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유게시판

제목

삶의 궁극적인 의미

닉네임
스데반 황
등록일
2017-01-06 07:35:00
조회수
1035

삶의 궁극적인 의미



 



창세기 5:5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얼마 전에 납골당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납골당에 가서 작은 공간의 상자들을 보니 한결 같이 같은 표현, “언제 태어나 언제 잠들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50년, 어떤 사람은 20년, 또 어떤 사람은 80년,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났다가 네 살도 채 안 되어 죽은 어린 아이도 있었다. 필자는 납골당의 상자들을 보면서 ‘저 숫자 사이에 그 사람이 살았구나. 그 기간만큼 사람은 사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잠겼다.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서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노래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기자는 최대의 부귀와 영광과 명예와 인기와 이 세상의 온갖 쾌락을 다 누려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그의 고백대로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은 분명한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해 위에서의 삶이 있음을 본다. 영생의 삶이 있음을 본다. 결코 헛되지 않고 영원한 보람과 의미를 지닌 삶을 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해 위에 있는 삶을 이 땅에서 누려본다. 우리는 먼지로 돌아가는 생명이 아니다. 주 안에서 생명을 다시 찾은 자는 먼지가 아니고 영생의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는 자이다.



 



아담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죽 옷을 입히셨다. 비록 실패한 첫 아담이었지만 자신의 허리에서 언젠가 오실 둘째 아담을 바라보면서 메시야의 대속과 구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그 믿음을 갖고 사는 순간부터 그는 먼지로 돌아갈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랑하며 살게 될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즉, 930세에 아담은 영생을 얻은 상태에서 이 땅에서 저 세상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의미를 느껴 본다. 주님 주신 고귀한 생명으로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묵상하여 본다.

작성일:2017-01-06 07:35:00 61.101.192.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