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개혁 500주년 해외석학 특별강좌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개혁신학사상연구소가 주관하는 종교개혁 500주년 해외석학 특별강좌가 지난 516()부터 20()까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번 특별강좌의 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역사신학 담당인 칼 투루만(Carl R. Trueman) 교수 이다.

그는 이번 특별강좌의 7회 연속 강의를 통해서 은혜의 신학자들(Theologians of Grace)을 주제로 강의하여 학생들과 참석자들에게 큰 유익을 끼쳤다.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마틴 루터 그리고 존 오웬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강의에서 투르만 교수는 마틴 루터를 3번 강의함으로 강조했다. 기자는 마틴 루터 강의가 이어지는 18일 특별강좌를 취재했다.

▲ 해외석학 특별강좌가 열리고 있는 합동신학대학원 4층 대강당

십자가 신학영광의 신학

트루만 교수는 십자가 신학영광의 신학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루터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전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투루만 교수의 강의를 독자들을 위해 조금 쉽게 풀어 이야기 하면 다음과 같다.

영광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종교지도자들, 군병들 그리고 왼편 강도들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소리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왕으로 인정하겠다고 하는 그들의 사상이 바로 영광의 신학이다. 반면에 십자가 신학은 오른편 강도가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며 주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고백했던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그 십자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영원한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영광의 신학: 십가가에서 내려오라!, 십자가 신학: 나를 기억하소서!

다시 말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군사들 그리고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거부했던 많은 유대인들이 추구했던 세상적 왕권을 가진 메시아 사상이 바로 영광의 신학의 핵심이다. 반면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십자가의 신학이다. 즉 십자가 신학에서 왕권은 인간이 쟁취하는 세상의 왕권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이 주시는 왕권이다.

따라서 영광의 신학자들은 십자가를 실패로 여긴다. 십자가의 연약함을 싫어한다. 십자가는 악이 성공하고 선이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는다. 반면에 십자가의 신학자들은 십자가가 승리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십자가의 연약함 즉 그리스도의 연약함이 강함이 됨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을 보며, 패배에서 승리를 본다.

영광의 신학과 공로주의

십자가 신학은 인간적 범주의 사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생각이다. 반면,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을 인간적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대접을 받기 위해서 친절, 선물, , 아부 등등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에게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축소시켜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영광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선한 행위를 강조하며 공로주의로 빠진다.

▲ 강의하는 투루만 교수(좌) 통역하는 이승구 교수(우)

십자가 신학과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사랑스러운 것에 의해서 규정된다. 다시 말해, 그 여인이 아름답기 때문에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논리이다. 사랑의 대상이 사랑 받을 만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눈에 사랑받을 만한 무엇이 우리에게 존재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찾아내어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사랑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발견의 사랑이 아니라 창조의 사랑이다. 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이다. 반응적 사랑이 아니라 근원적 사랑이다. 십자가는 인간적 생각과 논리 그리고 인간적 사랑을 파괴한다. 하나님은 사랑스럽지 않은 십자가를 사랑의 절정으로 만드신다. 십자가를 통해 사랑스럽지 않은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탄생한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보면 교회의 연약함이 오히려 능력이 될 수 있다. 십자가의 논리로 보면 우리가 갖고자 추구하는 힘과 성공이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

십자가와 칭의

중세교회에서 칭의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졌다. 점점 의로워져서 마지막에 칭의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 공로주의 사상과 영광의 신학이 둥지를 틀게 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있어 칭의는 과정이 아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심지어 의롭지 않은 자 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기에 십자가의 능력이 역사한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스럽게 창조하시고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를 위해 노력의 과정을 밟으며 공로를 쌓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결혼식과 유사하다. 루터는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고 가르친다. 즉 믿음은 칭의의 수단이다. 믿음은 우리의 의가 아니다. 믿음이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다. 사랑스럽지 않은 우리를 사랑스럽게 만드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수단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칭의가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람을 드러내는 영광의 신학, 하나님이 주인공 되는 십자가 신학

결론적으로, 영광의 신학자들에게 하나님은 부차적인 존재가 되고 인간의 능력이 영광을 받게 된다. 영광의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이다. 반면에 십자가의 신학에서 인간의 공로는 사라진다. 십자가 신학에서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다. 십자가 신학에서 인간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어릿광대와 같은 존재이다. 십자가 신학에서 사람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하나님만 드러난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을 인간적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트리고 하나님 그분의 계시만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연약함은 강함으로, 사랑스럽지 못함은 사랑스러움으로, 불의함은 의로움으로 새롭게 창조된다. 투루만 교수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만이 오늘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소망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한편 이번에 개최된 종교개혁 500주년 해외석학 특별강좌는 2번째 시간이었다. 개혁신학사상연구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취리히 대학교의 Emidio Campi 교수를 모시고 201511월에 1차 해외석학 특별강좌를 가졌다. 그리고 칼 투루만 교수의 강좌가 두 번째 시간이었다. 개혁신학사상연구소는 세 번째 특별강좌로 네덜란드 아펠도른 신학교의 Herman J. Selderhuis 교수를 201611월에 초청하여 특별강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내실 있는 해외석학 초청 특별 강좌를 통해서 신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이다. 또한 특별강좌에 참석하는 일반목회자들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재정립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