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코람데오닷컴 연구위원회는 종교개혁의 귀중한 유산들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이를 위해 먼저 종교개혁 분야의 세계적 학자라 할 수 있는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Alister McGrath/ 옥스퍼드 대학교 역사 신학)의 다음의 저서들을 리뷰하며 한국적 상황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장 주

1.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이신칭의하나님의 택하신 구원의 방법 홍성철 목사

2.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유승주 목사

3.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 김대진 목사

4. 기독교의 미래 - 방석진 목사

5. 종교개혁 사상 이세령 목사

 

들어가는 말

▲ 방석진 목사(말씀전원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역사 신학자로서 전 세계 차원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기독교의 미래를 진단한다. 서문에서 맥그라스는 종교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종교는 결코 우리 주변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고 했다. 1990년대에는 과학과 진보는 왕좌에서 밀려났고 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크게 부각되었다. 이것은 서구 세계가 계몽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사상의 중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 지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영성의 관심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에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다. 과거에는 당연히 인정받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신뢰도가 다 깨지고 말았다.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은 오늘날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미래가 있는가? 이 질문에 저자는 기독교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이 책에서 설명한다.

 

20세기 : 서구 기독교가 맞이한 도전과 실패

19세기에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세계가 기독교로 회심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종교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예언들은 다 빗나갔다. 맥그라스에 의하면 서구 기독교는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승리는커녕, 예측하지 못한 사태들로 능욕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20세기에 이슬람이 지배 종교인 투르크(1922년 이후 터키)19154월에 150만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대학살했다. 나치가 자행한 행태와 매우 큰 유사한 점들이 있지만 국제사회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기독교 교회들조차도 그 사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부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에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혁명으로 국가가 전복되고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종교를 몰아내고 철저히 말살했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정교회였다. 1939년에는 99퍼센트의 교회가 폐쇄되었다. 1940년도에는 중국에서 모택동이가 승리를 거두면서 기독교의 미래가 암담했다.

맥그라스에 의하면, 이런 절망을 더욱 고조 시킨 건 히틀러의 전쟁도발과 대학살 계획을 독일 교회가 막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소수의 고백교회가 있었지만 주류의 독일 기독교회는 교회가 시대와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면서 시대적 문화의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낙담과 근심을 안겨 주었다.

이런 시대를 거쳐 1960년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서구 기독교에서 커다란 반전, 획을 긋는 때로 저자는 구분한다. 기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스런 것을 제거하려는 하나님이 죽었다라는 운동이 일어나며 기독교 신앙의 계승이 깡그리 파괴된다. 교회가 영적 진공상태와 종교적 생명력을 잃었고 전통 도덕을 일소하는 것이 당시 해방이라고 여기는데 대해서도 어떤 비판 능력도 작동하지 못한다. 영적 공허를 느낀 많은 기독교인들이 뉴 에이지에 빠지게 되므로 길을 잃게 된다.

이처럼 20세기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폭풍우 같은 사건들에 난타당하고 주변의 도전들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어 19세기 말엽에 가득했던 낙관주의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2. 종교의 변형: 기독교가 새 형태를 취하다

맥그라스는 현저한 성도수의 감소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잃고 신뢰성이 줄어든 서구 교회의 퇴조를 지적했다. 저자는 세계화가 곧 서구화라는 인식은 틀린 것임을 말하면서 기독교의 미래에 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서구 바깥쪽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지역의 교회에 주목한다.

서구의 기독교가 퇴조하는 상황에 한국교회가 주목할 만한 부흥을 이룬 사실과 문화혁명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기독교가 커다란 성장세를 계속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교회들과 라틴 아메리카 교회들도 체험을 강조하는 은사운동을 통해 급성장한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 선교사들이 심었던 기독교는 그 지역 토양에 역동성 있게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로 뿌리내리고 있는 중이다.

 

3. 교회의 새로운 존재방식: 미래를 향한 서구의 흐름들

맥그라스는 1990년에 이르러 기독교의 현실은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그 동안 기독교야말로 서구 신앙을 대표하며 서구 전체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그 중심축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그리고 호주 옮겨졌다고 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많은 교파들이 1990년에 이르렀을 때 정체가 아니라 급격하게 쇠락해서 교파라는 것 자체가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 되기 시작했다. 이 틈에 교파의 경계를 초월하는 복음주의가 등장한다. 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교파보다 탁월한 설교와 예배 방식 등 쇼핑하듯이 개인의 선호에 따라 교회를 선택한다. 이런 변화는 분명히 기독교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70년대 이후 교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들이기 위해 기업 경영 방식의 마케팅을 도입한다. 심지어 숫자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성직자가 성공해야 한다거나 성공한 교회를 만들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시장에 내 놓고 청중을 끌어 들여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되었다. 저자는 결국 서구 교회는 맥도날드화 된 기독교가 되었다고 한다.

맥그라스에 의하면 맥도날드화 과정에는 4가지 특징이 있는데 능률, 계측가능, 예견가능성 그리고 통제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렇게 되어 가면서 무언가 잃어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잃고 있다.

