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순서

국제공항의 경고메시지

중국의 뉴욕상하이

중국의 기본적 국력

중국의 어제와 오늘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

방향이 설정된 중국교회

중국사회주의 종교 문제의 기본관점과 정책

마무리 글

(저자의 요청에 따라 사진은 생략합니다.)

 

인천에서 상하이까지는 항로 거리 820킬로미터, 불과 한 시간 50분의 비행거리다. 기내 식사를 마치자 비행기는 상하이 국제공항에 접근하고 있었다. 인천 국제공항을 이륙한 국적 비행기는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비 내리는 상하이 국제공항 활주로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한국 조종사의 절묘한 착륙 기술을 또 한 번 느낀 순간의 쾌감, 가히 세계적 조종술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운딩 한 번 없이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착륙한 여객기는 푸동(浦東)공항 계류장에 유도되었다. 20여년 만에 중국 땅을 다시 밟은 것 같다. 감회가 새로웠다. 56일의 짧은 여행 기간에 중국 대국’(大國)을 이해하기란 내 그릇이 지나치게 작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동공항 규모가 압도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을까? 여권과 입국보고서 및 검역보고서를 손에 든 채 백팩을 메고 입국심사 대기청사에 들어섰다.

 

국제공항의 경고 메시지

필자가 탄 비행기 앞에는 에티오피아와 싱가포르 국적기가 각각 유도 선을 따라 먼저 계류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입국심사장은 이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필자는 파란 대기선 열 번째 줄 끝에 선 것 같았는데, 계속 몰려오는 승객들로 금새 뒷줄이 앞줄보다 더 길었다. 입국 심사대 부스는 풀가동이었다. 그때 입국대기선 흰 기둥에 게시된 경고문, ‘사진을 찍지 말라’,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라’, ‘조용하라는 메시지가 한어(漢語)와 영어로 눈에 들어왔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계 어느 국제공항에서도 볼 수 없는 경고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공항다운 청사 규모와 활주로는 대국의 풍모를 첫 눈에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왜 굳이 경고 게시글로 기분을 흐리게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속사정은 알고 싶지 않았다. 입국심사는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세관검사에서 휴대 가방은 엑스레이머신이 체크했다. 필자에게는 털어봐야 나올 것 없었지만 승객들의 표정은 긴장이 역력했다.

 

중국의 뉴욕상하이

상하이는 지리적으로 양쯔쟝’(長江) 유역에 위치한다. ‘상하이의 약칭은 ’(), ‘’(), ‘’()라고도 한다. 는 상하이시를 관통하는 황푸쟝’(黃浦江), 우쑹쟝’ (吳松江)하류에 있는 후두’(沪渎, 吳拼, 대나무로 만든 통발이라는 뜻)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행정 편재상 직할시(1949) 인 상하이는 제1차 아편전쟁(1840, 아편전쟁 1840-1842) 후 중·영 난징(南京)조약에 의하여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에 개방, 184511월 영국에 이어서, 미국, 프랑스가 각각 조계(租界)를 설치하여 19438월까지 100년 간 지속되었다. 따라서 상하이는 어언 170여년의 국제도시로 거듭 변모 발전했다. 서울(605.2km2)10배가 넘는 면적(6,340.5km2)과 배가 더 되는 인구를 보유한 상하이는 한 마디로 포화 상태인 듯 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총25.5킬로미터의 상하이 복합터널’(해저 터널 위에 교량 설치)인 장강터널(上海長江 隧橋’, 터널인 橋梁을 합한 말), 푸동(浦東)에서 중국의 세 번째 큰 섬 창싱따오(長興島)까지 8.9킬로미터, 창싱따오에서 충밍따오(崇明島)를 잇는 10.3킬로미터의 터널이었다. 이 터널은 양쯔쟝 수심 10미터 바닥에서 다시 10미터를 더 파서 만든 세계최대 해저터널이라고 한다. 위로는 대교가 설치되어 상하이의 국제도시 면모를 유감없이 보이는 듯 했다. 필자는 이 터널을 지나가면서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의 저력을 다시 실감하는 듯 했다. 마치 미국 버지니아와 매릴랜드를 잇는 37,015미터의 체사피크 베이 브릿지(Chesapeake Bay Bridge-Tunnel)를 보는 것 같았다. 인민광장에서 난징루(南京路)를 거쳐 와이탄(外灘)에 이르는 1.5킬로미터는 우람찬 빌딩숲, 그 숲속에는 중국의 번영과 역량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만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공장소에서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흡연 냄새는 시급하게 조치되어야 할 행정문제로 여겨졌다. 필자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무래도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이었다.

 

중국의 기본적 국력

중국은 국토면적과 인구, 그리고 역사와 문화에서 단연 대국답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각설(却說)하고, 외형적으로 56개 민족이 하나의 중국을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국임에는 틀림없다. 중국을 중국이 되게 한 그 힘의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의문은 여행 내내 뇌리를 맴돌았다. 마침 여행 마지막 날 푸동공항 탑승 게이트 앞에 앉아 하나씩 정리를 해 봤다. 아주 명쾌한 생각이 솟았다. 윤리, 언어, 정치, 이 세 가지 요인에 의한 힘이라고 나름 정리되었다. 이들 세 가지 요인이 바로 중국으로 하여금 대국의 역사를 잇게 하는 것으로서, 중국의 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윤리의 힘

