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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믿음으로 가나안 땅 입성을 도운 기생 라합 (히브리서 11:30-31)

닉네임
스데반 황
등록일
2016-12-04 19:00:31
조회수
1637
믿음으로 가나안 땅 입성을 도운 기생 라합

히브리서 11:30-31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수아 6:20-25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여호수아는 모세와 약 60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 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20살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이끌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는 대략 60살입니다. 그리고 110세까지 살았으니, 가나안 땅에서 약 50년을 살았습니다. 그 중에 7년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배분하는데 사용했고, 나머지 43년 정도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살았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두각을 드러낸 것은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때입니다. 그곳은 르비딤이라는 장소였는데,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 꼭대기로 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땅의 실전에서 아말렉과 싸웁니다. 이때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여호수아가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쪽 손을 붙들어 올리니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진멸하게 됩니다(출 17:8-16). 이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그 후 모세는 여호수아를 심복으로 삼습니다. 심지어 모세는 주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갈 때에도 여호수아를 데리고 올라갑니다(출 24:13; 출 32:17). 물론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리까지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산 중턱까지 여호수아를 데리고 갑니다. 이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대단히 귀하게 여기며 차 세대 지도자로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한편, 여호수아는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도 회막 근처까지 함께 갔습니다. 심지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진으로 돌아가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함께 거하기를 소망하였던 것입니다(출 33:7-11).

여호수아와 관련한 가장 귀한 사건은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의 사건입니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았는데,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다들 그 땅을 악평을 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큰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고통 가운데 그들에게 호소합니다.
[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민 14:6-10)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재앙으로 죽고 또한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모든 장정들은 전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세 역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에게 지휘권을 넘기게 됩니다.
[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민 27:18; 신 31:23; 신 34:9)

그리고 여호수아서를 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큰 무리를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장면부터 묘사됩니다. 이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강 동편 싯딤이라는 곳에서 두 명의 정탐꾼을 내보내며 말합니다.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수 2:1).
가장 먼저 여리고 성을 정탐해야 하는 이유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 두 정탐꾼은 여리고 성으로 가서 라합이라는 기생 집에 들어가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기생이라는 히브리어 용어는 (조나)인데 이방 신전에서 일하는 창녀가 아니라 일반 대상을 위한 성 노리개의 창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라합은 대단히 천박한 신분인 기생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볼 때는 수많은 행음을 저지르는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기생 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위해 기생들을 준비하여 맞이했던 주막과 비슷하였던 것 같습니다.

두 정탐꾼은 그곳으로 들어갔고, 이에 어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보고 여리고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수 2:2). 이에 여리고 왕은 기생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습니다.
“네 집에 두 정탐꾼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두 정탐꾼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 당장 끌어내라.”

그러자 이미 그 두 사람을 지붕에 펼쳐 놓은 삼대 밑에 숨겨 놓은 라합이 대답합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던 것은 맞지만 나는 그들이 정탐꾼인 것을 몰랐고, 그 사람들은 어두워질 때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이제 곧 성문이 닫힐 텐데, 빨리 뒤쫓아가 보십시오. 아마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참조, 수 2:4-5).

그러자 왕의 부하들은 신속히 밖으로 나가서 그 두 정탐꾼들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들은 요단 강 서편 나루터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그 두 정탐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여리고 성 왕은 부하들이 성을 떠나자마자 혹시 성 안에 정탐꾼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속하게 성문을 잠갔습니다. 여리고 왕은 생각하기를, 만일 두 정탐꾼이 여리고 성 안에 숨어 있다면 그들은 독 안에 빠진 쥐나 다름 없다고 보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어둔 밤이 되자 지붕 위의 삼대 아래 숨어 있던 두 정탐꾼에게 몰래 다가가서 그들이 여리고 성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면서 두 정탐꾼에게 말하였습니다.
[
9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의 백성에게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매우 두려워하고 있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당신들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10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당신들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신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또 당신들이 요단 강 동쪽에 살고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두 왕 시혼과 옥을 물리쳤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11 이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지금 이 성 사람들은 당신들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니 여호와 앞에서 나에게 약속을 해 주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처럼 당신들도 내 가족에게 친절을 베풀겠다고 말입니다.
13 제발 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자매들과 그들의 모든 가족을 구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그렇게 하겠다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수 2:9-13, 쉬운성경)

이에 정탐꾼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거셨는데, 우리 역시 우리의 목숨을 걸고 당신들을 살려 주겠습니다. 그 대신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 우리는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인자로 대할 것을 진실하게 맹세합니다”(참조, 수 2:14).

