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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거짓 선생들을 주의하라(베드로후서 2:1-3)

닉네임
스데반 황
등록일
2017-01-22 16:56:22
조회수
1214
거짓 선생들을 주의하라

베드로후서 2:1-3, 15-22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교사들은 베드로가 언급하며 강조하고 있는 구원의 목적, 또는 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목적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를 위해 성경을 제 멋대로 해석하여 왜곡시킵니다.

이에 베드로후서 1장 마지막 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에 대해 결코 아무렇게나 해석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
20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사실을 아십시오. 성경의 예언의 말씀은 사람이 임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데,
21 이는 예언은 전혀 사람의 뜻대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받아서 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벧후 1:20-21, 스데반 황 역)

또한 베드로후서 3장 16-17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6-17)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그릇된 해석은 미혹과 멸망에 떨어지는 첩경입니다. 이에 베드로후서 2장은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거짓 선지자들 및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제 멋대로 해석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한다고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복음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 때문에 들어가는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은 자동으로 포함됩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성경은 의를 행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그런데 이를 막는 것이 이단이며 거짓 선생들입니다.

구약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지 않고 마귀가 전하는 말이나 또는 자신이 지어낸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백성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거짓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와, 그리고 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신약 시대에 주의 백성의 공동체에 가득 하였습니다. 또한 앞으로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소아시아 교회를 향해 그들에게 거짓 선생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계시와 관련하여 속이는 자들인 반면, 거짓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속이는 자들을 말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종종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자들입니다.

이에 1절은 거짓 선생에 대해 뚜렷하게 말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1절에서 이단은 뚜렷하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단은 그들을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이러한 경우 그들에게는 저주라고 불리는 멸망, 곧 구원 받지 못하는 멸망이 분명하게 임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부인하는 자는 다시는 죄를 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주를 부인하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취하는 자들입니다.
[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 10:26-27)

여기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인하는 죄를 말합니다.
[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 10:28-29, 31)

최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 교수 한 분이 칼뱅과 루터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전가(Imputation) 교리를 부인하였습니다. 전가라는 것은 복음의 핵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피로 사서 구속하여 주셨음을 말하는 핵심 신학 용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속을 힘 입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없으며, 오직 영원한 멸망 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그런데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으로 인한 전가 교리를 부정하니 이는 1절에 의하면 스스로 거짓 선생임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 사함의 근거요 또한 죄성을 이기는 능력임을 부인할 때 그러한 그릇된 복음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거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
10:18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로)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10:18-22; 히 9:14-15)

아무튼 베드로의 경고에 의하면 그릇된 성경 해석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전한 구속을 부인하는 것이 이단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며, 이러한 가르침에 속하는 자는 선생이든 학생이든 멸망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이단적인 내용은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을 차단하는 왜곡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절에서 우리가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가만히’ 이단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베드로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이 지혜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약 시대에서 십자가의 완전한 대속을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은 그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외부로부터 언제나 ‘가만히’ 끌어들여 왔으며 또한 가만히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교회 내에 있는 거짓 선생들이 이단적인 가르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도록 한 후에 끌어들입니다.
[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3-15)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을 부인하고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생들이 가만히 멸망의 이단 사상을 끌어들였습니다.
[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갈 2:4-5)

유다서에서도 거짓 선생들이 교회 내에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모시는 것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내용, 곧 종교 다원화의 교훈을 ‘가만히’ 끌어들였습니다.
[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 1:3-4)

교회 내에서 이러한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자가 상에서 ‘완전한’ 대속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 가운데 진심으로 그분을 나의 주로 모시고 충성하며 살아간다면 거짓 선생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은 우리 각 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침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정확히 알고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자들은 그러한 이단적인 그릇되고 간교한 교훈을 즉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교회는 이단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의 위험을 분명히 깨닫고 거짓 선생으로 드러난 자들을 향하여 바울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권징해야 할 것입니다.
[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롬 16:17-18)

여기서 개정 개역이 “떠나라”고 번역한 원어 (에클리노)는 “차단하라”, “막으라” 또는 “중지 시키라”로 번역해야 옳을 것입니다. 즉, 거짓 선생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들이 공동체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징계하라는 뜻입니다.

이제 2절을 보면 슬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호색을 따를 것이며,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개정 개역이 호색이라고 번역한 원어 (아셀게이아)는 고삐 풀린 상태에서 본능에 따라 제 멋대로 날뛰는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성적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본능을 따르는 지저분한 마음과 삶을 의미합니다. 방탕, 호색, 무절제로 번역이 가능하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물든 모습을 뜻합니다.

