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의 대형교회화와 열린 예배에 대한 반성

32년전 젊은 목사가 시카고 한 위성도시에서 청소년 교회를 개척하였다. 8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의 대형교회를 견인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빌 하이벨스가 이끄는 윌로우 크릭 공동체 교회의 방식은 멀리 유럽에까지도 본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고, 그리고 기존의 교회들도 '구도자 예배'라는 형식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미국의 모교회와(윌로우크릭 교회) 같이 회중의 회집 수(주일에 이천명이 모이는 것)가 많지는 않았지만, 윌로우 크릭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소망을 일구었다: 교회를 떠나는 거센 행렬에 대항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빌 하이벨스는 선박의 키를 선회했다. 많은 숫자가 부질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교회 예배와 소그룹 모임에 방문자들이 대체로 소비자이기만 했다. 윌로우 크릭은 자립하는 신앙생활을 형성하는 일에 더 많은 계획을 세울 것이다.

윌로우 크릭 정책에 결핍이 있었다고 하이벨스는 솔직히 인정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유익이 되었다. 그는 분명히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조점의 이동을 잘 선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냉소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인식 역시 새로운 정책에-개인 영성 성장 계획- 대한 연민과 선전을 거듭할 것인데 이는 개인 양육 인도와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설교자나 혹은 기자 혹은 정치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틀렸다. 잘 보지 못했다.

윌로우 크릭의 '구도자 예배'는 교회 주변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대의 음악이나 연극 그리고 시대에 적실한 선포를 통해 복음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예배의 성격이 변질되었다.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교제를 나누고, 그리고 빵을 떼고 나누었던(행2장) 교회로부터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는 행사가 되었다. 더 전문적인 프로그램이나 공연이 될수록 더 많은 참석자들이 소비자가 되었다. 소그룹과 주간 모임은 신앙을 심화시켜야만 했었지만, 그러나 참석자들은 활동영역에만 의지해 안주했다. 관계가 너무 쉽게 끊어졌다. 소비자들은 실제 삶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거나 따르는 일이 너무 적었다.

윌로우 크릭의 비판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옳았다는 것을 빌 하이벨스 당사자를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윌로우 크릭이 여러 방면에서 잘 한 것들이나 도전을 준 것들을 중요하게 여겨야만 한다: 자신의 회중들의 신앙 성장에만 주로 관심을 가졌던 교회로부터 회중들 주변의 환경에로 관심을 돌리는 교회로의 전적인 변화이다.

단지 이제 그것이 시카고에서 마저 난관에 부딪쳤다. 윌로우 크릭이라고 칭하던 혹은 전반적인 적용을 하는 다른 곳에서든 성공의 왕도는 없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삶이나 예수님을 참으로 따름에서 부족한 것이 약간의 비용을 추가한다 해서, 그것이 많은 '일반적인' 교회와 회중들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위 글은 한국 고신교회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화란 자유 개혁교회(소위 31조파) 성도들이 운영하는 일간 신문사인 화란일보(De Nederlands dagblad)에 지난 2007.11.10자 사설을 번역한 것입니다. 내용은 '구도자 예배'를 통해서 대형교회를 견인하여 한국에 많이 알려진 '윌로우 크릭 교회'의 짐 하이벨즈가 최근 자신의 노선에 대한 반성을 한 것을 가지고 쓴 사설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화 경향과 그리고 열린 예배와 각종 프로그램 중심의 예배들에 좋은 경종을 울리는 내용입니다.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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