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삼경 목사

이종윤 목사님의 설교와 저서 가운데 미국의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Dr. James Montgomery Boice) 책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뜨겁다. 과연 어느 정도 일치하거나 비슷하기에 한국교회의 내로라 할 수 있는 대학자요 목회자인 이종윤 목사님에게 은퇴 후에 ‘표절’이라는 불명예가 덧칠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을까. 이번 표절 논란의 핵심은 원저자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에 있는 것을 마치 자기의 경험, 자기의 연구, 자기의 깨달음으로 설교하였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까지 하였다는데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론: 이종윤(서울교회 원로 목사) 목사님의 표절 문제를 취급하면서

1.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문제에 대하여 취급하게 된 동기는 아래와 같다.

우선 아픈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종윤 목사님은 교계 선배이시고, 거기에다 서울교회를 이미 은퇴까지 하셨고, 또 교계에 많은 일을 하시어 어떤 분들에게 존경 받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분의 표절성을 밝히려니 우선 마음이 아프다. 또 다른 한국교회의 문제요 아픔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문제를 취급하게 된 동기가 있다. 우선 개인적으로 이 목사님답지 않게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을 표절하여 설교하고 책을 출판하였다는 지적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여러 채널을 통하여 듣고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직접적인 동기는 장신대 K 교수가 서울교회에서 2016년 3월 6일에 ‘이종윤 목사님의 글은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나돌았고 필자에게도 흘러들어와 보게 되었다. 이 동영상은 이 목사님의 표절 문제가 서울교회 내부에서 이미 공론화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간 모아진 자료들을 통해 표절 징후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K 교수가 이 목사님을 옹호하기 위하여 한 말이지만, 그 변호가 오히려 이종윤 목사님을 어렵게 만드는 동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 교수가 세 번에 걸쳐(3월 7일, 6월 5일, 6월 12일) 이종윤 목사님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 핵심 내용을 먼저 요약하자면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원저자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은 설교집이 아니라 주석서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 K 교수는 ‘모든 목사들이 주석서를 보고 설교를 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여 표절이 아닌 것처럼 주석서를 가지고 설교한 것이니 표절이 아니다.’라고 했다.

둘째, 비록 이종윤 목사님이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으로 설교하고 또 그것을 출판까지 하였지만, 그 책들은 학술서적이 아니라 설교집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 이종윤 목사님은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을 필요한 부분 부분을 거의 그대로 번역하여 자기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 교수는 ‘그것은 학술서적이 아니라 설교집이기 때문에 주를 달지 않아도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수필은 주를 달지 않고, 달지 않아도 표절이 아니듯 설교를 하였기에 문제를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셋째, 1988년에 이종윤 목사님이 몽고메리 목사를 초청하여 자동차를 타고 가는 중에 몽고메리 목사가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을 하였기에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K 교수는 ‘1988년에 이종윤 목사님께서 몽고메리 목사를 초청하여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한국 목사님들이 강해설교를 하면 좋겠는데 강해 설교를 할 자료가 부족하다. 당신 책을 보았는데 당신 책이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고, 강해 설교를 할 때 좋은 자료가 있다고 판단된다. 설교하고 강해하는데 사용해도 좋겠냐고 했더니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기에 표절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신간으로 나온 빌립보서까지 주었다’는 것이다.

넷째, K 교수는 이종윤 목사님이 최근에 건네 준 설교 5편을 봤는데 ‘표절의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0%에 가까웠다’고 하였다. K 교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이종윤 목사님으로부터) 설교 5편을 받았습니다. 직접 읽고 확인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표절의 증거는 거의 찾아올 수 없었습니다. 0%에 가까웠습니다.”라고 했다.

