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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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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은 율법과 선지자이다(마태복음 7:7-12)

닉네임
설맥
등록일
2017-05-04 09:19:37
조회수
1576
대접은 율법과 선지자이다.
마태복음 7:7-12

부모 대접
명심보감에 그대가 새벽에 시장에 들어가 밀가루 떡과 쌀 떡을 사는 것을 보았는데, 부모님께 드린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준다는 말만 있네, 부모님은 맛도 보지 않으셨는데 아이들이 먼저 배부르니,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에 비하지 못하리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떡을 살 돈을 내어 흰머리에 (사실) 세월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봉양하라.
널 낳아 키운 부모를 대접하고, 봉양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는 일,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첫 번째 계명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잘 대접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대접의 의미
본문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수훈 중에 있는 대접에 관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대접하는 일은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합니다.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공동번역에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국어 사전에서 대접이란 무엇입니까? 1. 음식을 차려 손님을 모심이다. 2. 인격이나 지위, 또는 자격에 걸맞게 대함이다. 3. 예우를 갖춰 잘 대함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대접이라는 헬라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낯선 사람이나 나그네를 사랑하여 환대하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2:13절 “먼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히브리서 13:2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실제로 아브라함과 롯이 천사를 대접한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두 번째는 기르다, 먹이다, 양육하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5:37절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천국과 지옥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누가복음 6:31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헬라어로 ‘델로’라는 말인데 남이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이 대접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사용된 대접은 ‘포이에오’입니다. 이 말은 만들다, 제조하다. 산출하다. 창조하다, 활동하다, 행하다. 완수하다, 실천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대접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인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일, 배고픈 자를 먹이고 양육하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해야 하는 의미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대접은 제조되고, 산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접이란 대접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만들어 지고 산출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접할 때에 그 대접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 내용에 대해서 “이것은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대접에 대한 말씀으로 사용한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마태복음 22:34-40절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고 질문했다. 이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다”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이 이 두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습니다. 온 율법은 모세의 율법을 말하고, 선지자란 하나님의 대언자들의 말씀을 뜻합니다. 율법이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말합니다.
강령이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강령이란 어떤 단체의 기본 입장, 방침, 규범 등을 밝힌 것을 말합니다. 또는 어떤 운동의 순서나 전략 따위를 요약하여 열거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대접하는 일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기본 입장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강령’은 영어로 ‘Hang’이라는 뜻입니다. hang은 ‘매달려 있다’입니다. 매달려 있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이 잡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강령입니다. 목숨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철봉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한 손에는 하나님 사랑, 다른 한 손에는 이웃 사랑이라는 이 두 계명에 우리의 삶이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직역해 보면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이 두 계명에 매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이 두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라는 단어를 병행적인 의미로 본문 12절에서 대접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강령이라는 말은 빠져있지만 율법이요 선지자는 대접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대접은 실천하는 사랑
대접이라는 계명은 무엇과 동일합니까? 하나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과 동일합니다. 결국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최고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비유가 나옵니다. 강도만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 앞에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제사장과 레위인, 또 다른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들로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실제로 강도만난 사람을 대접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 대접이요, 이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기도하는 이유
7-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문에서는 기도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구하고, 무엇을 위해 찾고, 무엇을 위해 문을 두드려야 합니까?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떡을 달라는 아들에 어느 아비가 돌을 주며, 또 생선을 달라는 사람에게 뱀을 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듯이, 하물며 하늘의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구하면 반드시 이루이지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100% 응답되는 것이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기도입니까? 예수님은 구하는 자, 찾는 자, 두드리는 자는 반드시 받을 것이고, 찾아 낼 것이고, 열린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가? 야고보서 4:3절을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다고 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기도는 남을 대접하려고 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대접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 같아도 길이 열립니다.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대접을 잘 하려면
이렇게 대접하려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첫째, 나 자신이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잘 대접하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믿는 성도끼리 불러준 이름이 아니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불러준 이름입니다. 이들은 예수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대접함으로 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은 말씀이 들어간 곳에 역사하셔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 창조의 역사를 일으킴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복을 받고, 우리 가정이 복을 받으려면 내 자심이 복음적인 삶을 살 때에 내가 누군가를 대접하게 되고, 그 대접 가운데 복음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됩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가장 필요한 것을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의 시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인식할 때부터 할 수 있습니다. 잘 대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육적, 영적 필요를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고, 여자를 만들 때에 돕는 배필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와가 남편에게만 돕는 배필이 아니라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간에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대접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대접하여 구원과 영생을 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십자가에서 실천하셨습니다. 나는 못한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된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접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약속했습니다. 대접하려는 마음으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때 반드시 구하고, 반드시 찾고, 반드시 열린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대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목사)
작성일:2017-05-04 09:19:37 116.255.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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