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예배의 아름다움

장로교회 예배의 특성과 실제

 

서언

▲ 장희종 목사(명덕교회 담임)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으나 특별히 공예배는 성별된 장소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예배적인 측면에서 구속은 원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신 것이다. 예배를 단순하게 정의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장로교회 예배의 특성은 한 마디로 언약적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할 때의 주도적인 인물은 스코틀랜드의 언약 사상에 투철했던 인물들이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서에는 언약이라는 어휘가 68회나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앙고백문 전체가 언약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도 언약적이어야 한다. 언약적 예배에는 하나님과 그의 언약 백성이 있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기여하시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을 좀 더 신중하게 정의한다면, 언약의 당사자들은 동등한 신분은 아니다. 그러므로 상호 기여하는 부분도 대등한 종류나 범주가 아니다. 단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간에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는 상호적이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나타난 이 언약의 기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다.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선물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셨고, 지금도 여전히 그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 언약을 계속 유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갈 때에도 하나님께 받았던 것을 되돌려 드릴 뿐이다. 언약적 예배의 요소들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다가오시는 요소와 목사를 통해서 혹은 목사 없이 예배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요소로 구분된다.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고자 한다.

 

1. 주일 공예배의 첫 번째 부분은 예배의 부름, 문안인사, 영광찬송의 요소로 구성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의 부름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루터는 예배를 찬송으로 시작했고, 츠빙글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기도 또는 기원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칼뱅은 예배의 시작을 예배의 부름문안인사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배의 부름이란 votum 혹은 invocatio에서 유래한 말인데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신실하심에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는 부름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부름혹은 간청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언약의 하나님과 천지를 지으신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예배의 부름의 원형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행진하는 중에 여호와의 궤가 쉴 때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모세가 여호와를 부르는 데서 본다.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10:36)

문안인사예배의 부름에서 표현된 예배자의 고백과 간청에 대한 삼위 하나님의 반응이시다. 칼뱅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3 혹은 계1:4-5)를 사용했다. 이 문안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그 내용을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예배자가 예배의 부름을 통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문안인사로 반응해 주신다. 문안을 통해 하나님은 예배의 개회부터 마칠 때까지 은혜와 평강을 약속하신다.

영광찬송에서 하나님의 문안인사를 받은 언약 백성들은 삼위 하나님의 위대하심, 선하심, 전능하심, 영원하심 등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찬송을 부르게 된다. 이렇게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개회 시 이 세 가지 요소 즉 예배의 부름, 하나님의 문안인사그리고 영광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한다. 이것이 예배의 첫 번째 부분이다.

 

2. 공예배의 두 번째 부분은 십계명 선포, 죄의 공적 고백, 사죄 선포, 대표기도, 감사 찬송의 요소로 진행된다.

십계명선포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선포하신 언약 선포문이다. 뒤이어지는 내용들은 언약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십계명으로 요약하여 주신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다. 이 언약의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옛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것과 같이 자기의 모든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모든 영적 속박에서 건져주신 분이심을 선포하신다. 예배자는 십계명선포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주와 하나님이 되시고, 구속자가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구속하신 그의 백성임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뿐만 아니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에게 마땅히 행해야할 바를 요구하신 계명이기도 하다. 십계명은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거울과 같다. 그래서 주일 공예배에서 십계명선포는 필수적이다. 언약백성으로 앞으로 행할 바를 강조한다면 설교 다음 순서에 배열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한 주간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개회순서들 다음에 배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죄의 공적 고백은 많은 전통적 예배에서는 죄를 공적으로 고백하고 용서의 선언 혹은 사죄를 위한 기도의 요소를 가진다. 그렇게 해야 할 근거는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나아와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자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와 임재를 기대하는 예배에는 공동체의 고백이 필요하다. 죄악이 있는 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사죄의 선포죄의 공적 고백의 시간이 끝나면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인용된 구절을 가지고 은혜로운 사죄 선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목사의 책임이며 권위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9).

대표기도이제 회중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화해의 기반 위에서 예배가 진행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평화 가운데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를 드리게 된다. 대표기도는 회중의 대표로서 전() 기독교의 필요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 그리고 회중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짧게, 분명하게 그러나 아버지 앞에 자식이 아뢰듯이 정중하고 겸손하게 해야 하며 예배의 흐름에 조화롭게 해야 한다. 바로 앞 순서에서 회중이 직접 죄의 공적 고백을 드리고 사죄선언의 말씀을 이미 받았으므로 회개를 위한 간구는 반복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감사를 받으실 것과 전 기도교적인 필요를 위한 간구가 포함되어야 한다.

감사 찬송여기에 해당하는 찬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대한 선물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기꺼이 온 마음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회중의 마음을 표현하는 찬송이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있는 기쁨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예배의 세 번째 부분으로 나아가게 된다.

