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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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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을 가지자(요한복음 20:19-29)

닉네임
설맥
등록일
2017-04-20 11:28:35
조회수
655
부활 신앙을 가지자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이다)
요한복음 20:19-29절

터키 선교사의 전도
터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합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라고 하자. 그들은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선교사님은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멧을 찾아가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를 찾아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시기를 원합니다.
부활을 증거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와서 고난을 받고,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죽었습니다. 무덤에 장사 된지 삼일 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날까? 부활에 대한 예언 성취를 믿는 자가 없었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온 여자들도 죽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수를 뿌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무덤이 비워있음을 목격했고, 이 사실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도 빈 무덤만 보았다. 그들은 죽은 예수, 행방불명이 된 시체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라고 했습니다. 왜 저녁에 오셨는가가 궁금합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십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입니다. 이 두 제자는 부활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들과 동행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시편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예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식사할 때에 예수님이 축사하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을 설명할 때에 마음의 뜨거웠던 것을 기억했고,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난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저녁에 오신 것은 제자들 사이에서 부활에 대한 고민과 충분한 논의를 한 이후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문들이 다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셨다. 문들은 모든 문들입니다. 사람이 열어주지 않고는 들어올 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들이 모든 문들을 굳게 닫은 이유는 유대인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죽은 예수의 시체가 없어짐으로 임할 핍박입니다. 예수님이 죽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둑질 해 간 다음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속일 것을 염려하여 로마의 경비병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자 경비병들은 이 사실을 대제사장에게 알리자 그들은 경비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총독에게는 보고하지 말고,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예수의 시체를 도둑질해갔다고 하라고 하자 그대로 했습니다. 이 거짓된 보고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를 제자들은 멀지 않아 자기들에게 임한 핍박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선포함으로 제자들이 겪고 있는 두려움을 해소하며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못에 박힌 손,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 하자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
예수님은 다시 한번 평강을 선포하시면서 부활하신 이후 첫 번째로 제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 번째니까 중요하겠지요. 21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간 목적은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그들을 세상에 부활의 증인으로 파송하기 위해섭니다.
이 명령은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 하신 지상명령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The great commission’인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 사함의 권세
예수님은 이 사명을 위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십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해야 되는지, 이 권세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유하면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2:10). 누가복음 24:47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받은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죄 사함의 권세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은 어떻게 해서 가능해졌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이기신 부활에 근거합니다. 죄의 결과인 사망 권세를 생명의 능력으로 이기셨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55-57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부활 확신의 어려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러 갔는지, 아니며 두려워서 딴 곳으로 잠시 피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때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넣으며, 손으로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간에 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과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24:36절 이하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놀라고 무서워하면서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며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는 것과 같이 나는 있다. 그러자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없느냐 하니까 제자들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그것을 잡수셨습니다. 신기한 부활의 몸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의 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20절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계속 의심했습니다. 한번 본다고 의심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심이라는 단어는 ‘몹시 괴롭히는 생각’을 말합니다. 숙고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마의 의심으로 예수님은 8일 만에 다시 찾아십니다. 8일은 부활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안식 후 첫날이 8일입니다. 8일 후 다시 찾아오셔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면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라”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1차 나타나신 후 8일 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자신들이 본 일에 대해서, 보지 못한 도마와 함께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는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신 것은 도마 한 개임에게만 한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도마만 야단 치고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를 포함해서 부활에 회의적인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부활의 증거를 직접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뒷장인 21장을 보면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일곱 제자가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간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사명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으라고 했는데도, 죄 사함의 권세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 가운데 나간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으러 바닷가로 갔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부활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제자들이 부활의 완전한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입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비로서 참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증인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습니까? 물론 그 믿음이 분명치 않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의심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무관심보다는 나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본다고 믿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도 2,000년 전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았다고 해도, 여전히 의심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믿는 것은 인간의 상식과 경험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에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계시로 가능했음을 말씀했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신앙은 창조의 신앙입니다. 말씀 신앙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의심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논증합니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우리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복 받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성령 충만하여 우리가 받은 권세, 죄 사함의 권세, 복음을 전파함으로 누구든지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작성일:2017-04-20 11:28:35 116.255.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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