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창세기는 자체의 단락을 인식하게 돕는 형식 구조로 되어 있다. 소위 토레도트 양식이다. 창세기가 창조로부터 애굽에 정착하여 번성하는 야곱의 12 아들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의 흐름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이런 긴 흐름을 방향을 잃지 않도록 방향 신호판의 역할을 하는 표제구들이다.

 

1. 토레도트 양식에 의한 창세기 단락구분

창세기에 걸쳐 11개의 표제구가 있다. 이 표제구들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 토레도트(תולדות)이다. 아래 11개의 토레도트 형식을 담은 표제구의 목록이 제시된다.

1. 2: 4 천지의 창조된 내력이 이러하니라

2. 5: 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3. 6: 9 노아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4. 10: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5. 11: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6. 11: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7. 25: 12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8. 25: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9. 36: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10. 36: 9 세일 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11. 37: 2 야곱이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토레도트 양식의 표제구는 이름과 같이 단락의 제목으로 단락의 처음에 나온다. 그래서 표제구를 기준으로 단락을 나누어 볼 수 있다.

 

1: 1 2: 3 천지창조

2: 4 4: 26 천지의 토레도트

5: 1 6: 8 아담 자손의 토레도트

6: 9 9: 29 노아의 토레도트

10: 1 11: 9 , , 야벳의 토레도트

11: 1011: 26 셈의 토레도트

11: 2725: 11 데라의 토레도트

25: 1225: 18 이스마엘의 토레도트

25: 1935: 29 이삭의 토레도트

36: 1 36: 8 에서의 토레도트

36: 9 37: 1 세일 산에 거한 에서의 토레도트

37: 2 50: 26 야곱의 토레도트

 

2. 토레도트 양식의 구성과 의미

먼저 토레도트라는 단어는 개역개정에서 내력, 계보, 족보로 번역되었다. 이전 개역성경에는 더 다양한 형태의 번역이 존재했다(대략, 후예, 사적 등). 토레도트는 낳다(ילד)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그래서 족보라는 뜻을 개역개정이 많이 취하고 있다. 그런데 2:4절의 경우 사람에게만 토레도트가 붙지 않고 하늘과 땅에도 붙는다. 그래서 족보라고 번역하기가 어려워서 내력이라고 번역했다. 토레도트를 수식하는 소유격의 대상이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천지와 같은 사물의 경우를 포함시킬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대응어가 쉽지 않다. 퀼링이란 학자는 토레도트를 역사(history)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 일단 그의 제안이 천지와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번역이 될 것 같아 취한다.

토레도트 양식은 세 형태가 결합되어 구성된다. 먼저 히브리어 순으로 말하며 지시사가 있고, 두번째는 토레도트 명사가 있고, 마지막에는 소유격 형태의 사물과 인명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것은 ㅇㅇ의 토레도트이다"로 형성된다. "ㅇㅇאלה תולדות " 이러한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 표제구 양식에서 각 요소의 역할을 정리해 볼수 있다. 먼저 지시사는 표제구가 이끄는 단락 전체를 한정한다. 그리고 토레도트는 역사로 번역되어 토레도트를 수식하는 소유격에서 시작된 역사가 내용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유격 사물과 명사는 그 단락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런데 소유격 명사의 기원 자체는 그 단락이 말하지 않는다. 소유격 명사의 기원을 알고 싶으면 앞의 단락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토레도트라는 단어가 낳다는 단어에서 나왔음을 기억할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천지의 내력은 이러하니라(2:4)는 첫 표제구를 이해해본다. 이러하니라는 창2:4-4:26절까지의 내용을 한정한다. 그리고 천지는 그 단락의 내용을 규정한다. 천지의 발생 자체는 앞 단락 1:1-2:3절을 보면 나와있다. 이렇게 생긴 천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역사로서 보여주는 것이 첫 표제어의 역할이다. "천지의" 라는 소유격은 이 단락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했다. 천지는 앞 단락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음 단락이 말해주게 된다. 표제어는 글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 지를 결정한다. 에덴과 선악과 타락과 에덴 추방 그리고 추방된 세상에서 가인과 아벨의 사건 등이 천지가운데 일어나게 된다.

 

3. 토레도트 표제구가 왜 창1:1절에는 나오지 않는가?

창세기 시작이자 첫 단락의 표제구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이다. 표제구의 형식을 따라서 표제구를 만들어 볼 수는 있다. 천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적절한 표제구는 "하나님의 토레도트는 이러하니라"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표제구를 사용하지 않는가? 토레도트가 낳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낳다는 말은 어떤 이나 사물이 누구를 낳고 사건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낳다는 단어는 어떤 이나 사물의 기원도 전재하게 된다. 천지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전제하는 것이 토레도트라는 단어의 한계이다. 하나님이란 소유격과 토레도트가 같이 붙게 되면 창1:2-2:3절까지의 내용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은 잘 설명이 된다. 그러나 토레도트와 하나님이 같이 사용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어디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전제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의도와 다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서 오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일 뿐이다. 그래서 토레도트와 하나님의 결합은 형식상 가능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창1:1절의 표제어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효력있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제까지 창1:1-2:3절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창조를 먹거리란 관점에서 본 것이다. 계속해서 먹거리란 관점에서 창세기를 더 살펴나갈 것이다. 2:4절부터 4:26절까지 단락을 다루려고 할 때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창2:4절의 천지의 내력은 이러하다는 표제구이다. 그래서 창세기에 11번 나타나는 표제구를 살펴보았다. 2:4절의 표제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 역사는 이러하다. 토레도트를 역사라고 번역하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계시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찾기 위해 책의 관점에서 기록의도, 목적 등을 다양하게 탐구하지만 그러나 먼저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죄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신화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왜 하나님은 선악과의 먹을 것을 통해서 선과 악의 개념을 세상에 두었는가를 질문하고 답하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에덴동산이 어떤 곳인지 살펴본다. 헬라어 성경이 낙원(παραδεισος)이라고 번역을 한 이후 에덴 동산을 낙원으로 이해한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인지 본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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