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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보복의 법칙(마태복음 5:38-42)

닉네임
설맥
등록일
2017-04-25 10:54:36
조회수
1244
보복의 법칙
(선으로 악을 이기자)
마태복음 5:38-42

곰 사냥 법
사냥꾼들이 곰을 잡는 방법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곰이 잘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그 곳을 지나던 곰이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치게 됩니다. 머리를 부딪힌 곰은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은 것이 화가 나서 돌덩이를 이마로 들이받습니다. 그러면 돌덩이는 저만큼 밀려갔다가 다시 곰을 향하여 밀려와 곰을 들이받습니다. 그러면 더 많이 화가 난 곰이 더 세게 돌덩이를 들이받습니다. 곰의 반복되는 무차별한 공격은 그 도가 더 심해집니다. 결국 곰은 그 어리석은 힘겨루기로 머리가 터지고 녹초가 되어 힘을 다 소모해버립니다. 그때 숨어서 지켜보던 사냥꾼들이 와서 곰을 끌고 간다고 합니다.
보복의 심리
요즘 뉴스에 보복 운전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끼어들기를 했다는 이유로 화를 참지 못하고, 경적으로 울리며, 차를 가로 막고 망치로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살인까지 합니다. 층간 소음 문제도 보통이 아닙니다. 멀리 있는 사람도 아니고 바로 위아래 층인 이웃인데도 불구하고, 다투다가 엄청난 비극도 발생합니다.
왜 이렇게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자신의 인격, 소유, 자유가 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를 당했으니 당신도 당해야 한다는 보복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심리란 즉각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으니 나도 즉각적으로 욕을 해야 하고, 내 것을 빼앗겼으니 나도 즉각적으로 당신의 것을 빼앗고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이 납니다. 내 몸이 상했으니 당신도 나처럼 다쳐봐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합니다.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악순환으로 갑니다. 욕을 먹었을 때에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주먹에 막았을 때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억울함을 참지 못해 밤새도록 운다고 해도 누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거나 보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큰 상처로 쌓이게 됩니다.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이면 그 자체가 불행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별 일도 아닌데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보복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보복의 원리
예수님은 구약의 보복의 법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38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다 들었으나” 이 말씀은 출애굽기 21:23-25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4:20절에서는 상해 보복의 원칙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고 했고, 신명기 19:21절에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보복의 법칙을 율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보복의 법칙을 ‘타리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타리오란 동태, 동량,동해, 등가의 복수법입니다. 이런 타리오의 법칙은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있고, 이슬람의 코란경에도 비슷한 정의 구현의 법칙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 법을 문자적으로 엄격히 지킵니다. 법을 어기면 눈을 뽑고, 팔을 자릅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분심과 보복심을 주셨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등가, 동해로 보복해야 합니다. 받은 것만큼 돌려주어야 합니다. 동량, 동해, 반드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만 보복해야 합니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 선을 넘어가면 정의가 아닙니다.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작품인 베니스 상인에서 주인공 안토니오는 친구의 결혼을 자금을 위해 고리대금 업자인 샤일록에게 빚을 집니다. 배가 파산함으로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혔고, 이것을 알게된 포샤는 자기 남편에게 말해 빚을 갚는다고 했지만 샤일록은 돈은 필요없고, 안토니오가 계약한 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도려내겠다고 합니다. 그때 포샤는 재판관으로 변장을 해서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살을 베되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리면 베니스의 법대로 당신의 토지와 재산을 국가에 몰수된다는 엄포를 놓습니다. 샤일록은 어쩔수 없이 안토니오의 살을 베는 것을 포기함으로 안토니오는 자유를 얻습니다.
보복의 악순환
인간의 보복은 항상 정의의 범위를 넘어갑니다. 필요 이상으로 보복하고, 때론 엉뚱한 사람에게 보복합니다. 부부 싸움하다가 자녀까지 화를 당합니다. 묻지마 폭력, 묻지마 살인을 합니다. 인간의 분노 조절 장치는 망가져서 과잉 보복을 합니다. 과잉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남깁니다. 이것이 보복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입니다.
