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언어는 신비롭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라도 말을 던지는 순간 사건도 일어나고 역사도 배태된다.
'배 째 드리지요~' 북악산 그늘에서 퍼져나온 것으로 알려진 그 한마디로
이미 한 사람의 배는 찢어졌고, 국민들도 자기 배를 한번쯤은 들여다 보아야 했다.

언어는 힘을 가진다.
파괴하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
말한마디에 천냥의 빚을 갚기도 하고
말한마디에 인생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Word-Event라고 부른다.
말씀하시면 사건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건이다.
창조가 그렇고 구속이 그러하다.
말씀하시면 천지가 생겨나고, 말씀하시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도 않다.

예배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
인도자는 자주 주기도문을 사용한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공동체의 기도로 삼는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내용을 매우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도의 표준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인도자가 사용하는 어귀이다.
'주기도문 하겠습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들어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쉽게 용납이 안 된다.
언어가 가진 생동감과 현재성을 생각할 때
그와 같은 표현은 마치 뜻도 모르는 염불을 외듯 기도문을 암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속이 편치를 않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따라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 아닌가...

몇마디 덧붙인다고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다.
흔히 '언어의 마력'을 말한다.
Magic power of Language'를 부정하는 언어학자는 없다.
언어로 세뇌하고 언어에 의해 세뇌당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기도문 하겠습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보다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주님의 기도이면서, 내가, 우리가, 함께 하는 기도라는 사실을 인식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갑자기 '또박또박 악랄하게 가겠다'는 살벌한 언어가 스쳐간다.
'또박또박 정확하게 기도하겠다'고 해야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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