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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부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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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등록일
2016-01-04 06:44:01
조회수
2606
1907년을 다들 그리워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목회자는 특히 개척을 했거나 새로 담임이 된 목회자는 더욱 더 부흥을 외칩니다. 하지만, 그.부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경우는 못봤습니다. 그저 부흥을 부르짖습니다. 무슨 궐기대회나 하듯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교인들은 교인 수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개척하고 난 이후, 혹은 담임으로 위임되고 난 후에 교인 수가 많아지면 부흥이 되었다고 여깁니다. “유사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그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는 머리 수가 중요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인 수가 많아지면 그 목회자의 어깨에는 어느듯 힘이 들어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지는 몰라고,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인 수가 비록 10명일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고, 실제 그 말씀대로 살아 가는 것, 그렇게 못살았을 때 몸부림을 치듯이 절규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힘 달라고 부르짖는다면 이미 부흥한 것이라"고…..

**만약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가르쳐주십시오.

http://blog.daum.net/_blog/hdn/BgmFrame.do?blogname=phs8685&articleno=15711785&id=phs8685
위 블로그에 있는 글입니다.

(중략)
부흥이라는 단어는 한국교회 성장의 촉매제이고, 부흥이라는 노래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찬양이고, 부흥사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끄는 목회자들이고, 한국교회의 강단과 주보에는 여지없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구호가 넘쳐나고, 어떤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교회가 부흥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단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단체가 '부흥사협의회'입니다.

부흥을 사모하기 위해 3박 4일, 혹은 2박 3일 동안 갖는 모임을 '부흥회'라고 하고, 부흥회를 주도하는 목회자를 가리켜 '부흥사'라고 합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부흥이라는 말을 맹신합니다.

원래 '부흥'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오늘도 교회성장, 교회건축, 확장, 목회성공 등을 통일해서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그들에게 세뇌된 교인들이 부흥을 외쳐 부르면서 노래하고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부흥을 주옵소서!"라고 외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비신자들이 보기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부흥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그럼 여기서 부흥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전국의 모든 교회들이 주문처럼 외치고 있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성경적인 것이며, 성경이 요구하는 것이며, 부흥이 과연 한국교회의 사명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부흥이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부흥이 되는 건지, 부흥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부흥이라는 단어에 몰두합니다. 그러면서도 부흥을 갈망합니다.

그럼 모두들 부흥을 그토록 갈망할까요?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부흥이란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부흥이 오기를 원하신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다시 실현되는 것이다’, ‘부흥이 오면 이 땅이 회복될 것이다’ 등등….

부흥은 과연 성경적인가?
그럼 먼저 부흥이 성경적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그토록 주창하는 부흥이 과연 성경적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흥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부흥이란 단어자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또 그와 비슷한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한국교회가 그토록 주창하는 부흥을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부흥’이란 단어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약성경에 한 번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약성경을 읽고 읽어도 부흥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부흥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수많은 한국교회들이 동일하게 외쳐대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성경중심이니, 성경적이니,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부흥이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하다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과 폭발적인 전도의 결과를 부흥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구약을 볼까요? 구약성경에 보니까 비로소 '부흥'이라는 단어가 출현합니다. 구약에는 부흥이라는 단어의 언급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구약역시 부흥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박국서에서 부흥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 중에 '부흥'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임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의 내용에서 ‘부흥’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부흥’이라는 말의 의미는 ‘회복’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사전에서 부흥이라는 단어는 ‘쇠잔하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일어나게 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사전의 뜻도 ‘회복’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하박국서에 나오는 기도처럼 무너졌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방군대와 임금을 통해 징벌하셨습니다.

징벌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황폐해졌습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성전은 훼파되고, 젊은이들은 포로로 끌려갔고, 건물들은 무너졌습니다. 이런 황폐함을 보고 하박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기도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부흥
그러나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부흥’의 의미는 다릅니다. ‘부흥’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부흥이고, 모임을 갖는 것은 부흥회고, 설교초청을 받은 사람은 부흥사고,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도 부흥의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다 부흥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부흥을 남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도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부흥=하나님의 뜻' 또는 ‘부흥=성경’이라는 공식으로 교인들을 세뇌시켰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부흥, 부흥회, 부흥사, 부흥이라는 노래까지 너무 신봉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흥은 분명 신기루였습니다. 부흥은 분명 구호였습니다. 부흥은 분명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전라도 말의 ‘거시기’처럼 아무 말에나 상황에 접목시키는 단어일 뿐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부흥이라는 용어에 사로잡혀서 좋은 줄 알고 지냈습니다.

부흥은 분명 성경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임재로 나타나는 각종 역사, 죄를 고백하고 자복하는 회개의 역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부흥이라는 단어로 통합한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부흥이 마치 하나님의 뜻이고, 성경의 가르침이고,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정의하면서 부흥이 마치 교회의 사명인 양 오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타락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회복을 바라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한국교회를 먼저 정화해야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정화에는 관심도 없이 세상을 회복시키겠다고 부흥을 사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솔직히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부흥사들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 [한국교회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조엘박/ 박스북스) 中에서 -
작성일:2016-01-04 06:44:01 1.211.1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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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lserom 2016-01-05 21:20:19
한국교회, 교회의 본질적 의미 퇴색과 비복음적 변질은 70년대 조용기가 삼박자 축복을 불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80년대 전후로 물질적 문화가 한국사회 경제문화와 교회까지 물들여지면서 신앙의 궁극목표-그 비밀된 내세 상급보다 가시적 문화번영으로 답하는 목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결국 신앙은 물질적으로 잘되는 것에서 결론을 내려버린 현실입니다. 그러기 위해 얼른 안믿어지는 복음(진리)보다 가능성이니 적극적 사고방식이니 긍정주의니 하는 말에 혹하면서 빠졌습니다. 슐러는 죽었고 조용기도 형편없는 말로를 보이니 이제 반성하겠지요.. 기도하고 조신하며 말씀대로 잘 살아나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