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설 수 밖에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코닷 편집장 김대진 박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10여 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은 장시은 박사를 만나 신진학자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방학 동안에도 여기 저기 특강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장 박사를 지난 1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장시은 박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위 받으신 것 축하드리고요. 다음 학기부터 신대원에서 라틴어 가르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 박사님과 '신학과 고전학' 혹은 '신앙과 인문학'의 관계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 장 박사님 간단한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전공에서 투퀴디데스의 <역사>에서의 연설문 연구로 최근(2016)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양고전학(Classics, Classical Philology, Greco-Roman Studies)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서양고전학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고전어인 희랍어와 라틴어 원전의 해독능력의 배양과 충분한 수준의 관계자료 섭렵을 통해 그것 자체로 서양 학문의 모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기원전 5세기의 역사서술과 그리스 비극, 고대 연설문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면서 서울대, 숭실대, 시립대 등에서 고전어, 그리스로마 신화, 고전 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고신 교단에 속한 목사님이셔서, 어려서부터 고신 교단에서 쭉 신앙생활을 해왔고 대학시절에는 SFC를 통해 신앙훈련을 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영동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하는 장시은 박사

2. SFC 출신 고전 학자를 만나니 왠지 기대가 됩니다. 신앙인으로 고전인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학부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복수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미술사를 계속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서양고전학이라는 학문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전공을 바꿔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사본삽화에 대한 관심이, 바로 옆의 텍스트로 옮겨가게 된 셈이지요.

처음에 고전학을 공부하고자 했을 때는, 교회에 대한 그리고 신앙에 대한 여러 고민들이 있던 시기였고, 고전학과에 가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전공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틴어보다는 희랍어를 늦게 공부하기 시작해서 자신이 없었던 탓도 있고, 아무래도 환경적으로 막 관심 갖기 시작한 고전 문학보다는 신학, 교부학이 조금은 더 익숙하다고 여긴 이유이기도 하지요. 입학 후 첫 학기 라틴 산문 시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개설되었고, 또 몇 학기 뒤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교양> <문법론> 등이 개설되어 좀 이례적으로 고전학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아우구스티누스를 석사 과정 중에 두 과목이나 들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의미로 제가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죠. ,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요. 저희 과는 다양한 전공 배경의 학생들이 입학하게 되는데, 제가 공부를 시작하던 때만해도 저희 고신교단뿐만 아니라 장신, 총신, 감신대 출신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교부학은 그들에게 맡기고, 전 제게 더 맞는 세부 분야를 찾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석사에서는 그리스 비극으로, 박사는 그리스 역사문헌으로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3. 대학원에서 10년 이상 고전학을 공부하면서, 장 박사님의 신앙세계와 충돌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혹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 있나요?

한편으로는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고전문헌학적 텍스트 접근방법을 가지고 성경을 대하게 된, 한동안은 설교시간에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원어 성경을 펼쳐놓고 원문분석을 하고 있는 일이 빈번했죠(웃음). 그전까지는 기독교와 성경의 세계 안에서만 살아서 그 밖에 대해,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점차 성경이 쓰인 동시대와 그 시대의 문헌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조금 충격을 받게 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성경과 신앙의 전통들이 만들어지고, 전승된 과정과 배경에 대한 큰 틀을 이해하며 조화를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고전학, 고전어 공부를 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점은 아무래도 히브리어 성경을 제외한 (안타깝게도 아직 히브리어는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성경과,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여러 교부 문헌들을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한동안 몇몇 고전학자 및 신학자들이 매주 모여 교부 문헌을 강독했는데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 초기 기독교의 문헌들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4. 말씀 들으면서 신학생들이 이런 성경의 배경이 되는 3세기 이전의 고대 문헌들을 공부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 박사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가 신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교부문헌을 공부하려고 해도 신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지적 분위기 사회의 사회상과 같은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고전학자들과의 협업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강독 팀의 예를 다시 들자면, 그 모임은 초기교회사를 전공하신 신학자, 신약학자, 헬레니즘 시대를 연구 중인 고전어와 셈어족 언어들을 잘 알고 있는 고전학과의 대학원생과 고전기 그리스문헌을 전공한 제가 매주 모여 오리게네스의 <기도론>을 읽었습니다. 워낙 문체가 좋지 않아서 읽는데 꽤 애를 먹었었죠. 한 권을 다 읽는데 일 년 반가량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대학원생들도 참여를 했고요. 고전학 전공자들은 번역은 잘 할 수 있는데, 신학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신학자들은 그 신학자의 신학적인 내용은 잘 알지만, 그 용어라든가 개념의 형성사나, 난해한 구문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협업을 통해서 그런 문제들은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교부학에 관심을 가진 신학생들에게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고전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고전을 많이 읽고 연구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중세 근대를 넘어오면서 학자들이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전제들이나 논증의 전통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거든요.

