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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야곱의 브엘세바 제사(창세기 46:1-7)

닉네임
설맥
등록일
2017-02-21 11:33:22
조회수
1559
야곱의 브엘세바 제사
(어떤 결정에 앞서 하나님의 뜻이 먼저이다)
창세기 46:1-7절

하나님이 하십니다.
청교도 목사였던 존 버니언은 개신교인이 되었다는 구실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그의 생활은 너무나 경건하여 간수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간수가 그에게 와서 시간을 드릴 테니 잠시 나가서 사모님과 아이들을 보고 다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버니언 목사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내키지 않은 그는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간수에게 "당신은 허락했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아서 돌아왔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버니언 목사가 감옥에 다시 들어오자마자 왕이 보낸 사신이 감옥을 살피러 왔습니다. 큰일 날뻔 했습니다. 이때 가장 놀란 사람은 간수였습니다. 왕이 보낸 사신이 돌아간 다음 간수가 버니언 목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목사님께 다녀오시라 마라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언제든지 다녀오십시오." 주님이 허락하시면 모든 것이 확실합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주님이 알고 계시고, 주님이 인도하신다면,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행복해 집니다. 형통해집니다.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어떤 결정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주님께 묻고, 주님의 허락을 받고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니”라고 했습니다. 왜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 남쪽 끝을 말합니다. 브엘세바를 지나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국경을 넘게 됩니다.
요셉의 초청으로 이삿짐은 다 쌓았습니다. 정든 헤브론을 출발하여 브엘세바까지 왔습니다. 이제 야곱은 국경을 넘기 전에 최종적으로 과연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뜻이 아닌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야곱의 마음은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절에 보면, 하나님이 야곱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 중에 “야곱아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까지 굉장한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요셉만 생각하면 두려움 보다는 기쁨과 즐거움, 설렘, 보고픔, 그리움이 야곱의 마음을 설레일 것 같은데 실제 야곱의 마음은 두려움이 컸습니다. 호사다마라는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겪은 삶의 지혜입니다. 야곱에게 기쁨은 잠깐이었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자신도 벧엘 언약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 20년 타향살이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 가나안 땅을 떠나면, 자신의 생전에는 돌아올 수 없다는 위기감 마저 들었습니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나야 가나안 땅에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단순히 애굽을 몇 일 방문하여 관광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근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5년, 그 이상을 애굽에서 정착하여 살아야 하는데 있어서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는 일이 나옵니다. 26장을 보면 이삭이 애굽행을 포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46장에 야곱이 애굽에 갑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애굽 행 가부에 대한 공통적인 사항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근입니다. 고난이 왔습니다. 즉 삶의 환경과 조건이 바뀐 것입니다.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이런 고난 앞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결정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오자 곧장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내려갈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온전히 자기의 생각과 판단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부인을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생명까지 위협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로 구사일생이 되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가나안 땅에 찾아온 기근으로 이삭도 애굽에 내려가려고 그랄에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로 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삭에게 그 해 농사를 백배나 얻게 하셨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게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삭이 기도해서 응답받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순종하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다릅니다. 야곱은 적극적입니다. 애굽 행을 앞두고,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야곱은 이미 오래전에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성경은 희생 제사를 드리며 기도하는 야곱을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개인보다는 씨족 공동체, 멀지 않아 민족 공동체의 이름이 됩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성도라는 이름도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성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이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야곱의 브엘세바 희생 제사는 최종 점검이다.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 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전직 대통령을 참배합니다. 왜 참배합니까?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뜻을 품었음을 보여주고, 다짐하기 위해섭니다. 사인의 중대성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제가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안의 중대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백성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는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그러니 하나님 저에게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응답하여 지혜와 명철을 주셨고, 솔로몬이 구하지 않았던 부귀영화, 장수까지 허락했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횃불언약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이 객이 되어 그들을 400년 동안 섬기고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 후에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너는 장수하다가 죽을 것이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가나안 땅에 돌아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 언약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브엘세바 제단은 예언의 성취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깊은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응답했습니까? 2절을 보면 그 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주는 의미는 희생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응답은 오지 않고, 밤이 시작될 때에 야곱의 두려움은 시간이 갈 수도록 더 중폭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소망도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가? 이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언약의 때가 지금인가?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응답하셨습니다.
3-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모든 고민을 말씀으로 다 해결줍니다. 첫째, 애굽에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둘째,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셋째,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다. 여기서 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네 번째 약속 때문입니다. 요셉의 손에 장사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모든 자손을 다 데리고 브엘세바를 떠나 애굽에 가게 됩니다.
5절을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 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라고 했습니다.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보낸 수레를 어디서부터 탔습니까? 살고 있던 곳 헤브론에서부터 타고 왔겠습니까? 아니면 브엘세바부터입니다.
45:27절을 보면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헤브론을 출발할 때부터 요셉이 보낸 수레를 탔는지 안 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공식적으로 브엘세바에서 처음 탄 것으로 나옵니다.
수레를 언제, 공식적으로 탔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수레는 애굽 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애굽 행 열차를 탔느냐 안 탔느냐입니다. 완행이 아니라 직행 열차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허락을 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애굽으로 가는 직행 열차를 탈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야곱이 이 수레를 타지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자식들은 야곱에게 아버지 낙타를 타지 마시고, 더 좋은 수레에 타시지요라고 할 때, 아니다. 요셉을 만나러 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기근을 피해 살 곳이 있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지만, 가나안 땅을 떠나는 일은 좀 더 고민할 문제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3일 길이 걸린 것을 생각할 때 헤브론에서 브엘세바까지 비슷한 거리라고 생각하면 야곱은 3일 길을 가족들을 데리고 가면서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런 신앙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데, 요셉이 보낸 수레에 앉아 고민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갈등없이 애굽에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하나님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요 축복이라고 감사하게 된다.
이런 마음이라면 브엘세바의 제사는 두려움의 제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요, 기쁨의 제사요, 축복의 제사일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야 되는가? 떠나지 말아야 하는가? 하나님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저 수레에 앉아서 요셉이 자기에게 할 효도만 생각할 것입니다. 요셉 총리와 함께 애굽에서 누릴 영화만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매 순간, 어떤 선택이 있을 때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뜻을 위해서 땀이 핏방울이 되는 것 처럼 기도했습니다. 몸부림 쳤습니다.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9절에서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했습니다(막3:35).
지금 어떤 고민이 있습니까?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작성일:2017-02-21 11:33:22 116.255.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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