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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해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demuth elohim)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tseleme elohim)과 어떻게 다릅니까?(창 1:26-27).

닉네임
PAUL
등록일
2018-08-15 08:43:06
조회수
2308
[질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demuth elohim)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tselem elohim)과 어떻게 다릅니까?(창 1:26-27).

[난제 이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의미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완벽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1) 영혼에만 관련되는 것인지? (2) 육신에도 관련되는 것인지? (3) 영육 간 모두에게 관련되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혼(spirit, soul)에만 관련되었다면, 인간의 육신(flesh, body)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육신에도 관련되었다면 하나님은 영이신데(요 4:24)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육신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인지? 이 모두가 대단히 난해한 내용들입니다.

[해석방법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내용은 형이상학적인 영적인 존재와 형이하학적인 육적인 존재로 대단히 고상한 존재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성이나 지적, 감각적인 인지능력으로서는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을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인간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완전한 전인적인 인간성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성과 인간의 영성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성은 이성이나 지성을 통하여 대략 이해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영성과 도덕성은 성경을 통하여 믿음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과 해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정의로 하나님의 “모양”과 비교하여 분석하고, 어원학적으로 두 용어에 대한 정의와 성경적인 증거, 그리고 성서신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의 개념에 대한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 학자들의 견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의미는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언급은 이방문헌에서도 발견되며, 특히 성경에 보면 바울도 헬라 시인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을 “신의 소생”(the offspring of God)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행 17:22-31). 이것은 바울이 특별계시 차원이 아니라 일반계시 차원에서 아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religiosity)에 호소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교적인 차원(the point of contact for mission)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비평가들이 이러한 성경기록을 오용하고, 특히 그들이 바벨론 신화(Babylonian mythology)에서 근거를 찾기 위한 지론(pet theory)을 증명하다 문서 P(the document P)와 사람 P(the person P)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신・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의 관념은 고전 문학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이교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성경에서 과장된 교리라고 잘 못 알고 있습니다(ICC, Genesis p.31).

초대교회 교부들 중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영적 특성들에서 찾는가 하면(오리겐,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신체적인 특성에까지 확대하여 하나님의 “형상”(image)을 영적 특성에서 그리고 “모양”(likeness)을 신체적 특징에서 찾기도 했습니다(이레내우스, 터툴리안).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형상”은 인간다운 특성을, 그리고 “모양”은 계발과 상실의 가능성이 있는 자질로 보았습니다(cf. 아타나시우스, 암브로스, 어거스틴). 펠라기우스 파(Pelagians)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은 이성(reason)으로서 지성이 있어서 판단능력을 통한 선악을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배력(dominion)으로 보았습니다. 스콜라신학자들(Scholastics)은 “형상”은 이성과 지적 능력(자유)을 포함하며, “모양”은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자들은 “형상”과 “모양”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원래 상태의 인간의 본질 즉 하나님의 형상 안에 원의(original righteousness)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루터는 “형상”을 인간의 천부적인 재능(natural endowments)을 무시하고,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완전히 상실된 원의”(the original righteousness which was completely lost) 안에서만 찾았고, 칼빈(Calvin)은 포괄적인 인간의 본성(nature)에서, 곧 아담에게 부여된 완전성에서 찾았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은 천부적인 재능(natural endowment)과 인간의 원의의 영적 자질(the spiritual qualities of original righteousness)들, 지(知, knowledge), 성(聖, holiness), 의(義, righteousness) 등을 포함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본성으로서 인간의 본질 그 자체에 속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2. 정의 (“형상”과 “모양”)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l,x, εἰκὠν, image)과 하나님의 “모양”(teWmd, ὁμοίωσις, likeness)으로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 관하여 학자들 중에는 이 두 용어의 의미를 구별해서 이해하기도합니다. 말하자면, “형상”(image)은 본질(substance)로 존재하는 것이고, “모양”(likeness)은 어떤 것의 우연들(accidents)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형상”(image)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부여해주신 “천부적 재능들”(natural endowments)인 반면에, “모양”(likeness)은 하나님께서 주신 무상의 “재능들”(gifts, talents)이라고 했습니다(Lyra).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구성요소가 형이상학적인(metaphysical) 면과 형이하학적(physical) 면이 있다는 것, 즉 영적인 면(spiritual aspect)과 육적인 면(physical aspect)이 있다는 것에 착안한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 표현을 중언법(hendiadys)으로 이해하여 이 두 부분이 혼합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혼합이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는 질이 다른 이 두 면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두 부분이면서도 둘이 아니고 하나이니,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사람(전인: the whole man)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입장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 안에 있는 삼위일체성의 기능적 원리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열거한 영혼의 기능들 즉 지성(intellect), 기억력(memory), 의지(will)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적 유추정의를 영혼의 재능들(the facilities of soul)로 일면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에 관해서는 이 기묘한 설명보다는 좀 더 건전하고 확고하게 정의해야 한다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별하는 것을 반대하고, 오히려 이 두 용어들의 용법에 따라 하나의 뜻으로 보았습니다(Calvin Commentary Genesis p.93).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외적인 면에서 (1) 위를 바라보는 인간의 얼굴, (2) 다양한 얼굴 표정의 능력, (3) 인간의 부끄러울 때의 수치감의 표정, (4) 짐승과 달리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착안하여 육체적 유사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인 면에서 (1) 인간의 내적 조성의 물리적인 면에서 불멸성, (2) 자아의식과 이성, (3) 지적인 면에서 선악간의 분별력과 의지의 자유, 양심, 그리고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즉 도덕적 능력의 올바른 사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Koenig, TAT, p.226 ff). 한 마디로 말하면 외적, 내적으로 인간에게 투영된 하나님의 완전한 공유속성입니다.

