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순서

국제공항의 경고메시지

중국의 뉴욕상하이

중국의 기본적 국력

중국의 어제와 오늘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

방향이 설정된 중국교회

중국사회주의 종교 문제의 기본관점과 정책

마무리 글

 

중국 사회주의 종교 문제의 기본관점과 정책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히 제한적이지만 교회 문이 열려있고, 통제적이지만 신앙 활동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것 자체는 한 마디로 기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종교를 역사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 발전, 소멸로 여기는 사회주의 이념 체제에서 교회가 계속 증가하고 기독교 인구가 조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 그런가 하면 헌법적 종교의 자유는 또 다른 규제의 한계에 멈춰있다.

 

종교자유의 빗장 ‘19호 문건

중공중앙(中共中央) 1982331일에 발행 배포된우리 사회주의 시기의 종교문제에 관한 기본관점과 기본정책 중발 1982 19( 1982 19)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를 줄여서 ‘19호 문건이라고 한다. 이 문건은 중국 특색사회주의의 종교에 대한 역사경험과 마르크스의 종교이론에 근거한 원칙과 이정표로서, 그 주제는 명목상 종교 신앙의 자유와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년은 이 문건이 제정 발효된 지 34년이 되는 해이다. 문건 내용은 중국 사회주의의 종교이론, 기본정책, 종교의 법제화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문건은 종교의 자연소멸을 위한 인위적 제도임을 명시하고 있다. 종교 신앙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당의 종교문제에 대한 기본정책이다. 이것은 하나의 장기적인 정책이며, 앞으로 종교가 자연 소멸될 때까지 일관되게 집행하는 정책이다.’(尊重和保护宗教信仰自由是党对宗教问题的基本政策这是一项长期的政策是一直要贯彻执行到将来宗教自然消亡的时候为止的政策)라는 규정에서 문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中國民族宗敎罔, 2012.3.13) 19호 문건은 덩샤오핑 주도하에 제정되었다. 덩샤오핑은 1978년 중공 제11중앙위원3차 전체회의’(三中全會) 후 당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에게 지시, 후야오방은 통일전선부, 국무원종교사무국(현재 국가종교국), 사회과학원 등 전문기구를 동원하여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신 중국성립 이후 종교문제에 관한 전문적 문건이라는데 그 의미를 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와 민족사상을 연관 짓는 규정이기도 하다. 문건이 강조하는 것은 종교와 민족이 종교정책의 기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중공의 종교정책은 민족주의를 이용한 정책이다. 중국공산당이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하여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종교정책 역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의 일환이라 보는 그 이유다. 이문건에서 전 당 동지는, 우리나라는 하나의 다민족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全党同志应当深刻认识我国是一个多民族的社会主义国家)라고 한 말(中國民族新聞罔, 2010.7.6)민족주의표현이다. 이 기본은 삼자’(三自) 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리하면, ‘19호 문건은 중국화 마르르크주의 종교관의 중요한 문건’(科學無神論, 2014.2.16)으로서, 중국내 종교의 소멸을 위해 마련된 법적장치다. 주요 내용은 애국통일전선 구축, 합리적 종교 활동, 애국 종교활동 협력, 공산당원은 종교 신앙 불허, 종교의 반혁명활동 불허, 외국종교활동의 침투 저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건은 종교신앙의 자유와 보호는 사실상 공산당 종교정책 한계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19호 문건 30주년 기념의 의미

