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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믿음의 영웅들 (히브리서 11:32-40)

닉네임
스데반 황
등록일
2016-12-11 17:54:24
조회수
1963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믿음의 영웅들

히브리서 11:32-40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지금까지 구약의 여러 믿음의 영웅들을 대하면서 믿음의 특성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께서 보내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영웅들을 다루고 난 후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라고 말합니다. 이는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았음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새 언약 시대, 곧 메시아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더더욱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은 히브리서 11장을 시작하기 전인 히브리서 10장 마지막 부분, 곧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는 선언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에 우리 신자들의 삶은 처음부터 인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 사사 시대의 영웅들, 한 명의 왕, 그리고 선지자들을 언급하고 11장을 마무리 합니다.

사사 시대에 믿음의 영웅들로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의 왕은 다윗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경우는 레위 지파에 속한 자로서 제사장이며 사사이며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세운 마지막 사사이기도 합니다. 이에 사무엘은 따로 취급되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들 모두가 인생 가운데 문제 없던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가 그들의 죄악이나 흠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만을 기록한 것은, 영원한 주의 나라에서의 기록은 우리가 잘 한 것만을 기록으로 남길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우리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죄 사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지은 죄악들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잊혀질 것이고, 우리의 모든 죄는 깊은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흔적 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골 2:14)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아침에도 죄로 점철된 과거를 잊고 다시 용기를 내어 믿음의 경주를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는 참으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아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의 믿음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행위는 그 사람이 거듭난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그 어떤 불신자가 기생 라합처럼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려 하겠습니까? 그 어떤 불신자가 모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다 버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 믿음의 행위는 사람의 믿음의 깊이에 따라 일관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의 나라와 역사를 위한 도구로 드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자주 쓰러지고 자주 혼이 나면서 회개 가운데 순종을 배워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 짧은 인생을 가장 보람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귀한 수고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면, 32절에서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군대 13만 5천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온 사사였습니다. 바락은 가나안 족속의 압제로부터 여사사 드보라를 도와 이스라엘을 구한 인물입니다. 삼손은 주의 영으로 인하여 대단한 힘을 가지고 블레셋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특히 자신의 죽음을 통해 블레셋을 무력하게 만든 사사였습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서자로서 개인 조직을 거느리다가 암몬 족속의 위협을 받던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은 장래의 메시아의 왕권 및 영원한 나라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 사사 시대를 종료 시키고 열왕의 시대를 도입하였습니다.

사사들과 열왕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고 순종할 때 약속대로 승리와 풍성한 삶을 안겨주셨습니다. 즉,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보상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지해야 할 것은 33절에서 언급하는 약속은 원어로 (에팡겔리온)인데 복수이며 정관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39절의 약속은 (테인 에팡겔리안)으로서 단수이며 정관사가 있습니다. 즉, ‘그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특이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며 그 후 모든 구약 백성이 소망하게 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씨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으로서 땅과 관련되며 또한 영원한 나라와 관련됩니다. 아무튼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 약속’의 성취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와 관련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받아냈습니다. 놀랍게도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메시아와 그분의 대속, 그리고 그로 인하여 이 땅에 이루어질 영원한 나라를 믿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부활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는 사건은 다니엘이 원수들의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사자 굴에서 나온 사건을 말합니다.

34절의 불의 세력을 멸한 사건은 다니엘의 세 친구인 미사엘, 하나냐, 아사랴와 관련된 사건을 말합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한 연고로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조금도 해를 입지 않고 풀무로부터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맹렬히 타는 풀무불(단 3:19-23) 앞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바벨론 제국의 대왕인 느부갓네살의 우상 숭배 명령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칼날을 피한 사건은 엘리야의 경우 이세벨 여왕의 칼날에서 도망한 사건이고(왕상 19:2), 엘리사의 경우는 아람 왕이 큰 군대와 말과 전차를 이끌고 성을 에워쌌을 때 하늘의 군대와 불말과 불전차로 구원 받은 사건을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여호야김의 칼 날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예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주심을 강조합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된 경우는 히스기야 왕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앗수르 제국의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오직 믿음으로 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하여졌습니다. 이때 주께서는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죽이시고 히스기야 왕과 남유다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전쟁에 용맹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친 것은 성경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는 자기 힘을 의지하고 교만할 때는 패배하였으나 주를 향한 충성을 가지고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할 때는 항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았습니다. 엘리야 때에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을 다시 산 아들로 받았고, 엘리사 때에는 수넴 여인이 죽은 아들을 다시 산 아들로 받았습니다. 예수님 때에는 나인성의 과부가 죽은 아들을 다시 산 아들로 받았습니다.