3. 어원학적 접근
하나님의 “형상”(image)은 히브리어로 “첼렘”(!l,x, tselem)으로 “새기다”(to carve) 혹은 “자르다”(to cut off)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말과 같이 인간의 하나님과의 육체적인 유사성(physical similarity)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원으로 보아 적어도 구체적인 유사성(concrete similarity)을 간과할 수도 없는 것인 바, 왜냐하면, “모양”(teWmd, demuth)이 이론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 좀 더 유사성에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Barne's Notes Genesis, p.88). 일반적으로 원형적인 하나님의 형상(archetype)이 표상적인 인간의 형상(ectype)으로 복사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것은 인간이 일면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를 표상적 복사본(ectype)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문에 “형상을 따라”(betselemu)의 전치사 “Be”(be)와 “모양대로”(kedemuthnu)의 전치사 “Ke”(ke)에 근거하여 구별된 용어로 보아 “형상”과 “모양”을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하나, 사실 전치사 “Ke”(in)와 “Be”(after)는 두 단어 사이에서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창 5:3(after image)에서 사용된 전치사(after)가 창 1:26(in the image)에서는 전치사(in)로 바뀌어 사용되었고, 골 3:10에서도 “형상을 좇아”(after image)로 전치사가 뒤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성경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것으로 같은 의미의 용어에 대한 뉘앙스를 띤(nuanced) 표현의 기법입니다.

4. 성경적 증거
물론 성경의 본문들을 살펴보면, 콘텍스트(context)에 따라 “형상”과 “모양”을 분리해서 말하기도 하고, 또 한 문구로 말하기도 하고, 교호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또 설명을 위한 수식어로 말하기도 합니다. 우선 창 1:26에 보면, “형상”에서 “우리의 형상으로”(in Our image)로 형용사구로 사용했고, “모양”에서 “우리의 모양을 따라”(according to Our Likeness)로 부사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형상”은 영적인 측면을, “모양”은 육적인 측면의 의미가 있다고 하여 분리해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형상”과 “모양”을 하나로 보고, 1:26의 “형상”과 “모양”을 그냥 “모양”이라고만 했습니다. 창 5:1에서는 “모양”이라고만 했었던 것을 5:3에서는 “모양”을 하나로 보고 “형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 1:7에서는 “형상”의 다른 표현인 “영광”으로, 골 3:10에서는 “형상”만이, 약 3:9에서는 “형상”을 1:26의 “모양”(likeness)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형상”과 “모양”은 같은 의미로서 교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성서신학적 접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내용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창조론과 구원론의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것은 곧 인간이 하나님 가족의 일원(member)임과 동시에 만물의 영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형상을 성서신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1) 창조인간의 형상
창조인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창 1:26). 이 부분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원래적 형상”(original imag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죄에 오염되지 않는 상태의 순수한 하나님의 형상이 복사된 형상(ectypal image)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에 관하여 벌코프(Louis Berkhof)는 (1) 하나님 안에 있는 원형적인 형상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인간 안에서 모형적인 형상이 된 것이고, (2)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로 지식(골 3:10)과 의와 거룩(엡 4:24)을 내포하고 있고, (3) 자연적 본질 속에 속하는 요소들을 포함하며, (4) 영성과 (5) 불멸성까지 포함되는 것이며, (6) 인간에게 부여된 지배권(dominion)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기보다는 인간에게 위임된 직분으로 보고 영광과 명예로 보았습니다(Berkhof, Systematic Theology, pp.203-205).