2012331일은 중공중앙19호 문건제정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문건 유관기관은 지난30년간의 문건 집행 득실’(得失)과 앞으로의 집행강도를 검토했다. 이 검토에서 관계 당국은 19호문건의 규정범위가 헌법 제36조에 명시된 공민의 기본권인 종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라는데 인식을 공감했다. 그 모순성을 해결하는 한 마디가 바로 국가는 정상적인 종교 활동을 보호한다’(国家保护正常的宗教活动)라는 문구이다. 이 문구에는 국가는 비정상적인 종교 활동은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적 의미도 포함된다.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란 19호 문건이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의 종교 활동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19호문건의 총괄 제정자는 중국공산당 중앙 제2대 영도의 핵심인물 덩샤오핑이다. 그는 중국특색사회주의 문호개방자이며, 중국사회주의 이론 기반과 그것을 체계화한 선도자이기도 하다. 중국특색사회주의 이론 체계에는 종교이론이 포함돼 있어서 전문가들이 특히 19호 문건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덩샤오핑은 중국특색사회주의 종교이론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의 지에팡쓰샹’(解放思想)쓰쓰치우쓰’(實事求是) 사상으로서, 문화혁명 후 당의 종교이론정책에 보루안반쩡’(拨乱反正),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덩샤오핑을 중국특색사회주의 종교이론의 창립자로 호평하는 것이다. 문건은 마오쩌둥 시대의 종교정책 실책을 발전적으로 개선한 의미가 짙다. 1957년의 좌() 편향적 계급투쟁, 특히 문화혁명시기에 당과 국가가 범한 시행착오를 만회하기 위해, 197610, 이른바 사인방’(四人帮)을 표적으로 처리하고, 문화혁명을 종결시켰다. 이 사건이 바로 덩샤오핑의 정치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서 197812, 중국공산당 제11차 삼중전회(三中全會)를 개최, 당의 주안점과 인민의 이목을 사회주의현대화건설로 방향을 돌렸다. 덩샤오핑의 정치적 역량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후 전국 유관 기관은 문화혁명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보루안판쩡’(拨乱反正)을 착수, 급기야는 19호 문건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덩샤오핑의 解放思想, 實事求是사상이 확립된 것이다. 2016422~23, 베이징에서 거행된 전국종교공작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은 연설을 통하여 애국주의와 사회주의 기치아래서 종교계와 함께 통일전선 결성을 강조했다(人民罔, 2016.4.23) 중공의 종교정책은 체제와 직결된 중요한 혁명과업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의 광범위한 정신적 공황상태는 30년의 이데올로기 투쟁과 마오쩌뚱 개인숭배의 결과’(AsiaNews.it, 2012.6.9)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종교는 초자연의 힘을 믿는 사회의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19호 문건은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의 밝은 미래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중국 종교정책의 한계와 모순

19호 문건이 규정하는 중국 종교정책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른바 통전부 산하종교 관리 기구인 삼자애국운동위원회는 사실상 중국공산당 기구다. 삼자 기구는 공산당의 종교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정책은 국가 공권력이 종교를 통제하는 정책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과 동구권 정책을 그대로 본받은 것으로 보인다. ‘종교정책은 종교 자체나 개인의 정신적 혹은 영성의 일이 아닌, 국가사업, 특히 공산당의 혁명과업의 하나로 전락한 셈이다. 다시 말하면, 삼자운동은 국가가 종교계 내부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형태인 것이다. 일찍이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주장한 레닌은 정교분리가, 사회주의 무산계급이 현대 국가와 현대 교회에 제시하는 요구라고 한 논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종교는 중국공산당 혁명 과업에서 하나의 문제로 초점이 맞춰져있다. 19호 문건이 종교문제정책이라고 표현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종교문제가 정식으로 다루어진 것은 19505, 당시 총리 저우언라이가 중국기독교 지도자 우야오쫑(吳耀宗, 1893-1979; 1949년 제1차 전국정협회의 종교계 수석대표; 삼자애국운동위원회 발기인), 류량무(劉良模, 1909-1988; 1950728, 오야오쭝 등과 함께 공산당 혁명에 협조하기로 연명서명), 왕지쭝(王梓仲, 1895, 회중교회 목사, 삼자 발기인), 짜오쯔천(趙紫宸, 1888-1979; 20세기 중국기독교 조직신학자, 옌징대학원 종교학과 교수) 등과 만나 장시간 토의 끝에 삼자혁신안, 삼자애국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다. 삼자운동은 당의 종교내부에서 정치운동, 종교관리 체제 확립을 기하였다. 이는 1950-1978년까지 28년 간 중공의 종교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시대에 맞는 개방형 제도를 제정한 것이 바로 19호 문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행정관리 체제는 계획경제와 계급투쟁시대의 종교 관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경제는 물론, 다양한 변화의 조류에 중국이 직면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상황에서 종교정책의 효율성과 국가 이익 차원에서 과연 바람직한가는 관계 당국이 먼저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삼자 기구를 통하여 어느 정도 종교를 통제할 수는 있으나 당국이 말하는 비정상의 지하종교 활동을 통제하기에는 이미 행정력과 공권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는 일각의 견해가 타당할 것 같다. 향후 중국의 종교정책이 어떤 형태로 변할 것인가, 아니면 1982년 이전으로 회귀할 것인가는 자못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회귀정책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국이 안고 있는 종교정책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종교정책의 발전적 개선일 것이다. 그것은 종교 신앙의 전면적 개방, 이것만이 중국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종교정책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 대열에서 당당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맺는 글

 