이 K 교수가 6월 6일 오후 5시에 S 목사와 함께 필자를 찾아왔는데, ‘<교회와신앙>이 2016년 6월 2일에 보도한 [이종윤 목사 설교와 저서... ‘보이스’ 표절논란]의 글을 내려 달라’는 것이 방문 요지였다. S 목사는 먼저 가고, K 교수와 같이 식사도 하며 비교적 긴 시간동안 대화하였다. 당시 필자는 ‘표절을 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저자의 경험을 자기 것처럼 하고, 상황이 맞지 않으면 그것은 변형하는 거짓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후 필자가 이종윤 목사의 <에베소서> 설교와 몽고메리의 책을 비교해본 결과, 이 목사님은 몽고메리의 책에서 밝힌 경험을 자신의 경험처럼 설교하고 무슨 이유인지 그 내용을 바꾸는 거짓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은 구체적으로 후론하겠다. 그러나 이 목사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원저자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하고, 나아가 그 거짓을 숨기고, 그 말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하기 위함이라고 보였다.

그래서 6월 11일 오후 2시경에, 먼저 S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말하고, K 교수에게 이를 말해주려고 전화를 시도하였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전화를 달라’는 문자를 남겼더니, K 교수가 전화를 주어 통화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6월 12일에 서울교회에서 K 교수가 필자를 언급하면서 ‘최삼경 목사가 자신(K 교수)이 중국에서 오는지 어떻게 알고 시간을 맞추어 전화를 했더라’ ‘<교회와신앙>의 글을 내려 달라고 하였는데 거절을 하였고, 여기에 끼지 말라고 협박을 하더라’는 취지로 말했던 것을 담은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아연실색을 하여 K 교수에게 긴 문자를 넣고 다음 주에는 내가 보낸 이 문자로 읽어주며 진실을 말해 달라고 하였는데, 필요하면 후에 그가 S 목사와 나를 방문하여 나눈 대화와 내가 보낸 문자들을 소상하게 밝히면서 글을 쓸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일들이 필자로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여부에 대해 밝히는 글을 쓰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또 그것이 옳다고 여기며 한국교회를 더 바르게 하는 길이란 생각에서 때문이기도 하다. 이종윤 목사님과 서울교회의 깊은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이 K 교수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직 필자가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도 이 일에 당사자가 아니라 제 삼자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K 교수가 아니라 이종윤 목사님이다. 본인은 K 교수의 이종윤 목사에 대한 옹호 발언은 첫째는 모순 자체요, 둘째는 전혀 객관성이 없는 엉터리 변호라고 확신하지만 K 교수와 직접 논쟁을 할 마음이 현재는 없다. 그래서 그냥 K 교수라고 해두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2.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문제에 대해 논하는 필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필자는 지금 서울교회 내부의 분규에 대하여는 평가할 마음이 없다.

필자는 이 글이 서울교회 내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않으려고 한다. 표절 문제 외에 분명히 둘 중에 하나는 옳거나 그르거나, 아니면 더 옳거나 더 그르거나 할 것이다. 필자가 그 교회 내부의 일들을 보았다고 하여도 그 선악을 선명하게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것을 섬세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은 필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문제는 다르다. 이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데 하나도 어렵지 않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 공적인 문제이며, 그의 표절성은 명명백백하게 선명하다. 굳이 학자의 의견을 빌리지 않아도 평신도가 보아도 선명하다. 그래서 이 목사님의 표절 문제만 취급하려고 한다.

둘째, 이종윤 목사님께서 직접 표절 문제의 진실을 말씀해주시길 기대한다.

당사자인 이종윤 목사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직접 필자의 글과 표절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셔야 옳다.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표절이 아니다’라고 하고, 표절이지만 잘못은 없다고 생각되시면 그렇다고 하셔야 한다. 인터뷰로 말씀하시든지, 아니면 글을 보내 주시든지 하시길 기대한다. 이 목사님의 어떤 형태의 반론 변호 내지 변명도 다 수용할 것을 약속한다.