5. 장 박사님 이야기 들으니까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화 위주의 설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본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본문 해석의 역사적 전통들을 통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경 자체를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하는데 고전학은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을 원어로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초기 교회 교부들을 읽는 것들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고전어를 배워서 고전문헌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 선생님들은 학위를 받기 전에 번역출판을 하는 것을 꽤 우려하셨습니다. 한 두 해 고전어 좀 공부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그만큼, 고전어 공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부 문헌들의 경우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부 문헌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은 신학자들과 교부 문헌에 관심 있는 고전학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학자들과 고전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 본문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 요즈음 소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TV나 시민강좌 등의 인문학 강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과 성취, 성장과 경쟁 등과 같은 것에 함몰된 현대인들이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제 멈추어 설 수 밖에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정작 사람에 대한 중요성은 사라지고 비본질적인 것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의 자리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소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인문학 열풍은 여전히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 그저 가벼운, 재밌는, 쉬운 인문학을 하려다 보니,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문학에서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늘 고전은 고전해야 제 맛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곤 합니다. 고전은 읽을 때 마다 새롭고, 우리의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낯설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은 그런 것입니다. 가볍고 쉬운 인문학 특강과 같은 것은 유행이 지나면 또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근본적인 고민과 생각은 계속 될 것입니다.

7. 장 박사님 말씀이 교인들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어느 설교자의 설교가 좋으냐고 이리 저리 소위 설교 쇼핑하러 다니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근원적인 말씀과 복음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런 분위기가 현대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종교개혁의 정신이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m)”이었던 것처럼, 다른 누가 뭐라고 했다는 것에서 떠나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지요. 현대인들이 너무 빠르고 표피적인 삶에 대해 염증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현대인들의 이런 근원적인 질문과 고민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요즈음 시대는 신학마저도 실용주의에 함몰 된 시대라고 합니다. 장 박사님 공부한 것이나 지금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고전학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말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얼마 전에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요, 쓸모없는 것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그 이야기를 합니다. 고전 작품 몇 편 읽는다고 취직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쓸모없이 보이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즉 클라식이라는 말은 함대라는 뜻도 있습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인생의 위기 순간에 함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읽었던 고전의 비극들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굴곡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락에 떨어진 인간들을 책으로 만나면서 역설적이게도 살아 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9. 끝으로 신학생들을 위한 고전어 강의 준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다음 학기 라틴어를 개설하면서 강좌 명을 교부 라틴어라고 붙였습니다. 사실 교부(문헌을 읽기 위한 고전) 라틴어라고 써야 하는데 너무 길어서 줄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전학자기 때문에, 제 역할은 신학생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된 문헌들을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어로 된 문헌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려도 고전어 실력을 탄탄하게 쌓아가는 것입니다. 기초 문법을 다진 후에는 초기 교부들의 설교 문이나 주석이 남아 있는 성경 본문을 선택해서, 칠십인역(Septuaginta) 성경과 불가타 라틴어 역, 그리고 초기 교부들의 주석을 대조하면서 강독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장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싶네요. 귀한 강의가 신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고전학 분야에서 주님의 일군으로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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