이에 13절을 보면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라고 하였고, 14절에서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하였고, 또한 18절에서는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영적으로 보면, 우상을 마음에 품은 상태에서 제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또한 바알과 아스다롯 등의 우상 신들을 함께 섬겼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무엇이 (아셀게이아)인지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광분과 무질서의 도가니의 모습이며, 집단적으로 노골적인 부패에 떨어지는 것이 (아셀게이아)입니다. 즉, 탐욕과 정욕에 빠져 자기들 멋대로 행하는 방탕과 무절제와 무질서가 (호색)으로 번역된 (아셀게이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의 대속을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성적 타락을 나타내든지 혹은 세속적인 문화 및 종교와 섞인 혼합 종교의 광란을 보입니다. 그들은 몇몇 부패한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조롱하더니 나아가 참된 교회 및 복음, 그리고 영광의 그리스도까지 도전하며 비방하는 성향을 나타냅니다.

문제는 그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짓 선생들과 참 선생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분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생들 때문에 기독교가 받는 손실은 대단히 큽니다.

이제 3절은 거짓 선생들의 숨은 동기를 알려줍니다. 그들의 숨은 동기는 자신의 영달과 명예와 권력과 인기와 돈입니다. 그들은 탐심을 채우기 위해 지어낸 말을 합니다.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야망 및 세상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여 청중들의 귀에 달콤한 말을 해 주면서 자기들의 탐심과 영달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심판하셨고 또한 반드시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이 개인적인 영리를 위해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왜곡시키는 순간부터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 계속 머물 것이며, 마침내 실제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무서운 경고를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해 베드로는 역사 속에 있던 세 가지 사례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타르타러스라는 곳에 쳐 넣으신 후 어둠의 사슬로 묶어 놓으신 사건입니다. 천사들 중에 삼분지 일이 천사장 중에 하나였던 사탄과 공모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당장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천사에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타르타러스”는 곳에 거하며 어둠의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타르타러스는 일반적으로 지옥으로 해석되지만, 유대 사상에서는 타락한 마귀들을 위한 특별한 고통의 장소로서 헤데스, 즉 음부라고 불리는 곳보다 더 깊은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귀들은 마치 박쥐나 바퀴 벌레처럼 그 본성에 있어서 빛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아서 조금도 빛에 거하지 못하고 오직 어둠 속에만 갇혀 살아갑니다. 물론 그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은 우리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타락한 마귀들, 즉 악령들은 항상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다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즉, 마귀들은 이미 무서운 심판을 받은 상태이고 또한 그들의 멸망은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두 번째 사례는 노아의 홍수입니다. 노아의 홍수 직전의 인간들은 노아를 통해 전파되는 의의 메시지를 부인하고 자기들 멋대로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직 노아를 포함한 여덟 식구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모두 대홍수로 멸망 당하였습니다. 그 영혼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현재 ‘하데스’라고 불리는 지옥에 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수치스러운 몸으로 일어나 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더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3, 15)

또한 소돔과 고모라 성도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오직 롯과 그의 두 딸만 살아나고 그곳의 모든 백성들이 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과 유황으로 타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과 유황으로 죽었지만 그럼에도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지옥에 가 있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수치스러운 몸으로 일어나 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주 하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도전하며 호색과 방탕과 부패에 떨어진 자들을 심판하고 멸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믿고 거듭난 자들을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그들이 못나고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값을 치르고 산 자들이기 때문에 끝까지 놓지 않고 구원하십니다. 반드시 영원히 붙들어 주십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롯이었습니다. 롯은 사실 자랑스런 믿음 생활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통해 전해진 복음을 믿었으며, 이에 그는 심령이 거듭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면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심적인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일 믿음으로 온전히 행하는 자였다면 세상의 영광을 다 버리고 강압적으로라도 가족을 이끌고 아브라함에게 돌아갔을 텐데, 그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셨고 롯은 이를 믿고 구원 받았으니 그의 심령이 의롭게 되어 주변의 죄악으로 인해 크게 상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주께서는 그를 의로우며 경건하다 여기시고 하늘의 불과 유황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불 심판에서 구원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나이 들어 죽은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롯은 지금 아마도 하늘에서, 살아 생전에 더욱 믿음 생활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천국에 거하게 된 것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무한한 감사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은 적어도 롯처럼 그 심령이 죄에 대해 거부 반응을 나타내며 괴로워합니다. 만일 이러한 현상마저 없다면 그는 처음부터 가짜이며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가룟 유다와 같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마음이 없이 계속 죄를 맘껏 짓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전혀 감사치도 않고,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보혈의 능력으로 성품과 삶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멸망에 속한 자이며 또한 죽음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그곳에서 고통 당하며 영원한 멸망을 기다리다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수치스러운 몸으로 일어난 후 백보좌 재판을 받고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7-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 바랍니다. 우리를 자신의 보혈로 구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주님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 후 내 안에 계신 그분의 생명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며 의롭게 살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 자신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지 못한 채, 거짓 선생들이 미혹하면 쉽게 이단에 빠져들 것입니다.

