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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진
''개혁주의 구원론의 중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대척점에 있는 알미니안주의 구원론의 중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아닌가?그렇다고 생각하면 무지한 것일 뿐이다.
알미나안주의에서는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한다. 은혜. 은혜가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핵심은 그 연합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성경이 그 연합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다고 하느냐 없다고 하느냐이다.
''비록 우리는 칭의와 성화를 구별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도록 포함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simul) 함께 주시며, 하나가 없이는 결코 다른 하나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도 아니며, 또한 행위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으며, 그것은 칭의에 못지않게 성화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말 장난에 불과한 소리를 분별하질 못한다.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행위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행위 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은 행위가 의롭다함을 받는 요인이라는 말이다.
둘이 동시적일 수 있나? 16세기 사람인 칼뱅은 그렇단다. 21세기를 살면서도 그렇다고? 하나님이 주신 지성이라는 선물을 땅에 쳐박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뭔가? 21세기를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16세기 신학자의 말 맹종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동시에 성화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칭의시키지 않는다(nullum ergo Christus iustificat quem non simul sanctificat).''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소자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메달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게 낫다(마 18:6)고 말씀하셨다. 빼도박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그보다 심한 보응은 뭔가? 하나밖에 없다. 이어서 말씀하신 지옥 불이다.
예수님이 믿는 소자라고 하셨으니 진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진짜 믿지 않은 사람을 실족케 했다? 말이 안 된다. 그런 상태라면 실족하게 하는 것을 말할 이유도 없다.
지옥의 심판을 초래하는 실족은 뭘까? 믿다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그 어려움으로 얼마간 교회 생활 또는 신앙 생활을 접는 것일까? 그런 것인데 지옥 불의 심판을 당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상벌이 정확하시다. 지옥 불의 보응을 초래하는 실족은 믿음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로 나가는 것이다. 지옥 불로 나가게 만들었기에 지옥 불의 보응이 임하는 것이다.
실족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상태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믿음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위 말씀에선 이 의미다.
예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에서 ''범죄하거든''은 잘못된 번역이다. ''실족하게 하거든''이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손, 발, 눈 그 무엇이든지 잘라내야 할 정도로 엄중한 죄이다. 잘라내고 지옥 불을 피하는 것이 낫다.
실족하는 자가 예수님을 믿는 자다. 믿는 자이기에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성립된다. 실족하게 하는 자는 제한이 없다. 믿는 자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정황에선 전자이겠지만.
믿는 소자라셨으니 칭의 되었음은 분명하다. 실족하게 하는 자도 그 문맥에선 다르지 않다. 칼뱅의 주장에 따르면 반드시 성화된다. 그런데 실족한다니. 실족하게 만들어 지옥 불의 보응을 받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주장을 하는 내가 얼마나 같잖겠는가? 당연히 그렇게 말씀한 예수님도 그에겐 그럴 것이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칼뱅, 칼뱅을 외치며 그의 주장을 열렬히 외치며 맹종하는 신자들, 어찌하여야 하오리이까?
칼빈주의자들은 너무나도 엄중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한 번 해본 얘기, 실현되지 않을 경고 정도로 희석시킨다. 그 결과가 뭔가? 이 땅의 교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믿는 소자를 실족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저버리는 만드는 조용기, 전병욱, 전광훈 목사나 오정현 씨 류가 당당하기만 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려는 것인가?
21세기를 살면서 그의 공과 과를 밝히는 건 필요하지요. 공은 더 심화시키고 과는 바로잡아야 하고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왜 회피하는 걸까요? 과를 밝히면 무슨 교회가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을 하는 걸까요? 입으로는 개혁주의를 외치면서요.
그냥 지금까지 해온 대로 앞으로도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결과가 뒤따를 지를 깊이 숙고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