필자는 이종윤 목사가 어떤 핑계를 구실로 대리자를 내새워 논쟁을 시도하려고 할 가능성을 안다. 그러나 대리자로 논쟁하게 한다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꼭 그렇게 하시려면 그가 누구든 이종윤 목사님께서 직접 공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왜 그 사람을 대리자로 인정하게 되었는지와 대리자의 글 하나하나를 확인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셔야 한다. 그것이 책임성 있는 분의 책임성 있는 자세라고 본다.

셋째, 이종윤 목사님도 자신의 잘못을 그냥 묻어 달라고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그보다 누구보다 더 높은 윤리를 이종윤 목사님에게 요구해도 잘못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종윤 목사님의 학력과 경력 모두 대단하다. 이종윤 목사님의 학력을 살펴보자면 대략이 이렇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사, 동대학 대학원 석사,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석사(B.D),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 신학 수학,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학위(Ph.D), 튀빙겐대학교대학원 신학 수학, 장신대신대원명예신학박사, 미국웨스트민스터 신학대신대원 명예신학박사(D.D) 등이다.

그리고 그의 경력도 화려하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원 교수, 미국 풀러신학교 교환 교수, 아세아신학연맹(ATA) 이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창립 및 초대총무, 이스라엘 탄투어대 초청교수,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방문교수, 전주대학교 총장, 충현교회 목사, 세계복음주의협의회(KIMCHI) 원장, 한국로잔위원회 회장, 연세대 기독인동문회장, 한국군선교위원회 비젼 2020운동위원장, 탈북난민보호 UN청원서명운동위원장, 아시아로잔위원회 회장, 장로교신학회장, 주기도문사도신경 새 번역한기총전문위원장, 총회표준주석편찬 공동위원장, 한국장로교총연합회상임회장, 요한 칼빈 5백주년기념사업회 대표회장,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등이다.

이종윤 목사님는 이런 분이다. ‘그러기에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그런 논리는 이종윤 목사님을 욕되게 하는 수치스런 논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 목사님이 살아오신 생애를 볼 때, 누구보다 정직을 외치셨고 대한민국의 어떤 목사보다 진실과 개혁을 추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 목사님의 진실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밝히기를 원하실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작은 자에게 큰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큰 자에게 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큰 자로 책임은 작게 지려고 한다면 논리적 균형도 없는 사람으로 그에게 윤리적 균형은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목사님의 생애를 볼 때, 그리고 그 분의 ‘셀프 이미지’(self image)를 볼 때, 필자에게 요구할 윤리의 수준보다 이 목사님에게는 10배 아니 100배의 높은 윤리를 요구해도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억울하실지, 아니면 고마워하실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목사님이 어떻게 하시느냐를 보면 본심이 잘 나타날 것으로 본다.

넷째, 필자는 K 교수가 이종윤 목사를 옹호하려고 할 때의 사용한 논리를 중심으로 비판하려고 한다.

필자는 K 교수와 논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윤 목사를 옹호하는 분들은 K 교수의 말을 이용하고, 옹호자들은 K 교수가 한 그 이상의 논리를 넘어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K 교수가 직접 논쟁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그가 필자를 찾아와서 한 말들이나, 그 후에 그가 필자의 인격을 모독한 점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비판하게 될 것이다. 이점을 K 교수도 이 목사님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본론: 이종윤 목사님이 남의 책에 의하여 설교하고 그것을 책으로까지 출판하였지만, ‘그것은 표절도 아니고, 비난 받을 일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표절이란 없다는 말이다.

1. 표절이란 무엇인가?

