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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해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와 요한복음 1장 1절, 요한일서 1장 1절의 “태초”는 어떻게 다릅니까? 아니면 같은 시점을 의미합니까?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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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등록일
2018-12-10 15:12:34
조회수
1719
[질문]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와 요한복음 1장 1절, 요한일서 1장 1절의 “태초”는 어떻게 다릅니까? 아니면 같은 시점을 의미합니까? (보충설명)

본질적으로 성경말씀에 사용된 “태초”(tyviare, ἁρχή, beginning)라는 용어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1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이라는 출발점에서 창조세계(시간세계/역사)의 일방형(one way)의 접근방식으로 서술한 것이고, 요 1:1(cf. 요일 1:1)의 "태초"도 역시 “시간의 시작”이라는 출발점에서 “영원”에 거하시는 선제적 그리스도(말씀/로고스, 하나님)에 관한 서술로 시작해서 구속을 위한 화육하신 “시간속의”(역사속의) 그리스도에 관하여 접근하고 진행하는 양방형(round way, to and fro)으로 서술한 기술방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 1:1의 "태초"는 창조(creation)를, 요 1:1의 "태초"는 영원에 거하시는 말씀의 화육사건을 통한 구속(redemption)을 논하기 위한 언급으로 여기에서 언급한 "태초"는 “시간”(역사)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영원” 세계에까지 관련된 특수용어(성경의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 신학적인 전문용어(technical term)로 "절대성의 태초"(absolute beginning)이라고 합니다.

창 1:1의 "태초"와 요 1:1의 "태초"의 개념은 똑같이 "시간의 시작"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시간의 시작에만 계셨다는 뜻이 아니고, 영원에 계신 분으로 창조의 시점 바로 그 "태초"에 계셨다는 뜻으로, 이 견해는 어원적(etymological), 성경적(Biblical), 그리고 신학적(theological)인 고찰을 통하여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요 1:1에 헬라어로 “계셨다”(ἦν)는 단어는 미완료 형(imperfect)의 부정과거로, 자존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창세전 영원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태초라는 시간의 시점에 계셨다(ἦν)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의 시작인 태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태초가 창조되기 전에서부터 계신 분으로, 창조의 시점인 “태초” 바로 그 때(시점)에 계셨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요 1:1의 "태초"를 영원의 어느 “시점”(a point of time)으로만 이해한다면, “영원개념”(eternity)과 “시간개념”(time)을 혼동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y)과 내재성(immanence)에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태초”라는 용어자체가 어원학적으로 보면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창 1:1이나, 요 1:1의 “태초”는 똑 같이 “시간의 시작”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물론, 창 1:1의 “태초”와 요 1:1의 “태초”를 구별하여, 전자(창세기)를 “시간의 시작”으로 보고, 후자(요한복음)를 “영원의 어느 시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들이 “영원의 어느 시점”을 주장함으로 영원과 시간을 동일개념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은 시간의 무한한 연속이 아닙니다. 영원은 시간과 차원이 다른 개념입니다. 만일 요한복음 1:1의 “태초”를 영원에 속한 개념이라면, 차라리 “태초에”가 아니라, “태초전에” 혹은 “창세전에”이나 “만세전에” 아니면 “영원에” 계셨다. 라고 표현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태초에”(요 1:1)와 “태초부터”(1:1)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모두 “시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 말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으로 태초 바로 그 때에 계신 분으로 “선재하신 그리스도”(pre-existent Christ)께서(요 1:1) “화육하신 그리스도”(incarnate Christ)로(요 1:14) 이 땅위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창 1:1의 “태초”와 요 1:1의 “태초”는(요일 1:1에 연계시켜 보면) 동일하게 “시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요한일서에서 영원부터 있어 현세(역사) 속으로 화육하신 생명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기 때문에 창세전에 계실 뿐만 아니라 태초부터(창조 시부터) 지금까지 계신 예수 그리스도(생명의 말씀)라는 뜻입니다. 이 해석이 어원에서부터 성서적,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창 1:1에서 “태초”는 “창조”에, 요 1:1의 “태초”는 그리스도의 “선재”와 화육”에, 요 1:1의 “태초”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적으로 “태초”라는 개념은 분명히 “시간의 시작”(역사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목적으로 사용된 용어로 하나님의 “창조”와 선재하시며 현존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계 1:8)로 계신 분으로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영원에 거하시는 분으로 시간 속, 즉 역사 속에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ce)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 계속 -

Rev./Dr. Paul B. Jang
revpauljang@hotmail.com
www.mission4.org
www.usmission4.org
작성일:2018-12-10 15:12:34 107.184.1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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