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신앙 선배들의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기리며

이기풍 목사/윤함애 사모·이성봉 목사·장기려 박사의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조명하는 발표회가 19일 오전 서울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앙재성전 화평홀에서 열렸다.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병금 목사 서기 정주채 목사, 이하 한목윤)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가 후원하는 이번 발표회는 신앙 선배들의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와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이상규 교수(고신대 역사신학)가 강사로 나섰다.

발표에 앞서 드려진 1부 개회예배에서는 위원장 전병금 목사(강남교회 원로) 인도로 박경조 은퇴주교(한국성공회)새로운 존재”(고후 5:1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전병금 목사의 개회인사와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가 광고했다. 예배 후에 발표회가 이어졌다.

힘의 선교냐 사랑과 헌신의 선교냐

먼저 이기풍 목사의 선교와 삶이란 주제로 발표한 박명수 교수는 "조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유교와 달리, 초기 한국 기독교의 특징은 바로 '역동성'에 있었다. “고 진단하며, ”이기풍 목사의 선교와 삶을 통해 이런 역동성을 발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천주교가 외세의 힘을 빌려 선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제주 '선교'에 나선 이기풍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의하면 천주교의 선교가 서양의 힘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기풍의 선교는 고난의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기풍 목사)그는 힘을 가진 자로서가 아니라, 힘없는 자로서 사랑의 헌신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흔히 외지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어느 날 큰 홍수가 나 한 여인이 휩쓸렸을 때 이기풍이 여인을 구해낸 사건이 제주 선교의 기폭제가 됐다.“고 전했다. 이기풍 목사의 선교사역으로 제주도 사람들은 기독교인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이기풍의 제주 선교는 여러 협력자들로 인해 가능했고, 특히 숭의 여학교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고 현대식 조산 법을 배운 사모 윤함애와의 동역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기풍 목사는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순교했다. "이기풍 목사는 제주에서 나와 순천 우학리 교회를 담임하는 동안 일제에 의해 체포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였다. “ 박 교수는 고문을 받은 이 목사는 석방됐지만 얼마 가지 않아 1942620일 순교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박 교수에 의하면, 이기풍 목사의 사역은 힘을 바탕으로 한 사역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사역이었다. 이기풍 목사는 힘을 가진 자로 목회 한 것이 아니라 힘 없는 자로 섬기다가 끝내 순교하였다. 그러나 이기풍 목사의 사역은 강력한 영적 능력으로 제주도를 변화시켰다. 세상의 힘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이 교회를 세운다는 점을 강조한 강의였다.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명혁 목사는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의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명혁 목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부흥사 이성봉 목사(1900-1965)의 삶을 은혜 체험적 삶”,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라고 전했다. 김명혁 목사는 이성봉 목사의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마다 사례비를 적지 않게 받으시곤 했지만 그 사례비를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보다는 작은 교회들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사모님과 세 명의 딸들은 가난한 살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딸인 의숙양이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교복대신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성봉 목사님 댁을 방문한 김동수 청년이 의숙양을 보고 식모나 일꾼이라고 생각했다가 이 목사님의 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고 의숙양과 교제를 하게 되었고 결국 결혼까지 했습니다. 김동수 청년은 나중에 한국도자기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들을 이야기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한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 받으시는 사례비를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시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들은 담임 목사님이 이성봉 목사님께 사례비를 드리는 대신 아주 값비싼 귀중한 선물을 이 목사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께서 감사하는 대신 이런 것을 주면 내가 어떻게 사용하냐고 짜증을 내셨다고 했습니다.

김명혁 목사는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야말로 주님 사랑과 영혼 사랑에 사로 잡혀 구령과 교회부흥 사역에 헌신하며,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사신 분이라고 회상하며,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을 사신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나 보배로운 신앙의 선배이성봉 목사를 생각하며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기린다고 전했다.

삶의 태도 청빈과 가난”, 삶의 방식은 섬김

세 번째 발표자 이상규 박사는 장기려 박사님의 가난과 고난 섬김의 삶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상규 박사에 의하면, 장기려 박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자신에게는 인색했으나 남에게는 관대한 삶을 살았다. 이런 이유로 장기려 박사의 삶의 태도는 청빈과 가난이었고 그의 삶의 방식은 섬김이었다. 이 박사는 장기려 박사의 섬김과 사랑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했다.

1)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

첫째,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해 위로 하나님을 섬기며, 아래로 사람을 섬기는 생애를 살았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의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외연이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을 준다는 것이 그의 삶의 철학이었다. 그가 복음병원장직에서 은퇴한 이후 청십자의료조합과 청십자의원을 개원한 일이나, 부산의 아동병원, 거제도의 애광원, 그리고 보건원의 자문의로 봉사한 것도 이런 정신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다. 실천적인 사랑과 선의(goodwill)는 그의 일관된 삶이었다.

