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회자료실

제목

[ 조직은 진리로 살기에 자유로운가? ]

닉네임
강종수
등록일
2014-10-30 00:01:00
조회수
3705
[ 조직은 진리로 살기에 자유로운가? ]
.
개인과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는 관리의 흐름을 위한
보편적 원리의 기반을 세워 또 다른 사회와의 차별성을 갖는다.
이런 약속을 대체로 잘 지켜오다가 포스터모던 시대 돌입하면서
깨어지기 시작하고 가치도 판단도 개인이 주체가 되려 한다.
.
교회라는 단체는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 영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지, 곧 하나 되게 하시는 영력에 이끌려 모임이 자연스럽다.
선한 관리방법으로 조직이(모세가 이드로 장인의 조훈을 받은 것처럼)
형성되고 공유함에 동의한 단체된 각인의 정서는 소통이 원활하다.
.
교회조직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최근에 보면 총회의 헌법이나
규칙을 노회와 개 교회 지도자들이 획일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유동성이 있어 보이는 특히, 실천신학부분에 관설한 주제는
개 교회 담임 교육철학으로 간다.
물론 아디아포라(adiaphora)영역은 가하나 총회법에 규정한 보편적인
교단이 추구할 신학적 기초에 관한 것을 개교회의 자율해석으로
간다면 교단이 허락할 수 있는 상황인가?
.
또한 개교회 안에서도 신자 개인적 신앙양심의 자유는 여전히
또 다른 실천신앙의 현장에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될 때, 우리는
조직의 영적 통일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완성할 수 있을까?
.
일본의 무교회주의(우찌무라 간조,김교신)의 시발은 조직체 내부의
불합리를 떠나 어떤 면에서는 개인 양심에 충실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교회론적 측면에서 무교회주의란 잘못이다.
그런데 교회공동체의 조직체의 개개인 신앙양심이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함께 주를 증거하는 단체로서
만족하고 있는가를 반성할 때, 우리는 그렇다 할 수 있는가?
.
소위 끼리 문화가 sns에서도 얼마든지 두각 나 보이고
신학적 견해 및 신앙양심도 각양 글로써 많이 다르게도 나타낸다.
한 교단 내부에도 진리나 예수의 교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 파벌이 생겨서 조율이 안 되고 있다. 이것은 범죄이다.
.
조직을 세우든 총회법을 만들든,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순전한 사랑과 깨달음 가운데 복음,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 선한 동기가 실현되는지 묻고 싶다.
.
조직은 진리로 살기에 자유로운가?
조직을 해체하자는 말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도 자유하냐는 말이다.
정말 혼자일 때보다 영혼의 자유함이 더 있어 평강하고 행복한가?
아니면 설명하기 싫은 억지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가?
어쩔 수 없는 정황이라도 영혼(신앙양심)이 자유할 수 있도록 못하면
조직 때문에 인생 후회하고 죽을지 모른다.
떠날 때는 아무도 나의 인생, 내 양심에 도움이 될 수 없으니까.
사람이 자기 양심대로 못살고 죽는 만큼 억울함이 또 있겠는가?
.
한국교회사의 가장 큰 비극은,
일제의 제압보다 목사가 믿음의 양심을 바다에 빠뜨리고
일본이라는 조직과 교회조직체의 결정에 따라 태양신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예수를 배신한 팔리운 양심이었다. 또한 해방 후에도
그 양심을 버렸던 시대를 회개치 못하고 있는 뭉개진 양심이다.
작성일:2014-10-30 00:01:00 183.97.180.11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nulserom 2014-10-30 00:07:00
예컨데, 교단신학적 기초에 주일성수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지키도록 했지만 개교회, 담임 목사가 주일에 상업적 행위(밥사먹고 여행가고...)를 예사롭게 한다면 우리는 총회법을 뭐하려고 만들었는가를 묻고 싶다. 고신이 여자목사를 세우지 않기로 한다면 여자목사를 행사같은 때에 왜 초청하는지도 묻고 싶다. 차라리 여자 목사 임직함이 성경적임을 밝히든지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