35절은 재미있는 비교를 합니다. 여자들이 죽은 자녀들의 부활로 그들을 다시 받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더 좋은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인들이 받은 그 아들들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여 살아났지만 다시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부활’은 영원한 부활을 말합니다. 신구약에서 바라보는 구원의 최종 상태를 의미합니다.

같은 절 35절에서 말하는 심한 고문은 곤봉으로 죽도록 맞는 것을 의미하는데, 외경 마카비서를 보면 참 신자 엘르아살과 또한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와 그 아들들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죽도록 곤봉으로 매를 맞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었고, 이에 모든 고문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 가운데 태어났던 모든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좋은 부활’입니다. 그 날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이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36절을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가 이 묘사에 정확하게 들어 맞습니다. 예레미야는 한 때 대제사장 바스훌에게 조롱과 채찍질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형틀 차꼬에 채워지고 수많은 치욕과 모욕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더러운 물이 있는 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한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때에도 주의 백성들은 고문을 당하거나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핍박과 고난과 희롱을 당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은 또한 주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 던진 돌에 맞았습니다. 특히 스가랴 선지자는 요아스 왕이 하나님을 저버리자 “여호와께서도 왕과 관리들을 저버리실 것이라”고 외쳤는데, 이에 왕이 관리들을 명령하여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죽였습니다.

또한 전승에 의하면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자 그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른 믿음의 사람들은 바알 신과 금송아지를 섬기라는 회유를 받았으나 거절함으로 칼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특히 아합 왕 때에는 이세벨이 실세였는데 아합과 이세벨은 주님의 제단을 부수고 주님의 참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또한 여호야김이 집권할 당시 예루살렘의 멸망의 예언을 했던 선지자 우리야가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사도 야고보가 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 그리고 세례 요한 등은 한 때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는 신실한 신자들이 산이나 광야로 도망하여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지독히 가난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특히 신약 시대에 와서는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로 유리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백성들은 순교의 정신을 갖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생명을 구하기도 했지만, 또한 믿음으로 생명을 주께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원수들에게 지독한 박해와 고문과 멸시와 조롱을 받았으나, 기꺼이 주를 위해 그러한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삶과 생명을 송두리째 다 드렸습니다.

왜 이렇게 했습니까? 그들에게는 영원한 약속과 영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 고난 받아야 주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음을 믿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본향이 아니라 저 영원한 나라가 본향이며, 또한 이 세상 왕이 진정한 왕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들의 참된 영원한 왕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분께만 생명을 다하여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충성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으로 입증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주께서 우리에게 법도와 말씀을 주신 이유는 충성임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 그들의 …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78:5-8)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할 것이라”(시 101:6)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을 받을 자는 다름 아닌 충성된 자들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성령을 따라 행할 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에도 충성이 있습니다. 즉, 충성이 없다는 것은 성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 5:22).