벌써 34년이 지난 기억, 1982년 필자는 홍콩을 여행하면서, 당시 홍콩과 중국 대륙의 분계 지점이었던 썬쩐(深圳)에서 미동하는 중국을 보았다. 현재 그곳은 중국의 실리콘벨리가 되어있다. 그 때 필자는 직감적으로 중국이 몰려오고 있다는 증압감을 느꼈던 것 같다. 때는 세계 역사를 문명사관으로 본 아널드 토인비 박사가 ‘21세기는 중국인의 세기가 될것이라고 말한지 10여년이 지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토인비 박사의 혜안은 정확했고, 그의 판단은 투명했음을 이해할 듯도 하다. 필자는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중국이 비상하는 용()트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거대한 을 상하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리라. 청조(淸朝) 300년 간의 번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볼 일이지만, 개혁개방 후 중국은 놀라운 발전을 보여온 것임에는 틀림없다. ‘상하이에서 다시 본 중국’, 난징루부싱제(南京路步行街)에서 필자는 뉴욕의 맨허튼 중심가에 와 있다는 착각을 했고, 황푸쟝(黃浦江) 와이탄(外灘)에서 바라본 높이 468미터의 14층 뚱팡밍쪼우(東方明珠, 1994) 방송탑은 개혁개방 10여년 만에 만들어낸 쾌거, 그로부터 17년 중국은 우주정거장 톈꿍’(天弓, 2011.9.29)을 쏘아올렸다. 중국은 지금 용트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중국, 개혁개방 후 삶의 질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더 좋은 삶의 질을 위해 해외로의 대탈출을 하고 있는 것은 다소 의외라 여겨졌다. 중국인들은 왜 중국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23년 간 중국인 약1천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이는 신 중국전후 이주 숫자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인 64%의 백만장자들이 이주 준비를 완료하고 있으며, 1/3의 최고 부자들이 해외 투자 이민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한다. 2013년 전 세계 990,553명이 미국 영주권(Green Card)을 획득했다고 하는데, 그 중 멕시코인 이 136,028명으로서 선두를 차지했고, 다음 71,798명의 중국인이 뒤를 이었다(搜狐財經business.sohu.com, 2014.10.14) 중국인들은 미국 이민을 가장 선호하는 이민 대상국으로 꼽고 있다. 만리장성이 무너진 것도 아닐 텐데 중국인들은 왜 중국 땅을 버리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일까? 홍콩 출신 노르웨이 국적의 홍콩인 정치평론가 쫑쭈캉(锺祖康, 1960) 작가가 쓴다음 인생은 중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来生不做中国人; 允晨文化, 臺灣, 2007)라는 책은 현재 중국인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지 않나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작가는 왕이’(網易; 網易NetEase) 설문 조사에서 만약 다음에 태어난다면, 당신은 다시 중국인이 되고 싶으냐?’ 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65퍼센트가 중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再不願意成爲中國人)라는 답변을 보고, 이를 그의 책자(冊字)로 선택했다고 한다. 또 다른 톈야’(天涯; 天涯社區, 2013.3.26)는 응답자 중 70퍼센트가 다시는 중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했고, 응답자 중 20퍼센트는 금생에서도 중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다만 응답자 10퍼센트만 여전히 중국인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존엄’(尊嚴)과 현재의 공정’(公正) , 미래의 희망’(希望)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세상에서도 여전히 중국인으로 남겠다는 이유는 중국 대륙 땅이 유구한 역사의 박물관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만약 한국인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어도 유사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중국에는 LED 칩 제조업체가 62개 정도였는데, 지난 5년 동안 이들 업체 대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현재는 20개 업체만 겨우 가동 중이며, 앞으로도 남은 제조업도 가동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중국에서 사람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돈도 사람과 함께 빠져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황금알을 기대하고 중국을 찾았던 외국인 기업가들도 중국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20세기 냉전체제 이래 중국은 미국을 미제국주의’(美帝國主義)로 규정짓고 적수(敵手)로 상대했다. 그런데 중국은 왜 자국민 학생들을 대거 미국에 유학시키고 있을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중국인들은 왜 미국을 선호하거나 미제국주의문화를 배우려 하는 것일까? 중국인들은 왜 미국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과연 중국인의 대탈출이 시작된 것일까? 중국인에게 중국은 그들의 가나안 땅이 아니란 말인가? 중국 중산층의 미국 이민 경쟁은 치열하다는 말이 별로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2013년 미국이 중국인에게 할당한 투자이민 쿼터(EB-5)6,895, 이는 2011년과 비교할 때 2,500개가 증가한 셈이라고 한다(South China Morning Post, 1903, 20150122) 쿼터 할당량이 가능하다면, 미화 50만 불로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미국 투자이민은 중국 부자들에게 경쟁을 넘어서 사활을 건 문제일 수 있다. 하다못해 미국은 지난 해 중국인들이 EB-5 비자 80%를 차지하자 잠정적으로 비자 프로그램을 중단하기까지했다고 한다. 최근 북핵(北核) 위협이 점증하는 가운데, 어떤 북한 전문가는 중국인 10만명이 서울 일원에 깔려있는 한 김정은이 무모한 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중국인이 다치기라도 하면 중국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상하이에서 다시 본 중국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과연 희망이 없는 땅일까? 필자는 상하이에서 중국의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기독교의 중국시대일 것이다.2030宣敎中國...,

May-2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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