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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치-스승의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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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만
등록일
2015-05-19 17:13:44
조회수
5206
성경 본문, 요한복음 13:13-17
설교 제목, 스승의 가치(Teacher’s value)

부모님의 가치를 생각하면 부모님께 효를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스승은 국가의 정부와 가족 공동체의 부모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대신하여 자식들을 교육하는 대부모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우러러보아 합니다. 우리 민족은 君師父一體라하여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지금은 그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가 교육하는 내용은 사뭇다릅니다. 부모님들은 삶 전체의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면 학교나 교회 그리고 여러 교육기관의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생존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들입니다. 우리 사회에 스승이 없으면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재목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스승님들의 고귀한 지혜와 기술 전수를 통해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됩니다. 신앙세계에도 좋은 스승, 지도자가 있어야 바른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 생명의 길을 갈아갈 수 있고, 바른 깨우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사회에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건강한 성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 즉 세족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그를 선생과 주로 여기고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선생’ 이라는 단어는 “디다스칼로스”(δίδάσκαλος)인데 “가르치다”는 동사 “디다스코”(διδάσκω)에서 온 헬라어 명사로서, “선생”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습니다(마 8:19,9:11, 막 4:38). 보통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분들을 부르는 ‘랍비 혹은 랍오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명칭은 참 진리와 교훈을 가지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참스승으로, 대 스승으로 이땅에서 제자들과 많은 청중들을 가르치심으로 그 당시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보다 훨씬 능력이 많은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스승 중에 최고의 스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가르침과 삶이 일치했고 사람답게 살고 창조시에 형상을 회복하는 일, 즉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사역을 살피면서 스승의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가 스승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며, 스승인 우리들이 어떤 가치를 드러내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스승은 권위가 있습니다.

스승이라는 존재감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바로 권위가 있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보다 다른 점은 권세가 뛰어났다는 점입니다. 마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그리고 산상보훈의 긴 설교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말씀입니까? 율법에 대해서, 우리 신앙생활에 대해서, 하나님과 우리와 관계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세장에 걸쳐서 기록된 긴 설교의 말씀을 하신 다음에 청중들의 반응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당시의 랍비들과는 다른 “권세 있는 자와 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여기서 ‘권위 있는 자와 같고’라는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권위(권세)’라는 말은, 헬라어로 ‘e;xousia-엑소시아’인데, 엑크+우시아입니다. 엑크는 out of , from, ‘무엇으로부터’ 이고, 우시야는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이 말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우시아는 ‘본질’ 이란 의미입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뜻합니다. 본질로부터 유출되어 나오는 것이 권세입니다. 본질은 없는데 겉만 화려한 것을 헛세 혹은 허풍인데 권위주의라고도 합니다. 알이 가득차고 본질충실할 때 거기서부터 넘쳐흐르는 것이 바로 권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모든 피조세계와 영계의 본질을 전달하고 가르침으로 탁월한 권위와 권세를 가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르 주셨습니다(마28:18; 마11:27).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며, 삶의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권위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교정해주고 바르게 할 때 권위가 세워지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바른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함” (딤후3:16,17)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주된 세가지 사역 중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고 시간을 많이 보낸 사역이 가르침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날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올때마다,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르침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진수를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대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세와 배우려는 겸손함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온전한 권위를 회복해서 가정과 직장과 사회, 교회 공동체안에서 사람을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2. 스승은 제자들을 사랑합니다.

가르침에 있어서 동기와 사명의 본질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자들과다음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가르침 사역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가르친다면 그것은 생계의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돈벌이 수단으로 교단에 선다면 그것은 지식 전달은 될지 몰라도 제자들을 참 인격자로 키우는 일에는 실패합니다.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기 전에 올바른 사람됨을 가르치고 다듬는 분이 바로 선생님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혼을 내고 꾸중을 해도 그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서 하는 행동이라면 기쁨으로 받아 들이고 교정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행하면 울리는 괭과리가 되어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12명 택하여 교육하면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요한복음13:1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껠 돌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미숙한 제자들, 처부지와 같은 설 익은 제자들을 사랑으로 가르쳤고, 그들 자체를 사랑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낸 스승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서리반여사입니다.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켈러는 글과 강연으로 세계25개국을 방문하여 강연을 하고 맹인학교를 거쳐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간의 정신문화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20세기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헬렌 켈러가 7살 때부터 헌신적인 지도를 해 준 서리반 여사의 사랑과 봉사가 없었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고 이 사랑으로 인해 사람을 사람되게 하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인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하게 됩니다. 지식은 사람의 능력을 배양시킨다면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아무리 장애우라 하더라도 사랑으로 교육할 때 건강한 사람 몫지않게 생명의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교육과 다음 세대의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사랑교육입니다. 인성이 망가지는 이유중에 하나도 사랑이 가르침이 부족하고 기계적인 가르침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잘못된 교육관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사랑으로 가르친다면 그 성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본질인 사랑이 한국 사회의 발전에 크게 작용했음을 과거 선교 140년의 역사에 분명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선교사님들에 의해 시작이 되어 오늘 한국사회를 깨우치게 되었는데, 화려한 커리도 없었고 시설도 변변 찮았지만 가르치는 선교사 교사들의 사랑이 사람을 키우는 일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사랑은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윤활류와 같은 역할을 하여 원만한 인간관계 속에 올바른 교육을 이루어 내는 원동력입니다.

3. 스승은 모본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랍비들을 꾸짖으신 가장 핵심부분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 말만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 가르침만 그럴싸하게 하니 백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서 손가락질을 받으니 교육이 효과적이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가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함으로 교육이 교육다워지게 했습니다. 교육은 반드시 그 내용을 따라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하고 발전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승으로 발을 씻겨 주는 섬김의 도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 줌으로 제자들도 그렇게 하시기를 원했습니다. 14, 15절 말씀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씨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고 했습니다.

전영창선생님은 (해방후 건국된 국가)대한민국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유수한 대학에서 총장자리를 준다고 하였고, 여러 기관과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는 자리를 준다고 해도 사양하고 거창 산골짜기 에 들어가 빚 더미에 올라 폐교 직전에 있던 학교를 인수하여 기도하면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교육하여 한 시대를 깨우는 많은 일군을 길러내는 선각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바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명"을 보면 그 분의 교육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의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같은 것을 바라볼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있는 곳으로 가라.

평생동안 모범을 보이시다가 59세의 일기로 천국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섬김의 본이 오늘 한국 곳곳에서 제자들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스승의 위치에 있는 기성세대는 올바른 교육을 위하여 모범적인 삶으로 자기 자신이 존경을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고전 11:1. 막 1:2. 요 13:13-14. 롬 2:21. 약 3:1. 마 23:25-27). 교사가 존경을 받을 때에 교육의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17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 사회와 학교 그리고 교회 현실의 아픔은 앞서가는 분들이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노블레스 오빌리제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본을 받아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낮아지는 삶을 통해 다음 세대와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는 어른들과 스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문화는 그 만큼 스승은 존경과 권위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스승이십니다.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르게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다른 이상한 가르침을 따라 가면 우리의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 주신 모범을 따라 사는 건강한 교회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가르침과 배우는대로 행동합니다. 어설프게 배우면 좋은 학생이 못됩니다. 교회 생활도 대충 하고 배우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늘 겉돌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가르침의 내용과 원리 그리고 방법대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일:2015-05-19 17:13:44 118.34.2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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