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제기

▲ 홍성철 목사(영국 웨일즈대학 Ph.D. 대전주는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1) 오늘날 현대 교회는 바울의 로마서 1:17절의 이신칭의의 복음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지식적으로 아는 지적동의, 일시적 믿음, 현세 축복의 도구로서 그릇된 이신칭의를 소개함으로 원래 바울이 전한 교회의 영광스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싼 이신칭의 교리를 소개해왔다. 이런 그릇된 이신칭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고 있다. 이 그릇된 이신칭의는 교인들의 윤리와 도덕의 부재로 인해 세상의 지탄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교회는 계속하여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과연 바울이 전파한 이신칭의는 회심과 중생이 아닌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하고 입으로 고백만하면 구원이 보장되는 복음이었는가?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이 회개 없이 이루어지는가?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다는 믿음은 회개와 분리되는가? 곧 회개 없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으로 구원을 보장해주는가?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이신칭의에서 많이 벗어난 오늘날 강단과 교회 현실을 개탄하며 본고는 역사적 예수님의 복음을 제대로 전달한 바울이 이신칭의가 과연 로마서 본문 자체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오늘날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학자들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믿는 자를 법정에서 의롭게 여기는 법정적 칭의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의는 오로지 신자를 의롭게 여기는 법정적 칭의로만 이해하는 것이 로마서 본문 자체가 가르치는가? 그로 인해 이미 이루어진 법정적 칭의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이루어질 궁극적 칭의 사이에 긴장관계는 없는가? 다시 말해서 한번 법정적 칭의를 받은 신자가 세상에 살면서 칭의를 이미 이룬 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통치를 받는 자로서 계명 순종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생활방식과는 별개의 것인가? 필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는 법정적 칭의이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칭의를 받은 자가 그 지위에 맞게 생활을 시작하는 생활방식으로서 하늘나라 백성의 새언약의 순종의 시작으로 분리되지 않는 다는 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3) 오늘날 현대 교회는 바울의 이신칭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릇된 이신칭의를 전달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하는데, 과연 바울이 전한 이신칭의는 복음의 원조이신 예수님이 전한 산상보훈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되는가? 곧 바울이 이방인에게 중점적으로 전한 이신칭의 교리는 유대인에게 초점을 맞춘 예수님의 하늘나라 복음의 산상보훈과 다른가? 다시 말해서 강조는 다르고 초점은 다르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방식이 이방인 크리스천과 유대인 크리스천에게 달리 적용되어 이방인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믿으면 순종이 없어도 되고, 유대인 크리스천은 믿고 순종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가? 곧 새로운 모세이며 그 선지자이시며 2위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인 십자가의 복음을 회개하고 믿은 신자가 의로운 생활없이,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함이 없이 로마서와 산상보훈은 구원을 확신해주는가?

 

2. 로마서 1:17절의 이신칭의

성경은 성경 본문 자체로 해석해야 한다. 로마서 1: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의 하나님의 칭의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을 말로만 믿는다는 고백이거나 십자가 사건을 지식적으로 알고 동의한다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고, 자기 옛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회심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며(6), 자신의 힘으로 율법주의 생활이 아니라(7), 내주하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법을 100%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의롭겨 여긴 의인으로서 합당하게 법적 지위에 맞게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변화된 생활이다(8).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주는 의이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이다.

로마서 1:17절의 하나님의 의의 논쟁과 해석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νη γρ θεοῦ, righteousness of God)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요한 주제다. 학자들의 논쟁을 위해 다음 책을 보라(Brauch 1977; Wilckens 1978: 202-33; Plevnik 1986; Moo 1991: 65-70, 75-86; Reumann, ABD 5:757-69; Seifrid 1992: 677; Cf. Morris 1965: 251-98; Hill 1967: 821-62; Stuhlmacher 1992: 326-42; Fitzmyer 1993c: 258-63; Bray 1995). 하나님의 의에 대한 두 개의 주요 해석을 나열한다.

1)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서는 신자의 지위를 언급한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주로 루터와 오늘날도 계속 지지되고 있는 해석이다(Luther; e.g., Calvin 1960: 28; Melanchthon 1992: 25-26; Bultmann 1964; Cranfield 1975: 95-99; G. Klein, IDB Sup 750-52; Moo 1991: 65-70, 75-86; Mounce 1995: 36-39, 72-73). 이 하나님의 의는 법정적 용어(a forensic term). 하나님의 의의 선물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인이 죄가 없다는 선언이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대속 사건을 회개하고 믿은 자에게 주어지는데 그 사람을 의롭게 여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음을 믿는 자를 전혀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여기고 선언한다. 곧 법정적 칭의이다. 그런데 이 법정적 칭의가 발생하게 하는 일은 로마서 1:18-32절에서 인간이 어떤 죄를 지고 살고 있는지를 보편적으로 서술한다. 1:18-32절에서 바울은 독자에게 우상에 대한 죄, 육체의 죄, 사회적인 죄, 도덕적인 죄를 회개하고 믿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2장에서 이방인 독자에게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2:4-5)을 회개할 것을, 그리고 유대인 독자에게는 말씀을 가지고 지키지 않음을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그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1:18-32절의 죄를 회개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보여준다. 그렇게 사람이 의롭게 하나님이 여겨주는 것은 할례준수나 의식법, 음식법 준수인 율법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게 여겨준다.