성경은 이러한 상태, 즉 인간이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완전한 상태, 즉 지성과 거룩성과 의롭게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완전한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형상이 파괴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에덴동산에서의 시험의 과정이 남아 있는 상태로 이미 절대적으로 완전한 수준의 탁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각 부분에 있어서는 완전하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더 높은 수준의 완전성에 도달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순종을 통하여 더 큰 완전성과 영광에 도달할 수도 있고, 불순종으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예비적이고 잠정적인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2) 타락인간의 형상
타락한 인간의 형상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망가진 형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사라지고, 한시적으로 살아있는 그림자 형태(living shade form)만 남아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림자란 본질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본질이 사라지고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reason)이나 지성(intellect), 감성(sensibility) 그리고 도덕성(morality)과 종교성(religiosity)만이 남아있는 형상의 그림자로, 타락한 후에 잠시 동안(살아있는 동안)만 남아 있는 일종의 산 형식(living form)과 같은 것이어서 본질이 없는 형식으로는 실체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이와 같은 인간의 본질 자체의 속한 형상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망가지긴 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에 속하는 영혼이 있기에 그 영혼이 타락은 했지만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의미에 있어서 형상은 상실될 수 없는데, 형상이 상실되면, 인간은 인간으로 남을 수 없고 단지 짐승과 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는 것은 짐승과 달리 인간의 본성이 타락되었고 손상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란 본래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불멸(immortality)의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이는 전인적인 인간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영혼불멸(immortality of soul)을 말할 때에 반드시 주의할 것은 “죽음”(death, mortality)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논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의 영혼이란 영생할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중생으로 다시 영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멸망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영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자의 인간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비록 완전치는 않지만, 지성과 감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타락으로 인하여 완전히 소실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타락 후에도 인간이라는 사실로 입증됩니다. 비록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지만, 타락 후에도 여전히 영적인 상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립니다(창 9:8; 고전 11:7; 약 3:9). 물론 타락한 이후에는 이러한 기능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이르지는 못합니다.

(3) 부활인간의 형상
부활인간의 형상은 한 마디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원래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다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의 주체가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이요, 이것이 곧 부활인간의 형상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상실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의 형상의 회복을 통하여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통하여 성취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요, 우리 안에 이루어야 할 형상으로 바울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갈 4:19).

인간의 부활형상은 믿음을 통하여 성령으로 거듭남(regeneration)과 육신의 죽음을 통과한 후, 주 예수의 날에 부활의 영광에 오를 때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형상은 창조인간의 형상과 달리, 다시는 타락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완성된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형상의 인간은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는 사망권세를 이긴 몸으로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된 부활의 몸입니다(고후 5:1-4).

(4) 주님을 통해 보인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은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도마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요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우리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배경으로 하는 화육하신 그리스도의 형상(Christ's image)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연계해서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구약에서는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이라고 하고, 신약에서는 실체적이며, 구체적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사건(incarnation)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와 같이 인간의 육신에까지 투영된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의 존재에 주입되고 투영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할 때에 첫째로, 인간의 영혼에 본래부터 주입된 하나님의 형상인 “지”(intelligence), “성”(holiness), “의”(righteousness)의 본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의 신체에까지 투영된 하나님의 영광(glory)과 명예(favor), 그리고 지배권(dominion)에 이르기까지 전인적 인간(the whole man)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구성요소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완전히 상실된다면, 인간으로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육 간에 침투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 상실되었다 하더라고, 인간의 영과 육이라는 살아있는 형태(living form)가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어 소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 속에 주입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 타락으로 상실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영혼과 육신에 투영되어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잔영으로 인하여, 불완전하나마 최소한의 작동으로 이성적,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악간의 이성적, 도덕적 판단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는 참 지식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특별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형상의 관계는 다음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창 1:26-27; 고전 11:7)

REV./DR. PAUL B JANG
revpauljang@hotmail.com
www.mission4.org / usmission4.org
작성일:2018-08-15 08:43:06 107.184.1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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