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 부산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술과 담배에 관한 저의 입장은 양면적이면서도 선택적입니다. 죄와 잘못으로 정죄할 수 없지만, 교회 전통과 개인의 건강 등을 고려하면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경우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양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제한된 인간에게 어쩔 수 없다면, 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를 세 가지 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신학’입니다. 술의 경우 성경은 허용과 반대라는 양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담배는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이때, 한편으로 다른 견해를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경이 견지하는 균형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의 관점은 전적으로 성경에 의존해야 하고, 토대를 두어야지 인간이 판단 기준은 아닙니다. 술은 제사 음식에 관한 바울의 견해를 따른다면, 공동체의 조화와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한 섬김의 자세로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리적인 면에서는 허용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관두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경험’입니다. 대학 시절 술은 얼마간은 즐겼고, 담배는 생리적으로 심한 거부감이 있어 전혀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 대학가에 생소한 단어인 ‘낭만’이 운운되고,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토론하고 노래하고 데모를 했습니다. 교회 전통은 엄격하지만, 성경은 느슨한데다가 즐거운 추억이었기에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술 담배로 인해 간경화를 앓으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던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경험과 목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이 “단죄하지 않지만, 반대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전통’입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확언하지 않을 때, 교회는 오랜 시절 축적해온 전통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 것은 지혜입니다. 서구 교회는 스펄전에게서 보듯이 상당한 관용의 분위기를 감지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 남부의 바이블 벨트(Bible Belt)의 보수 교회는 담배를 금지하지 않았는데, 교인들의 주산업이 담배 농사인데다가 교회 건물이 담배 농장 한 가운데 있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이와 달리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서 폐쇄적입니다. 이는 술과 담배가 초래한 숱한 문제점들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경과 일치하면서도 그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판하지 않지만 절제하라”는 결론을 맺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목사님 두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5월인지라 유명한 보신탕집에 들렀습니다. 그분들은 식사와 함께 소주를 주문했습니다. 식사기도를 해야 하는데, 한분이 이러시더군요. “옆 사람 이목도 있고 하니 그냥 드시지요.” 자유함 없이 괜스레 주변 눈치 살피는 것은 굳이 비판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술·담배를 하셔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자유하십시오. 하지만 자유할 수 없고, 건강을 생각한다면, 더군다나 머리 숙여 술과 담배를 주신 주님께 감사할 수 없다면, 바울을 따라 공동체의 전통과 신자의 덕을 우선한다면, 이제라도 유익은 적고 유해한 일을 구태여 장려할 필요는 없거니와 차라리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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