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구 목사 /서울영동교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보셨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비통히여기시고 불쌍히여기셨습니다(11:33). “비통히여긴다는 말은 전쟁터의 말이 거센 콧김을 내뿜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일에 대한 맹렬한 분노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에 묶어 버리는 죽음의 권세와그것을 이용하는 사탄에 대해 분노하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죽음앞에 선 인간을 불쌍히여기셨는데, 이 말은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심해 마음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11:35). 이처럼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현실 앞에서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셨습니다.

우리는 최근 옥시 사건의 진상을 뉴스로 보고 있습니다. 가습기 세정제 때문에 호흡기가 손상된 어린 아이가 목에 호스를 꽂고 있는 모습, 그래서 어린이 날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눈물은 아이와 가족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면서 옥시라는 기업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분노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을 향한 유족들과 국민들의 감정이 희생자들을 향한 슬픔이 전부였다면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분노가 해결되지않았기에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미결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탈북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도 그들에 대한 불쌍함만이 아니라북한의 악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함께 스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물은 너무도 얕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예수님께서 흘리셨던 그런 눈물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먼저 고통 당하는 이들과 공감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너무나도 필요 합니다. 또한 그런 고통을 만드는 악한 구조나 조직, 사회에 대한 비통함과 참회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런 불의에 대한 실제적인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 시민단체에서 펼치는 옥시 불매운동도 그런 것에 해당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사회, 교육에서 죽음의 현상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이러한 때에 필요한 것은 바로 눈물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공감의눈물, 그리고 세상을 향한 비통한 분노의 눈물, 예수님의 뺨에 흘러 내린그 눈물이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흘러 내려야 할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이런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런 예수님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있어야 이 세상을 향한 죽음의 권세는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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