보복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
하나님이 보복의 법칙을 주신 것은 보복 자체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웃을 사랑해서 이웃의 인격이나 생명,소유, 명예, 자유를 보호할 것을 규정한 것입니다. 즉 보복의 법칙은 또 다른 이웃 사랑의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래의 율법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마 5: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하려 함입니다. 완전이란 의미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채우다’, ‘충만하다’,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부족했는데, 그 부족한 부분을 예수님이 가득 채워서, 충만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참된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문자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고 그 뜻을 지키려고 한다면 세상은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미움과 증오, 보복으로만 가득찰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세 가지 사례를 제시합니다. 말씀의 핵심은 이제 부터는 보복의 법칙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보복의 법칙을 버리라는 말은 인간이 이 법을 지킬 만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끼리 정의롭게 살려하지 말고 사랑으로 살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세 가지 문제는 인격 모독에 대한 문제, 소유 침해의 문제, 자유 억압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 인격 모독의 문제입니다.
39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입니다. 어느 때에 네 오른편 뺨을 맞았을 때입니다.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방의 손등으로 맞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손등 맞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모독했다는 의미합니다. 그냥 맞아도 기분이 상한데, 손등으로 맞았으니 그 사람이 당하는 모욕감, 굴욕감은 참을 수 없습니다. 명예 훼손이라도 고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등으로 때린 사람을 악한 자라고 규정하고, 보복하지 말고, 왼편까지 돌려대라고 말씀합니다.
심리란 즉각적인 반응인데, 보복의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왼편까지 때리라고 반응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생각의 변화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원수입니다. 원수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절대로 보복의 생각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더 큰 화만 자초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말씀합니다. 레위기 19:18절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54:5절을 보면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로마서 12:19절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소유 침해의 문제입니다.
40절입니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입니다. 고발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39절에서는 악한 자입니다. 내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내 것을 빼앗으려고 고발합니다. 예수님은 겉옷 까지 주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옷은 속옷과 겉옷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발하는 자가 속옷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부자들, 고발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골육까지 다 짜서 마침내 속옷까지 빼앗으려고 합니다. 냄새나는 속옷까지 빼앗으려고 소송까지 합니다. 겉옷이 아니라 속옷을 요구하는 것은 유대인의 법에는 겉옷을 압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겉옷은 이불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2:26절에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속옷 구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말합니다. 겉옷까지 주면 벌거숭이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벌거벗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이사야 20:1-6절을 보면 이사야는 3년 동안 벌거숭이로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예수님은 속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어 벌거숭이가 되라는 의미는 부자들의 죄를 만 천하에 드러내려고 하는 의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가진 자들의 만행이 얼마나 극악한가를 세상과 하나님 앞에 고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유 억압의 문제입니다.
41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고 합니다. 오리라는 밀리온이라는 말로 천보를 의미합니다. 십리는 듀오라는 말입니다. 듀엣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천의 둘, 2천보를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강제 동원권이 있어서 유대인의 몸을 강제로 부려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구레네 시몬이 구경하다가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도 합니다.
국가나 가정, 직장, 학교 등 크고 작은 권세에서 오는 권력, 그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자유가 강제로 제한을 당하고 인권이 침해를 당할 때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자.
42절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말씀한 세 가지 사례에 대한 결론입니다. 인격의 모독, 소유의 침해, 신체 자유의 억압 문제에 대해서 성도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4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씀의 의미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보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은 선을 채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7절에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21절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선이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내가 가진 인격이 모욕을 받고, 나의 소유가 침해를 당하고, 나의 신체의 자유가 억업을 당했습니다.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의 법칙을 앞세워 산다면 또 다른 보복이 생길 것입니다.
저는 42절을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내게 구하는 자는 악한 자, 고발하는 자, 신체를 억압하는 자라고 볼 때, 현실적으로 그들은 갑이고 나는 을입니다. 갑을 관계를 바꾸어서 내가 갑, 을이라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그들은 나의 원수이지만 그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그들에게 거절하지 말고 주는 것입니다. 주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내가 가진 것은 없습니다. 다 빼앗겼습니다. 현실적으로 내가 가진 것은 빈 몸뚱이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향한 선한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하나님의 사랑까지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주신 사랑으로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 선으로 악으로 이기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작성일:2017-04-25 10:54:36 116.255.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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