공자(孔子, B.C.551-B.C.479)는 춘추 말기의 교육가· 철학가· 정치가다. 그의 주요 사상 가운데는 유가(儒家)오행’(五行, 혹은 五常) 사상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있다. 즉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성(德性)으로서 한국을 비롯한 일본, 월남, 동남아 일대가 이 문화 영향을 받고 있다(오행간의 상호관계는 생략). ‘오행은 중국 역사와 문화 형성에 기본이 되는 윤리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최상의 덕목이다. 이 윤리의 기본이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언어의 힘

한어(漢語) 사전에 의하면 중국의 56개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130(·藏語 76), 문자는 약30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 한어는 중국 총인구의 91.59%를 점유하는 한족(韓族), 그리고 소수민족이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중 하나로서, 유엔이 공인한 6개 공식어 중 하나다. 한어 사용 점유율을 볼 때 한어가 곧 흔히들 말하는 중국어라고 말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어를 푸통화’(普通話), 즉 중국 표준어인 관팡위’(官方語)라고 한다. 푸통화는 1923년 중화민국 교육부 국어통일 준비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중국 북방의 빠이화문어법(白話文語法)과 베이징 어음에 근거하여 표준화된 한어로서, ‘중화민국 국어로 제정되었으며, 1949년 이후 국어’, ‘푸통화라 불렀다. 이를 해외 화교들은 화위’(華語)라 부른다. 이 푸통화는 마오쩌뚱(毛澤東, 1893-1976) 집정(執政) 27(1949-1976)간의 공과(功過) 중 첫 번째 꼽히는 공()으로써, 당시 인구의 80% 문맹률을 20%로 감소시킨 큰 업적이다(세계최다 성인 문맹국은 인도 약3, 중국은 과거 20년 간 70%감소 시켰지만 여전히 두 번째 문맹국, 2013-2014, UN). 이런 정책에 뒷받침 된 것이 바로 문자개혁이다. 문자개혁은 56개 민족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 언어적 계층의 벽을 넘어서 정책적 공감을 유도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한 것으로 보인다. 문자개혁은 1910년대 지식인 천뚜슈(陳獨秀, 1879-1942)와 후쓰(胡適, 1891-1962), 루쉰(魯迅, 1881-1936), 리따자오(李大釗, 1889~1927)를 중심으로 전개된 급진적 신문화운동과 계몽운동, 5.4운동(1919.5.4)을 거치면서, 중국공산당(이하는 중국과 중공을 구분 사용) 결성(1921)에 이념적 경도를 가져왔으며, 이런 당시 사회적 배경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중국은 언어의 힘에 의하여 하나 된 국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의 힘

공산당이 없다면 신중국은 없다’(沒有共產黨就沒有 中國), 중화인민공화국의 유명한 선전가요에 나오는 가사다. 이 선전가요는 1943년에 지어진 것인데, 마오쩌뚱이 가사의 중국앞에 ’()자를 첨가, 개사(改詞) 해 부르게 한 것이라고 한다. 가사 중에는 공산당은 인민에게 해방의 길을 가리켜주었고他指給了人民解放的道路, 공산당은 중국을 광명으로 인도한다他領導中國走向光明라는 내용이 있다. 중국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하나는 공자 사상의 특징인 대동사상’(大同思想)이 숙주 효과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해석 역시 무리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대동사상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의 이상세계로서, 공평한 분배와 평등사회를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사회주의 이념과 공자의 대동사상이 서로 융합이 가능했을 것이다. ‘대동’(大同)은 중국인민공화국 국기가와 타이완의 중화민국 국가에도 공히 나온다. ‘텐샤따퉁’(天下大同)은 공자의 이상’(理想)이기도 하다. 1949101, 마오쩌뚱은 천안문광장 성루에서 광장에 운집한 30여만 명 군중과 전 세계를 향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성립을 선포했다. 이로써 신 중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신 중국 건설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일 이런 정치적 이념이 아니었다면 56개 민족을 하나의 중국이 되게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은 개혁개방 후 지난 약4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불과 반세기가 채 못 된 시간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발전을 했다. 그런 괄목할 발전은 중국의 잠재적 힘을, 곧 윤리, 언어, 정치에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이 세 가지 힘은 앞으로 예상치 못하는 중국의 역사적 변화에도 중국을 지탱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러나 그마저도 중국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만세반석은 아닐 것이다. 숫자상 중국은 국민소득이 197개국 중 84(2014), 이는 중하위(고수입국 1~63개국) 116~166위 국가군에서는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중상위의 국가군인 64~115위 국가군 국민소득 수준인 7,380불 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도 지역에 따라서는 균등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2015(臺灣行政院統計) 중국의 GDP6,862, 이는 미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홍콩, 타이완, 중국 9개 국 중 최하위에 속하는 수치다. 중국이 화려한 변신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미래에 대한 쓴 소리에 인색하지 않는 미국 학자들 중에는 데이비드 L. 샴바우(David L. Shambaugh)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그리고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과의 앤드류 J. 나단(Andrew J. Nathan) 교수가 있다. 이들 두 학자는 공히 중국 전문가로서 북한의 핵문제 대한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앤드류 나단 교수는공산당의 중국 통치의 황혼(The Twilight of Communist Part Rule in China, 2015.11)이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고, 특히 데이비드 샴바우는 중국 정부 인사들과도 폭넓은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월스트리트저널(2015.3.6)에서중국은 곧 붕궤한다(The Coming Chinese Crackup)라는 글을 게재, 중국의 권위적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들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은 중국 정치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이며, 그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정치적 권위주의라고 지적, 그에 대한 일갈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불투명한 중국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길은 바로 종교정책의 쇄신도 포함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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