바울은 주께서는 충성된 자에게 직분을 맡기신다고 알려줍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도다”(딤전 1:12).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 충성하십니까? 그분의 말씀과 계명과 뜻을 성경을 통해 철저하게 알고 계시며, 또한 충성할 수 있는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충성하십니까? 베드로는 충성심은 있었지만 그 충성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크게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충성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성령의 역사를 따라 충성하는 자는 끝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장을 충성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충성은 모든 믿음의 특징들을 다 요약합니다. 즉, 충성된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온전한 믿음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특이한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38절은 개정 개역의 경우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보다는 “이런 사람에게는 세상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원어에 맞습니다. 즉, 믿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이 세상의 영광과 재물을 희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생명까지 희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똑 같은 의미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사도 바울 역시 마찬가지 말을 합니다.
[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7-18)

그러므로 신자는 얼마든지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이 땅에서는 여러 가지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복음과 주의 나라를 위해 얼마든지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졌노라.
](고후 6:4-8)

[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3-28)

이러한 충성된 신자들은 이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기 때문에 세상은 이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소개된 모든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증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하나님의 ‘그 약속’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8-9).
즉, ‘그 약속’은 메시아가 오셔야 성취되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그 통치는 주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주께서는 선포하십니다
[
14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4-15)

그러나 마귀들을 내어쫓으실 때부터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그리고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시며 만왕의 왕으로서 이 세상을 복음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2-36)

그러므로 구약에서 누리지 못하던 그 약속은 지금 이미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그러나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가 완성될 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를 주의 발 앞에 둘 때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입니다.
[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 15:24-28)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나타난 현상으로서 구약의 믿음의 성도들은 누리지 못한 약속입니다. 반면, 우리는 그 약속을 현재 성령 안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도래된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으로 와 있는 반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의 완성은 택한 주의 모든 백성을 다 구원하는 그 때가 될 것이며, 바로 그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고 그 나라를 완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완성은 구약 백성 및 신약 백성인 우리 모두에게 다같이 미래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초림은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4천년 이상 기다리던 사건이 그리스도의 초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초림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과거 2천년 전 사건입니다. 이는 우리는 새언약 가운데 한없는 복을 누리는 주의 백성들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구약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면 우리를 대단히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와 예표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성령 안에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주 앞에 섰을 때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의 영원한 속죄 제사로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새언약에 따라 구하는 모든 자에게 거룩과 사랑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구약의 믿음의 백성들은 오실 메시아와 그분의 나라, 그리고 짐승 제사가 예표하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오셔서 이 땅에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으며 또한 그분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 죄의 세력을 이깁니다. 이제 앞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재림하셔서 성령으로 시작하신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 실제로 영원히 세우실 것입니다. 그때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모든 세상 나라들이 무너져서 먼지가 될 것이고, 모든 세상 나라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 신자가 세상적으로 형통할 것을 바라지 않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뭐든 성공하여 배불리 먹으며 고난 없이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형통을 구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형통과 복음의 형통을 기도하기 바랍니다. 돈이 많아지기를 기도하지 말고, 복음을 통해, 우리 신자들의 삶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신자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 바울, 야고보 등, 수많은 뛰어난 성도들은 박해를 받으며 살다가 심지어 순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 있고, 신앙과 정직과 공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손해와 시련과 오해와 이유 없는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셉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를 통해 주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은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죄를 이기는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힘써 지키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편, 믿음의 가장 큰 원수는 불신앙입니다. 이에 성경은 불신앙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불신앙의 태도는 완고함입니다.
[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도다.
](히 3:8, 12-15)

그러면 믿음을 계속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우리의 믿음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당하시는 분은 우리 예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서 원어로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이라는 뜻을 찾아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내하셔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감당하심으로 마침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 증거가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왜 성령을 보내십니까? 우리의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장하고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장성하여 주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분의 기쁨이 되고 나아가 영원한 영광을 잃지 않고자 한다면, 철저하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믿음의 시작과 끝은 내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에 참 믿음을 잃는 경우는 없지만, 믿음의 성장 그 자체는 우리 자신의 노력과 기도와 자아 부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장만큼 우리의 성품은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입니다. 한편, 믿음을 잃는 만큼 비참과 허무와 파멸과 낭비의 삶이 될 것이며, 주 앞에 설 때에도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 안에서 누리며 복음의 능력에 따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특히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을 다하기까지 충성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계속 강건하여지고 넉넉하여지는 가운데 인내함으로 믿음의 경주를 승리와 영광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호흡이 마치는 그날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며 충성하며 달려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일:2016-12-11 17:54:24 211.235.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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