그러면서 21세기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 같은 새로운 접근법을 저자가 제시한다. 정체성과 소속감을 잃은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속해 있다는 느낌을 제공하는 공동체 교회가 떠오른다. 대표적인 교회가 윌로우 크릭 공동체교회와 셀교회이다. 이런 교회는 대개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교회정치를 피한다. 그러므로 맥그라스는 앞으로 교파가 천천히 고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4. 도전: 미래의 몇 가지 쟁점

21세기에 중요하게 부각될 문제들은 상당히 많은 주제들이 있지만 저자는 네 가지 주제들을 다루면서 그것이 기독교의 발전에 미칠 잠재적인 효과를 말한다.

먼저 근본주의의 위협이다. 이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격렬한 저항이 있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종교적 신념과 형태이다. 예전에 누렸던 영광과 현재의 실패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려는 수단이다. 세속문화가 강력히 나타나면서 위협을 느낄 때마다 나타난 근본주의는 당시 사회 문제들의 쟁점에 맞서 건설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비방만 일삼는다. 그 결과 무기력하고 축소된 복음이 세상에 제시되고 지나치게 내세만 지향하면서 지성에 반대하는 태도를 가졌기에 대중 속으로 파고들 탐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대안으로 복음주의가 등장한다. 정통 기독교 신앙을 용감하게 방어 하고 든든한 신학의 뒷받침을 받으며 복음의 내용을 사회에 적용하는 일에 집중한다. 이 복음주의가 기독교 미래에 큰 세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둘째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계속적인 팽창 때문 기독교 미래에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이슬람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래가 평화와 공존으로 갈 수 있고, 아니면 내란과 분열로 사회 불안도 발생할 수 있다. 앞으로 팽창주의를 추구하는 이들 두 세계 종교가 공존하는 지역에서 긴장과 불안이 증대되리라는 것이 분명하다.

셋째로 기독교의 내부 분열을 봉합하는 교회 일치 운동이다. 교회일치의 운동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당사자의 화해시도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났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세속화가 기독교 신앙을 강력하게 무너뜨리는 느낌이 강하면서 기독교 내부가 생존에 함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1차 총회를 해서 50년 흘러오는 동안 갈수록 무능력을 보여주고 신학적 권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자유주의 쪽으로 치우치게 된 세계교회협의회는 새로운 일치를 추구하는데 방해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20세기 끝날 무렵, 새로운 교회일치 운동이 등장한다. 서로 이해하고 함께 일하며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있음을 기뻐하면서 상호 이해한다. 인격의 상호 존중과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진지한 사랑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맥그라스는 이것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한다.

 

5. 미래 기독교의 모습: 그 개관

맥그라스에 의하면, 앞으로 어떤 형태의 기독교가 등장하게 될까 질문하면서 네 개 로마 가톨릭, 오순절파, 복음주의, 동방정교회- 를 말하면서 주류 개신교는 제외 시켰다. 저자에 의하면 주류 개신교가 다음 세기의 서구에서는 생존할 것 같지 않다고 진단한다.

맥그라스는 서구의 개신교 교파들에게 미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굉장히 회의적인 답을 하지만, 복음주의 갱신운동이나 은사주의 갱신 운동의 영향을 받고 현재부터 갱신운동을 한다면 교회 미래는 희망적이다 라고 한다.

 

로마카톨릭

기독교 안에서 가장 큰 지반을 이루는 로마 가톨릭이 다음 세기에도 우세한 지위를 유지하면서 남을 수 있도록 한 사건은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이다. 이것은 가톨릭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손질한다.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민하면서 신자와 비신자의 관계, 가톨릭 신자와 다른 기독교 신자들 사이의 관계, 주교들과 교황 사이의 관계를 깊이 고민한다. 2차 바티칸 공회가 끝난 뒤, 위계질서보다 공동체, 성직자보다 평신도들에 중요한 역할을 분담하고 인권, 사회정의를 포함해 사회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난 두 세기 동안 서유럽에서 전 세계로 확실히 변모했는데 다음 세기에도 전 세계 기독교에서 큰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오순절주의

20세기 첫날, 1901년에 캔자스에 위치한 벧엘 성경대학에서 학생과 교수가 방언의 체험을 하면서 그 이후 커다란 부흥이 일어난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오순절날 경험한 것과 같다고 해서 오순절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특히 변두리 소외된 자들에게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체험을 강조하며 예언, 치유를 강조하는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20세기 후반에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성장세를 보인다.