우선 표절이 무엇인가부터 살펴보자. 표절에 대한 학문적 판단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종윤 목사님이 수 십 년 동안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에 의하여 설교를 했다는 점과 완역이 아니라 비록 부분 부분이지만 거의 그대로 번역하여 책으로 출판하고, 몽고메리 보이스의 주까지도 그대로 자기가 연구한 것처럼 붙여서 출판하였고, 단 한 번도 몽고메리 보이스의 이름을 밝힌 일이 없으며, 그 책을 팔아 이익을 남겼는다는 점 등이 표절 논란을 증폭 시키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절은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니다. 우선 국어사전적 의미부터 보자. 이렇게 되어 있다. “표절[剽竊] 이란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이라고 되어 있다. ‘일부만 자기 것으로 몰래 따서 쓰는 것’도 표절이란 말이다. 음악 한 소절을 그대로 인용하여도 표절이 된다. 글 전체가 아니라 한권의 책 중에 핵심 사상 몇 줄을 그대로 사용하였어도 표절이 된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은 일부를 몰래 따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원저자의 책들을 그대로 자기 사상으로,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그래도 표절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2. 표절인지 아닌지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표절이 전문가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표절이 우리 몸의 MRI나 MRA를 찍어야 아는 수준이 아니다. ‘표절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표절을 덮어주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논리라고 본다.

표절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서울교회 교인들 중에 있고, 이종윤 목사님의 책을 본 독자들 중에 있다. 특히 친 이종윤 목사님들 교인들 중에 현재 담임목사인 P 목사가 표절설교를 했다고 고발하신 분들이 표절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 것으로 본다. 현 담임목사인 P 목사가 남의 설교를 표절하여 설교 한다고 항의하고 공격했던 분들에게 표절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답이 있다. 필자가 알기로 P 목사는 남의 설교를 가지고 설교한 것으로 안다(한 편인지 두 편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사과까지 했다고 들었다. 담임목사를 공격한 분들의 주장을 이런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당신의 설교를 들으며 이것은 당신의 인격과 노력과 경건에서 나온 설교로 알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의 설교를 그대로 가져다가 했더군요. 실망스럽습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회개하십시오.’라는 말일 것이다.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도 마찬가지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표절은 빠르고 쉽게 알 수 있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표절은 잘 모르겠다는 것은 성령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이종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설교집을 보면서, 이종윤 목사님의 경험과 연구와 기도와 경건과 인격에서 나온 말씀으로 듣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라는 것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번역하는 수고 정도만 했을 뿐 어떤 노력도 없이, 몽고메리 보이스의 경험과 연구와 경건을 통하여 나온 진리들을 자기 것으로 몰래 썼다는 것을 알고 났을 때 가지는 그 교인들의 허탈감과 배신감과 분노심이 바로 표절에서 온 결과이다.

만일 이종윤 목사님이 목회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하는 설교는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고, 나는 번역을 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원저자는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입니다.”라고 말하고 했다면 사람들이 이종윤 목사님을 그렇게 존경했을지, 서울교회가 그렇게 부흥했을지 의문이다. 이종윤 목사님의 명예 또한 지금의 10%도 미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동일하다. 서울교회 교인들을 물론 한국교회 목사들까지 이종윤 목사님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을 보면서 ‘이종윤 목사의 목소리를 듣고, 이종윤 목사란 분의 노력과 땀과 경건과 인격에서 나온 진리’로 알고 존중하며 보았을 것이다. 만일 이종윤 목사님이 원저자가 몽고메리 보이스라는 점을 밝혀 자신은 역자라고 정직하게 하였다면 그 존경은 다 몽고메리 보이스에게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마땅한 것이다. 오직 이종윤 목사님에게는 역자의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만 감사할 것이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그것이 아니었다. 몽고메리 보이스의 것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이종윤 목사님은 서울교회 시작부터 은퇴까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아니 그전에 충현교회 담임목사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표절 설교와 책을 출판했다. 참으로 긴 속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난 이 목사님의 표절에 대하여는 ‘표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표절이 아니다’라고 하는 그 눈은 어떤 눈이며, P 목사에 대하여는 한 두 번의 설교만으로도 표절을 알아내고 공격하는 그 이중 양심은 어떤 양심일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든다.

3. 남의 글을 표절을 하면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는 표절자가 원저자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둔갑시킨다. 다음으로는 표절자는 원저자가 피땀 흘려 연구하여 얻은 진리들을 자기가 연구한 것처럼 속이게 된다. 그리고 표절자는 원저자의 경건과 기도를 통하여 그 사람의 인격 속에서 나온 진리를 표절자의 경건과 기도 속에서 나온 진리처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씩 간단히 취급해 보자.