약조를 받은 라합은 그 두 정탐꾼이 도망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다행스럽게도 라합이 소유한 그 집은 성벽 위에 세워져 있었고, 라합은 그 두 정탐꾼이 도망칠 수 있도록 붉은 밧줄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밧줄을 타고 성벽을 따라 내려가서 발이 땅에 닿으면 저쪽 언덕으로 올라가세요. 그곳에서 3일 동안 숨어 계세요. 그러면 왕의 부하들이 당신을 찾다가 포기하고 여리고 성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갈 길을 가시면 됩니다.”

이에 두 정탐꾼은 한없는 감사를 느끼면서 대답합니다.
“우리는 당신과 약속한 이 맹세를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에 들어올 때 반드시 우리가 타고 내려가는 이 붉은 밧줄을 이 창문에 매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형제 자매와 모든 가족을 집 안에 있게 해야 합니다. 만일 그 중에 누군가가 밖에 나갔다가 죽임을 당하면 우리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붉은 밧줄을 매단 이 집 안에서 누구라도 우리 군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면 우리 두 사람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 대신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오늘 약조를 비밀로 해야 합니다.”

이에 라합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후 그 두 정탐꾼은 붉은 밧줄을 타고 여리고 성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들이 떠나자 라합은 곧바로 그들이 타고 내려갔던 그 붉은 밧줄을 창문 밖으로 매어 놓았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말대로 언덕으로 가서 3일 동안 숨어 있다가 요단 강을 건너 요단 동편의 싯딤으로 돌아와서 여호수아에게 보고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다”(히 11:31)라고 진술합니다.

한편, 야고보 사도는 기생 라합의 이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

이때, “이와 같이”는 야고보서 2장 24절을 말합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그리고 26절은 이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행함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행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생 라합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야고보는 두 정탐꾼을 살려준 것 외에는 그녀의 믿음이 구원 받는 참 믿음임을 입증하는 다른 선행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소위 인간들이 볼 때의 도덕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애국자로서의 행위도 아니며, 인류애를 위한 자선 행위도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가 언급하는 행위는 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믿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서의 행위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준 기행 라합의 행위는 가나안 족속의 입장에서는 애국적인 행위가 아니라 매국노의 행위이며, 거짓말까지 동원했으니 도덕적으로도 그릇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행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주의 나라를 위한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행위였습니다. 즉, 기생 라합의 두 정탐꾼을 향한 믿음의 행위는 사람들이 보기에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행위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사람이 보기에 의로운 것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 서로 다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모든 종교가 선하다고 하면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면 매우 의롭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면 매우 고약하고 못된 고집 불통의 근본주의자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타종교들을 인정하며 함께 섬기자고 하는 자들은 패역하고 악한 배도자들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구원 얻는다고 말하는 자들은 주께 충성된 ‘행위’를 보이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의로운 자들입니다.

사실 성경은 라합을 등장시키면서 구원 받는 자는 모두 끔찍한 죄인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처럼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기생 라합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고, 라합은 여리고성 백성 가운데서 믿음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들과 언약을 맺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주님께 간곡히 부탁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
3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 21:31-32)

[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눅 18:9-14)