10절을 보니, 이단 사상에 물든 자 또는 거짓 선생들은 육체를 따르게 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육체를 따른다는 것은 육신의 부패한 정욕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육체를 따르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빠져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정해준 선을 넘어 죄를 범하는 것이 이단 사상에 물든 자의 특징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여주신 권위 질서를 도전하는 것이 거짓 선생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삶의 특징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권세를 붙드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며 거침없는 욕과 더러운 말들을 내뱉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영광의 주 앞에서도 떨지 않는 깡다구를 보이지만 아무 때든 멸망할 것이며 또한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주의 신실한 믿음의 백성들이 볼 때는 이단의 지도자들 및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들일 뿐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거룩한 지식이 없이 무식하고,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며, 불의를 행함으로 먹고 살아갑니다.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거짓 선지자 발람이 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삯을 위해 선지자 노릇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불의를 행함으로 돈을 벌었던 자입니다. 그는 정직한 길을 버리고 신앙 양심을 속이더니 그릇되고 거짓된 길을 택하였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이 세상에 속한 물질과 권력과 인기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그들의 이득에 도움을 줄 자들을 찾습니다. 돈과 권력과 인기가 많은 자들을 찾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쾌락과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찾아냅니다. 그러다가 걸려들면 그들을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 있으면서 여러 신자들을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참된 인격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허망하며, 그들의 약속 역시 배신과 미움과 비참 외에는 아무런 보람과 열매가 없습니다. 이에 그들은 물 없는 우물과 같고, 광풍에 밀려다니는 구름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거짓 선생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들의 방법과 약속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부패에서 벗어난 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경각심을 느슨하게 하고 죄를 짓도록 방치시킵니다. 이로써 그들은 베드로가 복음의 능력을 사용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라는 교훈과는 정반대로 주의 백성을 이끌며, 이를 위해 그들은 이생의 자랑을 제시하고 그렇게 하여 미혹된 자들에게는 복음의 목표와 능력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거나 또는 관심을 끊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거짓 선생들은 신앙을 갖기 이전의 죄악을 다시 범하게 될 것이며, 그 부패는 이전보다 더 심하여질 것입니다. 또한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된 자들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즉, 죄악과 죄성에 있어서 처음부터 나중 상황이 더 심각하여지는 것은 거짓 선생들 및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신자들의 특징입니다(18-22).

이처럼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과 행함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거룩의 생명의 역사와 아가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복되고 영광스러운 성품이 그들의 그릇된 성경 해석 및 악한 숨은 동기의 가르침을 통해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생들이 노리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본문은 이 부분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14절과 18절과 19절입니다.

14절은 “굳세지 못한 영혼들”이라고 하였고, 18절은 “겨우 피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자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닌 자들입니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뿌리가 깊지 못한 원인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 13:20-22)

즉, 말씀으로 말미암은 환난이나 박해를 이기지 못하는 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세상 쾌락으로 인하여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 무지하고, 순종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합니다. 아직 그 마음이 롯처럼 세상을 향하여 기울어져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지키시며 거짓 교사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손해를 입고 나아가 세월을 낭비하게 되니 그 비참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겨우 피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초보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자들에게 다가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주께서 채워주실 것이라고 허황되게 약속하면서 그릇된 신앙에 빠지게 합니다.

또한 자유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밥입니다. 즉, 복음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죄로부터의 자유이지 죄 가운데 방종하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사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이제는 의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죄를 맘껏 지어도 아무런 일이 없다는 식의 거짓 자유를 말합니다. 즉, 탈선과 방종을 복음을 왜곡하여 합리화시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들 자신이 부패의 노예들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죄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죄의 노예들인데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참된 교사는 참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를 선포합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에 거하는 것, 곧 죄를 이기고 승리한 상태에서 누리는 것을 자유라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그들에게 신기하게 사로 잡혀 그들의 노예가 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한결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 상태의 부패로 다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부패한 삶을 살게 되고, 또는 아예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비열하고 더 속이기를 잘하고 더 성적으로 더럽고 음란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한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적이 있지만,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넘어간 후로는 이단 사상에 물들어서 다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얽매이더니 더욱 악해지고 더욱 속이기를 잘하고 더욱 죄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이단이 되는 것보다 아예 의의 도를 몰랐더라면 바른 선생을 만나 제대로 복음을 배울 수 있으련만, 이제 엉터리 성경 해석에 세뇌 되었으니 돌아서기가 더욱 힘들고 스스로 무지함에 대해 깨닫지 못하니 그들의 멸망이 더욱 확실하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참된 속담이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이것이 거짓 선생들의 모습이며, 또한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 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믿고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인 능력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그 능력은 영광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우리는 그 능력에 의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정욕에 따라 세상의 썩어질 것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그 나라의 능력을 받기에 힘쓰면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아가페 사랑을 더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 영광 가운데 넉넉하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와 함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부패한 것들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니 그리로 돌아가지 말고 더 높은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향해 달려가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이 세상의 부패에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패한 세상을 부러워하는 마음 속의 우상을 신속하게 제거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을 기억하며 철저하게 십자가의 구속 및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아감으로써 거짓 선생들의 왜곡과 속임수를 대적함으로 주의 교회를 수호하고 온 세상을 향해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입어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영적으로 성장하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일:2017-01-22 16:56:22 211.235.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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