2) 하나님의 의는 일반적으로 폭넓게 지지를 받는데, 하나님의 구원의 파워로 보는 견해다God's saving power; e.g., Käsemann 1969; Stuhlmacher 1965; 75-81, 222-28; Stuhlmacher 1986: 68-83; Stuhlmacher 1994: 61-65; Kertelge 1967, 113-28; Kertelge, EDNT 1:328; Ziesler 1972; Ziesler 1989: 70-71; Althaus 1978: 13-14; Wilckens 1978: 255-56; Dunn 1988a: 41-42 Garlington 1994: 44-49; Stott 1994: 61-64; D. Wenham 1995: 54-58. Schlatter 1995: 20-22). 하나님의 의는 신자의 종교적 지위 이상의 것인데, 하나님의 의는 법적 지위이며 '그 지위에 맞게 생활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의는 신자가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법적 지위이며 변화되는 의로운 생활'임을 이해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앞에서 서 있는 신자의 법적 지위다. 하나님의 의는 법정적 지위에 맞는 합당한 생활방식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마음에 믿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한번 못 박은 변화된 생활이다(6:1-11). 아담의 옛 본성이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사건은 헬라어 아오리스트로 단 한번의 사건으로 표현되는데 아담의 옛죄성이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은 자신의 중생과 회심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되는 것은 내주하는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된다(8:4). 칭의를 위해 어떤 선한 행동을 해서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앞에 자신이 저주 받을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고,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여 그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게 된다(8:7). 성경적 이신칭의를 경험한 신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친 산상보훈의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살려고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힘쓴다. 바울의 로마서에 후반부(12-16)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산상보훈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산상보훈의 그리스도의 법을 제자도의 표준으로 합당하게 생활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의롭게 의롭된 의인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로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 신앙행위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예배하고(12:1), 사탄의 나라인 죄와 사망의 악한 세상 분위기를 배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12:2), 교회공동체 의식을 가지며(12:3-8), 그리스도의 법인 산상보훈의 이웃 사랑 황금율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고(12:9-13), 박해 중에서도 예수님이 가르친 원수사랑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12:14-21). 하나님의 법에 배치되지 않는 한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려고 하며(13:1-7), 그리스도가 가르친 그리스도의 법을 아가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한다(13:11-14).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형제들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건전한 선교 공동체로서 선다(14:1-15:13).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서 상호 간에 서로 다른 문화적 인종적 배경이 다르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합하는 세상과 에클레시아 공동체이다.

3)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한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4) 고린도전서 1:30절에서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이 의의 기원이다("from God," apo theo).

5) 빌립보서 3:9절에서 의의 선물의 특징을 강조한다. 바울은 의는 율법에서 오는 의와 대조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강조한다(Silva 1992: 185-86). 바울은 자신의 의를 반대하며 의는 하나님이 그 기원이다. 게다가 본문은 우리가 가지지 않는 의를 말한다.

6) '의롭게 여기다'(dikaioun, to justify)는 바울에게 법정적 용어다(Schrenk, TDNT 2:215-16). 로마서 8:33절에서 누가 하나님의 선민을 대적하리요? (τς γκαλσει κατὰ ἐκλεκτν θεοῦ; θες δικαιν: Who will bring a charge against God's elect? God is the one who justifies). ''는 법정이 그 배경이다.

결론적으로 크게 로마서 1:17절의 하나님의 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되는 법정적 용어다.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에 반대하여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을 의롭게 여기는 법정적 지위를 말한다. 의의 사전적 의미는 동사(디카우, δικαιόω)'의롭게 하다,' '변호하다,' '무죄로, 의롭게 다루다'는 문자적 의미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의는 그를 의롭게 여긴다.

(2) 또한 하나님의 의는 법적 지위에 걸맞게 행동하는 신자의 생활방식이다. 이 신자의 생활방식은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으로 나타난다. 헬라 세계에서 의를 행하는 의로운 사람(dikaios)은 사회에 제도에 좋은 행동을 하는 자며 신에게 바른 의무를 이행하는 자였다(Homer, Od. 13, 209). 불의한 자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의로운 자였다(dyssebe4s) (Aesch., Sept 598). 그러므로 의로운 자의 의로운 생활(dikaia zoe4 (righteous life))은 시민 양식의 생활이었다... 명사 ''(디카이오수네, δικαιοσύνη)는 법에 따라 준수하여 사는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삶의 질이었다. 구약에서도 문자적 ''(디카이오수네, δικαιοσύνη)는 히브리어(체덱, צֶ֫דֶק)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두 쌍방 간의 관계와 교제로서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에 해당하는 선한 행동을 하는 생활방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신자를 의롭게 여기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동시에 그 지위에 맞게 하나님의 의는 신자를 의롭게 만들어 주고 변화시켜 준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신자는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법에 따라 의로운 생활방식을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보여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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