2)무사무욕(unselfishness)의 삶

둘째, 무사무욕(unselfishness)의 삶을 사셨다. 그에게 있어서 소유는 궁극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수단이었다. 그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했고, 물욕에나 명예욕에 빠지지 않았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나 그가 남기고 간 유품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고, 무소유의 삶을 지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도 늙어서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다소의 기쁨이기는 하나 죽었을 때 물레밖에 없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그는 그 작은 소유조차도 부끄러워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신의료원 38층 옥탑방에 가보면 그의 세간이 얼마나 단출했던가를 알 수 있다. 개인기록과 사진첩, 늘 입고 다니던 옷가지가 전부였다. 책이라고는 십여권의 의학서적과 성서조선(聖書朝鮮),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전집, 그리고 야나이하라 다대오(矢內原忠雄)의 강해집이 고작이었다.

성산은 사리나 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기적 부의 추구를 가능케 해 주는 자본주의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필자와의 대화에서도 한국교회의 지나친 물량적 성장제일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한 일도 있다. 무사무욕은 한 시대를 이끌어간 명의(名醫)로서 갖기 어려운 삶의 태도였다. 그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사랑과 배품의 윤리를 실천했다.

사실 청빈과 무소유는 기독교전통에서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 권장되어 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가치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고자 했다. 두 발은 땅을 딛고 살았으나 그 시대의 가치로부터 자유했던 심리적 이민자들이었다. 말하자면 나그네와 행인 같은(벧전2:11) 역려과객(歷旅過客)에 불과하다고 인식했다. 이들을 파로이코이(παροικοι), 나그네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있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페레그리누스(peregrinus)였다.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하였다. 이 말 속에는 소유욕과 배치되는 비영속성, 일시성, 잠정성 등의 의미가 있다. 소유에의 욕망은 세욕이었고, 낯선 가치였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장기려의 삶이었다.

3)함께 사는 사회(togetherness) 추구

셋째, 함께 사는 사회(togetherness) 추구했다. 장기려의 생애가 보여 주는 또 한 가지 이념은 함께하는 사회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상부상조, 공생과 상생은 그의 윤리였다. 근본적으로 그의 모든 것, 곧 소유, 학문, 학위, 명예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설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같이 살기 위한 것이었다. 가난하고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 조합운동을 시작할 때 건강할 때 병자를 돕고, 병에 걸렸을 때 도움을 받자는 공생(共生)과 상상(相生)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1975년에 부산 수정동에서 청십자 의원을 시작한 것도 가난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행려환자의 구호, 기독의사회를 통한 구급활동, 간질병환자를 위한 장미회의 운영, 가난한 이웃을 위한 의료보험조합운동, 이것은 공생과 동거(同居)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형제애를 강조하되, 북한의 무신론자나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함께 사는 사회는 그의 일관된 신념이자 실천 강령이었다. 결국 그는 사랑의 보편주의(love-universalism)를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4)종파주의로부터의 자유

네번째, 장기려 박사는 종파주의로부터의 자유 했다. 그는 순수한 복음적 믿음을 추구했지 교파나 교단이나 인간이 만든 외형적 조직에 메이지 않았다. 그는 특정 교파나 교단을 절대시하거나 독선주의나 편협한 배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무교회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성의 조직교회를 경시하지 않았고, 장로교회의 장로로 봉사하면서도 무교회 신앙이나 케이커교도와의 교류를 계속하였다. 그는 교리우선주의나 교파주의적 오만에 빠져 남을 정죄하거나 자신의 신앙만을 절대시하지 않았다. 그는 외형보다는 순수한 복음을 지향했다. 말하자면 그는 신앙의 정통성(Orthodoxy) 보다는 신앙의 정체성(Identity)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이해한 기독교 정체성이 바로 남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는 이타적 섬김과 봉사였다.

5)기독교적 가치(Christian values) 고양

다섯째, 기독교적 가치(Christian values) 고양했다. 그는 일생동안 봉사자의 삶을 살았고 겸손하고도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기독자적 사랑을 강조하였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굴절된 삶의 행태로 비난받는 우리 시대에서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삶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고양하여 주었다. 동시에 그는 기독자적 삶이 얼마나 큰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기독교 신앙은 그를 움직이는 이념이자, 초석이었다.

한편 한목윤은 모임을 마치면서 '한국교회가 비난받는 모든 책임은 목회자의 윤리 부재에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며 다음과 같은 다짐을 했다.

 

윤리적인 바른 삶을 살기로 다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살기로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되심(the Lordship)을 확인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의 주권에 도전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두려워 떨며 삼갈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부와 명예와 권세의 유혹을 이기고 평생토록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로 살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 정직 근면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직운동에 적극 참여토록 격려하고 고무하는 지도자가 될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교회의 불투명하고 독단적인 재정운영이 목회자를 부패시키고 교회의 화합을 깨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따라서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감시와 감독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현대사회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지키는 순결운동에 앞장 설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자녀나 친족에게 담임목사의 자리를 대물림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을 결단하며, 지금도 한국교회에서 계속되고 있는 담임목사직 세습을 근절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교회의 양적 성장주의 추구에 함몰되지 않도록 즉 세속화와 인본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며 교회의 갱신과 진정한 부흥을 위해 말씀과 기도에 더욱 전념할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자연을 보존하는 친환경적인 생활습관과 문화를 기르고 발전시키기 위해 목회자로서 검소와 절제의 모범을 보이며 교육적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시민으로서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포함한 공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며, 나아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예언자적인 사명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고백할 뿐 아니라 기독교 진리의 탁월성을 믿는다. 동시에 우리는 타종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가진 신앙과 종교시설을 폄하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