 

3. 공예배의 세 번째 부분은 말씀 선포에 관한 부분으로서 성경 열기 위한 기도, 성경봉독, 찬양대의 찬양, 혹은 축복을 위한 기도송, 말씀선포, 설교후 기도,화답찬송등의 요소로 구성할 수 있다.

성경 열기 위한 기도이 기도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성경을 열기 위한 기도이며, 설교자의 입을 열고, 회중의 마음을 열어 말씀의 씨가 마음 밭에 잘 심어지도록 하는 기도이다. 목사는 성령의 도구가 되어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이 기도가 필요하다.

성경봉독공예배에서 성경봉독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예배 중에 공적으로 성경을 봉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앉을 때 강해지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공적으로 읽는 것을 통해서 그의 배성을 축복하시고 교화하셨다. 공예배에서 성경봉독은 말씀을 전하는 책임 있는 사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봉독한 말씀과 선포된 말씀 사이의 동등성 때문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목사들의 고유한 책임이기 때문에 읽는 것 역시 목사의 책임이다.

찬양대의 찬양예배에서 성경봉독이 하나님 편에서 내려주시는 요소라고 하면 회중 편에서 올려져야 할 요소로는 찬양대의 찬양 혹은 축복을 위한 기도송이다. 이것은 사치스러운 순서가 아니라 언약적 예배의 아름다운 요소이다.

말씀선포설교는 기독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말씀의 종교로서 기독교의 본질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강단에 서며,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전하고, 그 말씀의 권능을 선포하며 그의 백성들의 삶에 적용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그리고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 신뢰와 확신 없이 이런 대담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설교의 기능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언적인 기능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가기 만들어낸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에 서서 받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노력을 초월하는 성령의 증거를 필요로 한다. 성령의 사역은 설교단과 회중석 사이에 영적 교제를 형성해 준다. 목사는 교회당 벽을 향해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열려져 있고 응답하는 회중의 마음을 향해 설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설교는 설교자와 회중이 동시에 활동하는 사건이다. 설교가 선포될 때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화답하면서 언약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즐기게 된다.

설교후 기도설교 후에 방금 선포한 말씀을 먼저 언급하면서 설교를 들은 회중들이 그 말씀의 빛 속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는 설교한 본문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독교회의 필요와 국가와 인류 사회의 상황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정당하다. 기도의 내용은 항상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약속된 것과 명령받은 것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화답찬송설교자가 온 힘을 다해 말씀 사역과 기도드리고 아멘으로 끝내면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 후에는 설교에 대해 바르게 화답할 수 있는 찬송을 선택해야 한다. 모든 회중이 말씀선포에 마음을 열고 깊이 참여했다면 공예배의 아름다움이 그들을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4. 공예배의 네 번째 부분은 신앙고백, 주기도, 성례전의 요소로 구성된다.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예배 때에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중요한 예배 요소이다. 이러한 뜻에서 교회는 325년에 니케아 신경을, 404년에 사도신경을 공적으로 채택하였다. 이 고백들은 공예배 시간에 언약백성들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졌다. 예배순서에서의 위치는 루터의 독일어 미사와 츠빙글리의 독일어 예배에서는 성경봉독 다음에 놓았고 칼뱅과 부처의 예배에서는 설교 뒤에 그리고 성례전 앞에 놓았다.

주기도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범이며 전통적으로 기독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17세기경 스코틀랜드 장로교에서는 주기도문이 너무 형식화 된 주문처럼 변질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 때 공예배에서 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바로 회복되어 현대 모든 개혁교회에서는 중요한 예배 요소가 되어있다. 주기도문의 위치는 성례전이 있는 예배에서는 성찬기도 다음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

성례전에서 말씀과 성례의 관계는 성례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설교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말씀과 성례라는 이순서는 성례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약속인 설교를 들어야 한다. 설교가 귀를 위한 것이라며 성례는 눈을 위한 것이다. 성례전은 공예배에서 하나님과 그의 언약 백성 사이의 대화의 연속이다. 성례전의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 편에서 받아들이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한 보장의 인을 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그 증표를 받는다. 이 약속과 인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언약 백성 간에 거룩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5. 공예배의 다섯 번째 부분은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임직서약, 시벌 혹은 해벌의 요소가 오는 순서다(2014년판 예전예식서 참고할 것).