첫째, 표절이란 원저자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처럼 교인들을 속이고, 때로 알맞게 각색까지 하여 자기 경험으로 둔갑시켜 철저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 원저자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의 판권 ⓒ비전북출판사 책 복사

원저자 몽고메리의 <에베소서> 설교 2권에서(2001년 11월 10일에 한국어로 번역) 에베소서 6:10-12을 설교하며 나온 말이다.표절자의 첫 번째 죄는 원저자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원저자의 경험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각색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종윤 목사님이 그랬다. 여기에서 이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 하나만 제시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그것을 더 드러내겠다. 그래서 표절이 악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도 이종윤 목사의 표절에 대하여 너그러운 사람들은 가롯 유다에게도 너그러울 사람이며, 거짓말쟁이 사탄에게도 너그러울 사람이라고 본다.

“<우리의 영적 전쟁>,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언제인가 ‘남자는 그의 첫 여자 친구를 결코 잊지 못한다.’는 말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 말과 비슷하지만 설교자는 자신의 첫 설교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열 네 살 때 첫 설교를 했다. 그때 내가 택했던 본문은 지금 내가 강해하고 있는 바로 이 구절이었다.”(비전북출판사, 2001년 11월 30일 발행)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14살 때 본문 에베소서 6:10-12을 가지고 첫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 원저자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 내용 ⓒ비전북출판사 책 복사

이종윤 목사는 이렇게 하였다:이 원문을 이종윤 목사님은 이 몽고메리 보이스만의 경험에서 나온 설교집을 보고 과연 어떻게 이용하였을까? 빼고 했을까? 유사한 경험을 중심으로 각색을 했을까? 만일 이 목사님이 정직하다면 이 때만은 몽고메리 보이스가 원 자자임을 밝히고 설교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뺐다고 해도 정직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경험으로 해도 정직하지 않고, 각색했다면 더 큰 범죄다.

“얼마 전에 이런 잡글을 읽는 중에 이런 말을 읽고 혼자 조소를 했습니다. ‘A man never forget his first girlfriend’ 남자가 자기의 첫 번째 여자 친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남자가 그랬데요,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어떤 첫 번의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내 인생 가운데 첫 번째 한 설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그 당시 나이가 19살 때 대학교 2학년 생, 제가 섬기는 교회의 청년회와 대학부가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있을 때, 제가 청년부 회장이 되었습니다. 헌신 예배 시간인데, 임원회를 열었어요. 누구를 강사로 모실까? 그러다가 우리 결론은 우리끼리 하자. 회장님이 하시오. 아 절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는가? 그래도 하라고, 그래서 목사님에게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된지 목사님이 허락을 하셨어요, 큰일 났습니다. 얼마나 그 때 떨었는지! 그런데 그 때 왜 기억이 나는고 하니 그 본문이 바로 오늘 읽은 에베소서에 있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내 인생의 첫 번 설교 제목. 그런데 그것이 설교인지 간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내가 처음으로 강단에서 말씀을 외친 제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서울교회 홈피, 제목: <우리들의 영적전쟁>, 2009년 6월 28일)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우연(?)이 있었을까? 에베소서 6:10-12로 첫 설교를 한 것도 같을까? 몽고메리는 이 본문의 설교로 14살 때 설교를 했고, 이종윤 목사는 19살 때 설교를 했다는 것이 다르다. 필자는 처음에, 혹시 몽고메리 보이스의 설교를 그대로 표절하다 보니 14살을 19살로 실수하여 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다. 19세 경험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으로 잘 각색되어 있다. “제가 그 당시 나이가 19살 때 대학교 2학년 생, 제가 섬기는 교회의 청년회와 대학부가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있을 때 제가 청년부 회장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이나, “헌신 예배 시간인데, 임원회를 열었어요. 누구를 강사로 모실까? 그러다가 우리 결론은 우리끼리 하자. 회장님이 하시오. 아 절보고 하라는 것입니다.”라는 말이나, “얼마나 그 때 떨었는지! 그런데 그 때 왜 기억이 나는고 하니 그 본문이 바로 오늘 읽은 에베소서에 있는 말씀이에요.”라는 말은 이종윤 목사님만이 한 경험이 분명하다. 끝으로 “아무튼 내가 처음으로 강단에서 말씀을 외친 제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라고 하여 자신의 경험으로 못까지 치셨다. 아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치가 있을 수 있는가? 이종윤 목사님은 훗날에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와 같은 삶을 살면서 같은 설교를 하도록 작정된 사람이란 말인가?

