음주의의 원천으로 종교개혁,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등을 꼽는다. 심지어 근본주의도 복음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복음주의도 상황에 따라 문화적 다양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프란시스 쉐퍼의 복음주의적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삶의 국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기독교를 사회, 정치, 문화의 필요에 효과적으로 관련시키고 성경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문화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 복음주의의 특징

한마디로 복음주의를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복음주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기독교의 다양한 상황에서 꽃피웠기 때문에 다양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복음주의의 특징으로는 첫째,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둔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그리스도께 영광 돌린다. 셋째, 성령의 주권을 믿는다. 넷째, 개인적 회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섯째, 복음 전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공동체(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토대위에서 복음주의 운동이 가져온 결과는 초 교파적이며 교단들 내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고, 교회연합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교파는 분리적 성격이 나타날 수 있지만 복음주의는 다양성이 나타날 수 있는 구조다.

3. 복음주의의 매력

자유주의는 결국 세속문화에 종속됨으로써 신학이 문화에 의해 변화되는 역현상을 일으키고 실패하였다. 이것은 복음에 충실하려는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복음주의로 방향을 돌리게 하였다.

기독교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이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복음주의는 교파의 틀에 매이지 않고 통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비전의 상실

결국 어떤 일이든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만다. 복음주의도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복음 선포가 상황에 관련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복음 자체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복음을 특수한 상황에 연결시키려는 복음전도자, 설교자, 신학자들의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복음주의의 확장으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는 곧 비전의 상실로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근본의 뿌리를 더욱 깊이 연구하고 확립해 둘 필요가 있다.

5. 복음주의적 영성의 추구

복음주의는 영적인 풍요를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빈곤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의 영적인 삶에 창조적으로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통합에 의존해야 했었다. 복음주의의 가장 큰 약점들 중의 하나는 신뢰할 만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독특한 복음주의적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영적인 필요와 관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결국 소멸되고 만다. 복음주의는 자체적으로 좋은 영성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빌려오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역사적 유산에 대한 무지와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데 적응하지 못한 것과 신앙생활의 인간적인 측면(타락 할 수 있는 본성)을 무시한 것과 영성에 대한 신학교육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복음주의적 영성은 단순히 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모범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복음주의적 영성은 성경 중심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지고 있는 변혁적 성격을 드러내야 하며,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확고하고도 분명하게 토대를 두어야 하며 영적인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6. 복음주의의 어두운 면

복음주의적 설교 및 상담에 있어서 우려되는 측면들 중에 하나는 죄의식, 영적마비증세, 의심 등을 불러일으킨다는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 있게 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가치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자기 충족성에 대한 세속적 믿음을 비판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적인 자기 존중감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복음적인 무능력과 영적인 궁핍을 밝히 드러내주고 우리를 새롭고 중요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또한 복음주의는 독단성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단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는 첫째, 복음주의자들은 주류 교단 내에서의 개혁을 목표로 삼고 그 교단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교리적으로 순수한 교단을 따로 구성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둘째, 성령의 권위가 설명되어지고 변호되어지는 방식에 대한 정확성 문제가 있으며 셋째,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성령이 차지하는 위치문제가 있고, 넷째,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복음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역자를 우상화 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이것은 결국 상처입고 실망하게 되면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결론날 수 있기에 루터의 만인제사장의 교리를 재발견해야 한다.

복음주의는 영향력과 매력이 인간적인 요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종교 개혁의 대상이었던 중세 이전의 로마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던 옛 습성이 복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오늘날의 교회에 다시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7.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는 세계 기독교에 복음 전도를 위한 확고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복음전도는 사회사상과 정치사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정통적인 교리와 더불어 윤리적인 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들 사이에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특정한 문제나 목표를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연합전선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정당이나 정치적인 흐름과의 영구적인 연합관계는 교회의 대중적인 신뢰도를 잃게 만들 수 있다. 교회가 존경과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정치를 초월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배타적 태도로 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최근 로마 가톨릭의 평신도 사이에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고 있으며, 실제로 변화 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 로마 가톨릭을 떠나 복음주의로 넘어오는 남미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읽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분명히 각인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도태되고 만다. 과거의 신학교육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현재 성도들이 겪고 있는 소외와 고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목회적 활동보다는 총회기구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무관심한 세상을 자극하기 위한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것은 결국 교단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대처로서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회복해야 하고 복음전도를 제일 중요한 과제로 인정해야 한다.

복음주의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복음주의자들도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 많은 사람들이다. 복음주의의 인간적 요소는 복음주의 내에 있는 신앙적 요소를 쉽게 약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 상호배타적인 소규모 집단들로 분열되어 각 분파가 자신들만이 복음주의에 대표자이며, 다른 이들은 변절 되었다고 하는 분열주의의 위험요소가 있다.

또한 복음주의는 성장하고 세력을 얻을 것이다. 학문적,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이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교회를 지배한 자유주의적 개신교와 같은 변질의 위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제기>

1. 필자는 이 책을 ‘개혁신학과 고신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개혁신학도 광의의 의미에서 복음주의에 포함되는 것으로 저자는 설명하고 있기에 넓은 시야로 보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복음주의는 외연의 확대로 정체성이 상실되는 문제가 생겼는데, 우리 고신 교단은 정체성의 강조가 계속 되었기에 뿌리는 튼튼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대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현대 젊은이들과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시도를 어떻게 권장하고 독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2.복음주의적 영성의 추구에서 교단의 한계점을 본다. 방언을 배타시하고 영성적인 것을 지극히 억제 했던 이전 세대들이 영향이 미친 교단의 분위기가 오늘 날 건전한 영성운동의 시도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현대인들의 영적인 필요와 관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교단은 소멸되고 만다고 맥그라스는 주장한다. 교단은 고신영성의 중요성을 어떻게 살려나가야 하며 영성추구에 방해가 되는 시각과 영성추구를 억제하는 태도를 제거해야 되지 않을까?

3. 우리는 죄의식을 강조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강조 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는 강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긍정적인 면들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자기 충족성을 배격할 수 있는 메시지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4.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성의 역할이 점점 확대 되어가는 시대에 여전히 과거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이 옳은가?

5. 교단의 대표적인 특징이 분파주의, 분열정치로 귀결된 듯 한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위험성까지 보인다. 그 중에서도 교단 내에 더욱 분파적인 모습의 그룹들도 있다. 이것은 결국 복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남게 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며 또한 변질의 위험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6. 정치와 정당과의 관계문제는 현대에 대단히 중요하다. 로마 가톨릭이나 불교는 정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초월해 있다는 인식을 일반 국민들에게 충분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개신교는 더욱 정치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고신교단은 정치에 무관심한 면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모습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예를 들어 동성애대처, 이슬람대처, 이단대처 등) 동시에 존경과 신뢰를 잃지 않는 초월적인 면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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