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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목사 속 넓은 목사
   
▲ 초월적 소통이다. 국적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지만 사진 속 아이와 지금 사진을 들여다 보는 여성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이 사진도 여성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면 아주 오래된 사진이다. 아주 오래전 사진전시회에서 담은 사진을 꺼내보았다.(천헌옥 목사)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늘 가지고 특별히 받은 은혜를 찾아 감사 해야겠다. 얼마전에 낯선 후배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광수 목사님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누구시지요?” “저는 000 목사입니다.”. “어떻게 전화 했습니까? 전혀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되물었다. “모르실 것입니다 오래전 제가 남해에서 목회 할 때입니다. 서창수 목사님이 월간 고신을 맡아 수고 하실 때 그 월간 고신에 제가 섬기는 교회의 어려운 사정이 실려 있었답니다. 그 기사를 읽고 이 목사님께서 격려 위로의 전화를 주신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대답 했다.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실 거예요 그때 그일 고맙습니다. 저의 교회에 한번 오셔서 말씀 전해 주십시오.“

마음에 뭉클하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설교를 부탁하는 일은 고마운 일이다. 가까이 목회하고 친한 사이라도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게 부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목회할 때 언젠가 후배 목사가 자기는 저를 청하여 설교를 부탁 했는데 필자는 자기를 청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더라는 소문을 듣고 청한 일이 있었다.

같은 달에 은퇴하는 두 목사가 있었다. 한 분은 다른 목사를 은퇴식에 청하여 설교를 부탁 하셨는데 상대 목사는 청하여 설교 부탁도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조금 의아하게 생각 한일이 있다.

강단에 타인을 세운다는 것은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저가 몇 번이나 청하여 저의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증거 했고 부흥회 인도 하신 목사님도 계시는데 그 목사는 나에게 설교 요청을 하지 않는 이 사실이 어떤 순간 마음에 생각이 되었다. “잊어 버렸을 거야 남을 탓하기 전에 나도 많을 거야. 설교 하는 것이 주고 받는 장사도 아닌데 어떻게 꼭 받았으니 주어야 하는가? 청하지 않았을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혼자 중얼 거렸다.

이런 시시해 보이는 일들이 사랑의 끈끈한 관계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겠다. 사랑의 동산을 더럽히는 쓰레기 생각들을 말끔히 치워야 겠다. 지혜로워야 되겠다.

우리에게 우리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2,14)

이 말씀을 묵상해 본다. 잡다한 생각과 시시한 일들로 소통에 지장 받는 속좁은 목사가 아니라 속깊이 이해하고 용납하는 속깊은 목사가 되어야하겠다.

 

이광수  hope36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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