설교하기 전에 서론적 멘트도 같다. “A man never forget his first girlfriend”(남자가 자기의 첫 번째 여자 친구를 결코 잊을 수 없다.)라고 한 말도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에 나온 글을 그대로 읽어주었고,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이 말에 대한 해석까지도 똑 같다는 것이다.

▲ 이종윤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 표지와 판권 ⓒ서울교회 필그림출판부 책 복사

이리보아도 거짓이요, 저리 보아도 거짓이요, 위에서 아래도 보아도 거짓이요, 아래서 위로 보아도 거짓이며, 살짝 보아도 거짓이고, 쎄게 보아도 거짓으로 보인다. 신학자가 보아도 거짓이고, 평신도가 보아도 거짓이고, 전문가가 보아도 거짓이고, 비전문가가 보아도 거짓일 것이다.이종윤 목사님이 몽고메리 보이스이고, 몽고메리 보이스가 이종윤이란 말인가? 아니면 이종윤 목사님은 19살 때부터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을 읽었고, 그 때부터 표절이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종윤 목사님이 19살 때(대학 2학년 때)는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이 나오지도 않았던을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여기에서 밝힐 놀라운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이종윤 목사님은 몽고메리의 <에베소서> 책을 보고 위의 설교를 한 후 그것을 책으로 출판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 설교 때 말한 경험이 사실이라면 그대로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의 <에베소서> 책(1991년 3월 31일 초판, 2001년 4월 13일 4판 인쇄)에서는 이 첫 설교 경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훗날 언젠가 자신의 책이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에서 왔다는 것이 밝혀질 것을 예견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책을 쓸 때만은 진실의 도전을 받으셨다는 말일까? 그것도 이종윤 목사님께서 대답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이런데도 ‘주석이다, 설교다, 허락을 받았다. 학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표절이 아니다’는 등의 논리로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옹호할 수 있을까?

고맙게도 지금도 서울교회 홈피에 이종윤 목사님의 설교들을 그대로 올려두었다. 필자가 추측하기로 서울교회 홈피에서 이 목사님의 설교들을 내리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지켜볼 일이다. 그대로 둘 용기(?)가 있는지 아니면 내릴 진실(?)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그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이 목사님의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란 점이다.

4. 필자는 본 글에서 우선 여기까지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문제를 지적하고 이어서 쓰려고 한다.

글의 흐름을 보아서는 다 써야 하고, 효과를 위해서는 짧게 쓰고 다음에 써야 한다. 후자를 택하겠다. 위의 <에베소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거짓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표절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발견되는 만큼 밝혀나가겠다.

 
결론: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카피(copy)다’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앞 서 살펴 본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와 이 목사님의 <에배소서> 사례로 미루어 보면, 이는 표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만일 표절이 아니라고 한다면 ‘표절이 아니라 카피(copy)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필자는 위와 같은 내용을 보고서도 만일 ‘이종윤 목사는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보다 더 미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표절한 책의 목차만 비교하여도 그 표절성은 쉽게 알 수 있다. 원저자의 연구와 경건의 산물을 마치 자기의 것인양 사용한 것들을 이어서 찾아내고 분석하여 비판하기로 하고 우선 첫 번째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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