 

6. 공예배의 여섯 번째 부분은 나눔의 사역 곧 교제, 헌금등의 요소가 들어갈 수 있다. 교제공통의 유산을 서로 나누는 것인데 우리는 한 아버지의 뜻과 말씀으로 잉태되어 한 아들의 피로 구원을 받아 한 성령의 거하실 처소가 됨으로 거룩한 교제 속에 들어간 자들이다. 성경은 이런 우리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sugkoinonus라고 한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요,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 사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만찬의 떡을 떼며 잔을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 안에서 교제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연합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 고난, 죽음, 부활과 영광 안에서 그분과 교제한다.”라고 했다. 교제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서로의 필요를 위해서 나누면서 섬기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점에 대해서 또한 사랑으로 서로 간에도 연합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은사와 은혜에도 참여함으로 서로 교제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교제가 오순절에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했을 때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했는데 여기 통용이란 말이 교제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koina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도울 때 섬김을 받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의 한 부분이다.

헌금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정규적으로 행한 예배의 중요한 네 가지 요소가 있었다. ‘사도의 가르침’, ‘성만찬’, ‘공적기도와 함께 구제헌금이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었다. 칼뱅은 이 점에서 마틴 부처를 따른다. 그러나 칼뱅은 부처나 외콜람피디우스 만큼 발전시키지는 않았으나 구제를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예배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 그는 고전 16:2을 언급하면서 사도는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돕기 위한 헌금을 모으는 것도 그 날 (주일)에 하라고 지정했다.”라고 했다.

 

7. 공예배의 폐회 부분은 마침찬송강복선언의 요소로 구성된다.

마침 찬송의 내용은 설교 본문의 주요한 메시지와 관계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설교 말씀을 통해서 주신 새 힘으로 성도는 이제 힘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과 결단을 강화하는 내용이면 더욱 좋다.

강복선언공예배는 기원곧 하나님의 문안으로 전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감싸여 시작한다. 강복선언은 다음 주일 공예배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날 동안 삼위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해 주실 것을 선언함으로 예배의 자리에서 삶의 현장으로 파송하는 순서이다. 그래서 이 엄숙한 강복선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복들을 들어 마시기 위하여 우리는 눈과 귀와 마음 그리고 영혼을 넓게 열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강복선언은 민6:24-26이나 고후13:13의 말씀으로 한다. 강복선언은 거룩한 기원이나, 예배의 끝을 알리는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예배의 모든 요소들의 절정이다. 이제 삼위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광야 같은 삶의 현장이 두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개혁교회의 예배 순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친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심으로 마치게 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강복선언을 기도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 강복선언은 공예배 후에 한 주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복임을 기억하고 공예배 이외에서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결언

주일 공예배를 누가 집례 해야 하는가? 공예배를 집례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와 성찬을 수행하는 교회의 공인된 직분자이어야 한다. 개혁주의 교회 예배는 언약적 특성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창조와 구속 안에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전 역사를 통해 모든 피조물과 사람들은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한다. 이런 유형이 예배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계명 선포와 성경봉독, 말씀선포 등을 통해서 예배에 기여하신다. 그의 언약백성은 찬양과 감사와 기도로 화답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다. 하나님은 그의 계시된 말씀으로 그의 백성을 통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하여 온 마음과 신실한 말로 화답한다. 이런 상호 기여의 특성이 개혁교회의 예배 원리이다.

이런 예배 원리에서 예배 집례는 누가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적절히 안내한다. 1640년대에 회집되었던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는 공예배에서 회중이 말씀을 봉독하는 것은 공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공예배에서의 설교는 충분한 은사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정식으로 인정을 받아 이 직분에 부름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이런 규범은 예배의 다른 요소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서 실행하는 안수 형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제정하신 목회직무를 안수 받은 자들이 수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봉사의 직무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며,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 교회에 목사를 주셨다. 다른 말로 하면 목사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위임한 무리를 양육하는 작은 목양자이다. 따라서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특별한 직무를 위임받았는데 그것은 다른 사역과는 구별된 말씀과 성례전을 거행할 직무이다.

그러므로 누가 예배를 집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공예배의 집례 자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와 성찬을 수행하는 직무를 위해 교회의 공인된 사람이어야 한다. 예배는 말씀과 성례와 함께 다른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찬양대의 찬양과 회중의 참회기도를 제외하고 예배의 모든 요소들은 모두 목사의 사역을 동반한다. 목사는 성경을 봉독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그의 양떼를 대신하여 기도하며, 말씀을 해석하여 선포한다. 그리고 성찬을 집례하고,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다.

1561년에 대륙의 개혁교회 진영에서 이미 공인된 벨직신앙 고백서는 우리는 참 교회가 주님께서 말씀 가운데에서 가르쳐 주신 그 영적인 형태에 의해 다스려져야만 한다는 것을 믿는다. 다시 말해서 목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되며, 성례가 이뤄지고, 목사와 더불어 장로와 집사가 교회 회의를 구성하며, 이렇게 됨으로써 참 종교가 보존되며, 모든 곳에서 진실한 가르침이 전파되고, 영적인 방법에 의하여 범죄자들이 징벌을 받으며 구속받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개혁교회의 예배와 질서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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