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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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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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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수
등록일
2007-12-09 20:07:57
조회수
5414

                          

                 믿음의 통로(롬10:9-17)  

기독교의 믿음은 어떻게 얻는가? 하고 성도된 사람들도 가끔 의문을 품거나
지혜가 부족하여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루터도 믿음을 달라고 기도만 하다
가 믿음이 생기지 않아서 성경을 읽다가 특히 로마서를 읽다가 믿음이 생겼
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전파는 단순한 사회 봉사적 차원과  문화적인 것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성경진리 복음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우리가 믿음을
강하게 얻기 위해서는 어떤 통로를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까?기독교의 믿음
의 통로는 무엇입니까?어떻게 해서 믿어지는 것입니까? 믿음의 통로란 주제
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복음을 들어야 믿어집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
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
느니라』

여기 말씀의단어는 흐레마(rJh'ma)인데 로고스(lovgo")라는 말과 큰 차이는
없으나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사상이 담긴 주님의 뜻 자체를 뜻하는 말입니다.
한 번 듣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자주 듣고 많이 듣고 음미하면
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고 못 얻고의 결정적 차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일단 들어야
기회가 주어집니다. 듣지도 못한다면 구원의 입구에도 설 수 없는 형편입니
다. 그래서 구원 얻은 신자는  언제라도 많은 이에게 복음을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하나님없이
살다가 지옥불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면서 아브
라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형제 5명이 있으니 나사로를  살려서 보내서 자신이 있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답
변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눅 16:28-31『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
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
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29-31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
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
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복음을 전파하고 들어도  아무나 믿어지는 게 아닌데 듣지도 못했다면 완전
히 기회가 없는 셈이죠? 그러므로 일단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옛이나 지
금이나 메시지를 전할 자들을 세상에 두셨고 요즘같은 문화는 여러 가지 형
태로 복음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 지옥불에 갔다가 혹 세상으로 다시 살아오면 회개될 것 같아도
안된다고 했으며 오직 지상에 살아 있을 때 복음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
로 권함을 얻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죽기 전에 복음부터 들어야 합니다. 듣지도 못하고는 믿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상에 복된 것 중에 복음을 듣는다는 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살후 2:13-14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
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
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
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복음을 듣게 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는 일입니다. 알고
보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축복의 시간이요 구원의 기회입니다. 바울은 데
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택정함을 받아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
사를 마땅히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 예수께서 평소 자주 가시던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 마르다는 음식장만
으로 바빴고 마리아는 주님의 곁에서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그 때 주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둬야 합니다. 
눅 10:42『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물론 손님 대접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음식보
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식사 제공한다고 예배에 부실
하고 예배시간에 냄새가 나는 것들은 잘못입니다.그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복음을 들으러 왔다는 사람이  교회당 건물과 예배 분위기에 관심이나 있고
말씀과 사상에 대한 믿음의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오히려 모독하는 태도입니다. 어른이 말을 하는데 딴 짓하는 태도와 같습니
다. 
목사가 복음을 전하면 듣는 이는 성경에 이르기를,
살전 2: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
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
느니라』

어떻게 복음을 듣든지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성경말씀 자체와 성경 해석과 설교와 신앙인의 간증
등 여러 형식으로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
느니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세상의 학문과  고뇌를 앓는다고 쪼개지는 것
이 아니라 말씀을 들어야 심령과 골수가 쪼개어져서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
다.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차이는 인격과 도덕적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
씀을 기억하고 안 하고의 차입니다. 
같이 죄를 짓고 베드로는 말씀이 기억났다고 했고 유다는 그런 말이 없습니
다.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
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요5: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
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늘도 하나님의 복음을 듣는 자는 영혼이 살아나고 삶의 현장이 살아 움직
이고 사업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따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 믿음의 통로는 믿음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즉 윤리종교나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니
란 말입니다. 계시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특이한 정신세계이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지혜의 패턴입니다. 우리 사람은 생각하기에 선행을 하거나 도를 닦거나 아
니면 연구를 많이 해야 합리적으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래서 신뢰를 하
는 그런 과정을 밟는 것이 기독교 사상에도 통할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미 주어진 계시의 말씀,언약의 축복에 대한 메시지를 무조건 그
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과연 옳은 말인가?인정될
말인가?하는 것쯤은 의심하거나 평가야 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베뢰아 사람
들처럼 신사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
파하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행 17:11-12『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
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들어도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는 이유는, 복음에 대한 간
절함도 복종도 신뢰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복음이라고 해도 여러 유형의 사상이 있습니다. 
들어야 할 바른 복음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1)믿음의 기초로 예수의 사활(死活)을 믿습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나의 영생을 위해 먼저 부활하시므로 죽음
을 이기신 생명의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예수를 종교적 선생으로 믿는 도올
김용옥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믿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
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
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믿음의 방편은 마음으로 믿습니다

카톨릭의 의식적 믿음과 신비주의 등, 종교적이고 우상적인 것으로 믿는 것
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다. 교회건물이나 목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
로 복음의 언약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정신적이고 영적입니다. 
사회 문화가 아닙니다. 교회 생활에 너무 인간적으로 연합하려는 것부터 챙
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요히 하나님을 찾는 정신적 운동이 우선입니
다.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세례식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을 가르치면서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
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예배 분위기도 너무 시끄럽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꼭 그렇게 난리
를 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가슴 치며 애통하고 춤추며 노래도 하
겠지만 날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주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거룩한 영감이 깊이 녹아지
는 영적인 숙고와 고요한 정신세계를 감동 받아야 합니다.사도바울은 3층천
하늘로 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고후 12:2-4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
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
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한 사람을 아노니, 하는 말은 사실은 자기 자신을 뜻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당을 다닌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세례식마저 형식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서 상이란 구원과 세상으로부터 은총을 얻는 모든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믿음으로  가지고 오래 전부터 잃어버린 모든
권한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잃어버린 영적
은혜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건강과 물질과 명예까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 모두 다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내용입니다. 

3)고백하므로 믿음을 확증합니다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공적으로 시인하고 산다는 것은  이제 사회적으로 자긴 신분을 표
출하는 것이며 이 태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십니다. 믿음이 없이
고하는 것도 허사입니다. 
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오직 믿음을 가지고 확신하므로 그 신뢰하는 바를 입으로 고하는 것은 믿음
을 확증하는 단계입니다.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누구라고
말하느냐 물으셨고  제자들에게도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제자 베드로는 아주
정확하게 고백했습니다. 
마 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
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신앙생활은 마음으로 믿고 또한  고백을 바로 하므로 온전한 성도의 정체성
을 발휘합니다. 말만하고  행위가 없는 것도 문제이고 행동은 그럴싸하지만
말이 틀리면 이것은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사상적 본질이 성경 진리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귀한 구원의  메시지를 듣는다는 자체와 믿어지는
것이 모두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
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듣는 것도 은혜요 믿어지는 것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역사임을 시인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이제 받아야 할 모든 이에게
전파하고 증거하기 위해 힘쓰는 일만큼 귀중한 일이 또 없습니다. 
아무쪼록 복음전파의 사역에 목숨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셔서 주님 오시
는 날 상급 받고 기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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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버신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 nulserom  
작성일:2007-12-09 20:07:57 121.144.4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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