사랑하는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은 전부 죄인이었습니다. 죄악의 차도만 있을 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끔찍한 죄인들이며 지옥 불에 합당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들의 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 순종은 어떤 사람은 철저하지만 아직 연약한 신자들은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믿음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행위는 이미 설명 드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그리고 주 하나님께 충성하는 주의 참된 백성의 유익을 구하는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부분을 놓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원수의 나라를 유익하게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착하다고 하니 ‘선행’으로 오해하면서 이러한 선행이 있어야 참 믿음이라는 그릇된 신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함은 소위 인본주의 윤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주께 충성하는 것이 믿음의 행위이며, 나아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심지어 배신자라는 지탄을 받는 것이 믿음의 행위일 수 있는 것입니다.
[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0-12)

[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 10:21-22, 10:28; 10:32-33).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을 단지 전쟁의 군사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나안 땅에 세우는 주의 백성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사실, 기생 라합은 자신의 행동이 동족에게 발견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도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주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과 삶을 의탁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라합의 이 믿음의 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는 목숨을 건 기생 라합의 믿음의 행함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행진을 시작합니다. 여호수아 및 주의 백성은 모세 때에 홍해를 마른 땅 같이 지난 것처럼 요단 강을 마른 땅 같이 지납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사기가 더욱 충천하였고, 반면 가나안 땅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앞에 섭니다. 여리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도 성 안에서 나오거나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루에 한 번씩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돌라. 제사장 일곱 명을 세우고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들고 언약궤 앞에서 행군하며 나팔을 불게 하라.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고, 제사장들은 다 함께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라. 그때 백성들은 크게 고함을 치라.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다. 그때 백성들은 곧장 여리고 성으로 쳐들어가거라.”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똑같이 전달하며 말합니다. 이때 한 가지 추가시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이 성을 주셨습니다. 성과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여호와께 바치는 것이므로 모두 없애시오. 다만 기생 라합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려 주어야 하오. 이는 라합이 우리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 주었기 때문이오”(수 6:16-18).

그리고 마지막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고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수 6:20-25).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리고 성은 영적으로 볼 때 우리 신자들이 점령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그 성은 우리 내면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는 죄성이라는 여리고 성이 있고, 외부에는 사탄의 실제 권세가 있습니다(히 12:4; 고후 10:3-6). 여리고 성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죄성이나 사탄의 실제 권세와 세력은 오직 믿음으로만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미 본 것처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이때 우리의 믿음의 행위는 주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위해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함과는 완전하게 무관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가 나타난 것이 여리고 성의 무너짐입니다.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도는 믿음의 행위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행위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손가락질을 하며 우리를 멀리하게 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가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믿음 및 순종 때문에 우리 안의 죄성을 극복하게 하실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이 세상의 모든 세력과 권세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가장 큰 외적인 싸움은 진리 싸움인데, 우리는 믿음으로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해 나가며 승리할 것입니다.
[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4-5)

그리스도를 믿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는 내면의 죄성을 이기고 복음의 진리로 외부의 사탄의 거짓과 계략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라합은 여리고 성의 모든 백성이 멸망할 때에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녀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말을 믿고 함께 그녀의 집에 거한 가족들 역시 구원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에 기생 라합이 등장합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 1:5-6).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오셔서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나라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5-16).

즉, 기생 라합은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 할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그녀는 기생이었으며, 가나안 여인이었지만, 오직 주의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면서 마침내 그 믿음을 행함으로 드러냄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증명되고 확인된 믿음입니까? 즉, 목숨을 거는 행함으로 나타나는 기생 라합과 같은 입증된 믿음입니까? 그러한 믿음이라면 단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주께 다 바친 진실한 믿음일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는 삶과 성품에 지대한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지적 동의에만 머무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약 2:14, 19-20, 26)

바울 역시 야고보 사도와 동일한 말을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기생 라합은 당장 기생집을 무너뜨리는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 공동체로 들어오면서 그 삶을 청산하였으며 그 이후 오실 메시아를 바라봄으로 지극히 거룩한 성품을 이루며 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흉측한 죄인들이었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그 은혜와 능력과 생명으로 이 부패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향기와 거룩과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3-7)

[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 (벧전 1:18-19, 7)

오늘 우리는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니 더욱 기생 라합처럼 변화된 삶과 성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행하는 주의 자랑스러운 백성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일:2016-12-04 19:00:31 211.235.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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