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변했다. 아니 한국 국민이 변했다. 누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사회가 아니다. 선거의 여왕도 울고 가는 한국이 되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번 4.13 총선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결과를 낳았다. 절묘하다 못해 신기에 가깝다. 교만의 꼭두에 선 새누리당은 선거에 참패를 당했고, 더민주당은 수도권에서는 압승을 하여 원내 1당이 되었지만 호남에서 참패를 당하여 할 말을 잃었고, 국민의당은 호남에서만 압승을 함으로 그리 자축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이런 구도를 대단한 우리 국민이 만들었다.

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양심에 비춰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당선자들은 이런 무서운 국민이 뽑아주었다는 사실을 유념하여 진실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같이 누구 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당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개인의 인기몰이 식의 정치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보여주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어느 정치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국민이 이번엔 제대로 본때를 보였다. 참으로 절묘하게 투표가 이루어져 그 누구도 교만하지 않게 하였고 스스로 몸을 낮추게 하였으며 대통령 후보를 보는 안목도 어느 정도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은 국민의 양심을 움직인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그 권세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소위 인권을 왕으로 삼는 자들을 통하여 성소수자 인권법을 제정하려는 분위기 속에 그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하나 국회에 들여보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사후 약방문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그것을 사전에 막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요 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기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 앞에 우리 개신교인들은 기독교 정당을 폄훼[貶毁]하고 지지 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기독교 이름으로 정치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우리도 이 시점에서 독일의 기민당에 대한 연구를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독일의 기독교 민주당(기민당, CDU)1945년에 설립되어 기독교 민주주의’(Christian Democracy) 원칙에 입각한 통합 정당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중도 우파적인 기독교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집권당으로 메르켈이 여성으로 총리가 되어 독일을 이끌고 있다.

이번 선거에 기독자유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 기호 5번으로 총선에 나섰지만 2.64%의 득표에 그쳐 0.36%가 모자라서 국회의원을 내지 못하였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법 입법(동성애 법제화) 반대이며, 이슬람 특혜 반대와 반기독악법 저지(차별금지법으로 전도를 금지하는 등의)가 목적이었다. 만약 개신교인들이 마음 먹고 5번을 찍었더라면 5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당의 명칭 문제와 정치를 하겠다는 구성원들의 성숙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당이 지향했던 목적은 한국 개신교회의 기도의 몫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는 나라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 하여야 한다. 하지만 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침해할 때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 선한 싸움의 첫걸음이 입법과정에서 악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비록 다수결로 입법이 되었다면 적극적으로는 피를 흘려 그 법을 고치려 해야 하고 소극적으로는 목숨이라도 바쳐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고신의 선배들의 신앙이었고 우리는 그 터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4년 동안 한국교회는 악법의 법제화에 대해 두 눈을 부릅뜨고 각성하여 지키며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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