주류교회 안에서도 은사주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형식에 매이지 않는 예배, 가스펠송 류의 찬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틀에 박힌 전통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 등이 증가한다. 전 세계에 5억의 오순절주의자가 호소력을 갖게 된 건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것을 강조하고 간증이나 찬양으로 의사소통을 하므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18세기 잉글랜드에서 처음 영국 국교회 소속이었던 존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로부터 시작된 복음주의가 근본주의와 맞서 계속 성장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복음주의 운동의 지도자이다. 복음주의는 전인의 변화, 실천하는 신앙, 성경공부 중심,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을 가진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진 복음주의가 한계가 있어 보이는 상황에서 이제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복음주의 중심과 기독교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당히 주목된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동방정교회

로마제국의 동방지역에서 발전했던 동방 정교회는 그리스 비잔티움 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커져가다 1453년 이슬람군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정교내의 지성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러시아로 건너간다. 모스크바 중심으로 동방 정교회가 번성한다. 그리스 정교회는 오스만 투르크의 폭정 아래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정부와 맞서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잘 이어왔다. 19세기 이민을 통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다. 동방정교회에 생기가 넘쳐 나면서 커진 것은 서구 공동체의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는데 정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특히 역사적인 뿌리가 깊은 것 때문에 복음주의로부터도 많은 사람들이 정교회로 개종하고 있다. 저자는 미래에 민족적인 측면을 벗어나 동방 정교회가 전 세계 기독교에서 누구나 선택하고 싶은 종교가 될 것이라고 한다.

맥그라스는 결론적으로 21세기에 기독교는 살아남을 것이며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서구에서는 줄어들고 있지만 서구 밖의 세계에서는 계속 팽창해 나간다. 기독교의 미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새로운 성장과 가능성을 보이며 기독교의 중심이 빠르게 옮겨 가도 있다는 것이다.

 

6. 두 개의 국가: 상아탑 신학에 환멸을 느끼다

맥그라스는 교회와 대학이라는 현실적 상황이 지금 너무나 다른 세계라고 하면서 기독교를 믿는 지성인과 신학자들이 미래에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지를 제안한다. 신앙을 추구하는 공동체와 학문을 추구하는 공동체 사이에 커져가는 간격을 좁혀가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 신앙과 학문 사이가 멀어질수록 신학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기독교 교회가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방식으로 교회의 신념에 대해 말할 능력을 잃을 때 상아탑 신학이 된다. 교회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고 과장된 언어의 나열에 불과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신뢰성을 유기적으로 관련성을 맺지 못한다면 교회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직업적인 신학자보다 자신의 사상을 알기 쉽고 뚜렷한 언어로 전달하고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이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해 신학에 관심을 피력할 줄 아는 아마추어 신학자들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맥그라스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신학을 무작정 답습하기보다 그 지역 고유의 현실에서 파생된 신학을 발전 시켜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는 체계를 뒷받침하고 세우며, 공동체 밖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변증하는 것이 바로 유기적 신학자의 과업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언론인, 소설가, 작가 그리고 대중매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유기적 신학자들은 행동가이며, 대중에게 무엇인가 널리 퍼뜨리는 사람이다. 앞으로 기독교가 살아남아 번영을 누리려면 유기적 신학자가 필요하다.

 

나가는 글

수많은 위기 앞에 있는 세계 기독교의 미래가 어떻게 될는지 많이 궁금해 한다. 맥그라스가 이 책 한 부분에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통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주목해야 할 공동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결코 밝은 장밋빛의 미래 앞에 서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만큼 미래의 상황은 도전과 실패가 중첩되어 있다.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삼아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정황 속에서 몇 가지를 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20세기에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의 대학살, 러시아의 혁명 등 전쟁의 폭풍우와 같은 사건이 있었을 때 교회가 적절히 대응을 해 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때 교회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잘 대처했는지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지금의 시대적 현안 문제를 진단하고 악을 막는데 노력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맥그라스에 의하면 기독교가 물건을 시장에 내 놓고 청중을 끌어 들여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되어 맥도날드화 되었다. 교회의 교파보다 탁월한 설교와 좋은 시설 등 개인의 선호에 따라 교회를 선택하는 복음주의가 대세이다. 교회에서 숫자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성공한 교회(?)를 만드는데 지도자들이 압력을 받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과연 미래를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 미래에는 교파라는 것 자체가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역설하는데 과연 그럴까?

교회의 미래에는 이슬람의 팽창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제들이 일어 날 것인데 한국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교회의 연합운동이 계속 교단들마다 일어나고 있다. 우선 같은 신학적 정서와 역사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교파마다 새로운 일치를 이루고 있다. 교파마다 귀한 전통을 가졌다는 것으로 자부심만 가질 것이 아니고 그것을 시대변화에 조응하면서 때로는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세 불리기보다 정체성 확립이 중요할진데 한국 교회가 더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맥그라스는 지금 서구의 개신교 교파들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복음주의 갱신운동이나 은사주의 갱신 운동의 영향을 받고 현재부터 갱신운동을 한다면 교회 미래는 희망적이다 라고 한다. 지금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갱신 운동은 무엇일까?

교회와 신학의 틈이 너무 벌어진 상황을 메울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 신학인 필요하다고 한다. 각 전문 분야 속에 이런 사람을 길러내려면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까? 신학교가 상아탑 신학이 되지 않고 교회현실을 피력할 줄 아는 학자들이 필요한데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한국 교회가 이대로 가면 10년 후 400만 명 안팎이라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매래가 어둡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진단한다. 문제와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통해 의식전환이 필요함을 알고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변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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