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의학원 청소부 송양섭씨

▲송양섭 씨는 암 환자 전문병원인 '한국원자력의학원'(구 원자력병원)에서 햇수로 6년째 일하는 최고령 청소부다. 그는 쓰레기만을 치우는 청소부가 아니라 인생길 막바지의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주는 인생 선배다. (사진제공 조호진) "인도 사회에서 청소부라고 하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천민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불촉천민이긴 하지만 청소부는 이 사회에서 언제나 큰일을 한다. 만일 청소부가 없다면 거리는 잠시도 깨끗할 날이 없을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인도에서는 청소부를 '마하타르'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마하타르(mahatar)는 위대한 사람을 가리키는 마하트(mahat)의 최고 높임말이다. 실제로 이들은 매우 위대한 존재이다."(<성자가 된 청소부>의 일부) 송양섭 씨(70·서울 노원구)는 암 환자 전문병원인 '한국원자력의학원'(구 원자력병원)에서 햇수로 6년째 일하는 최고령 청소부다. 암 투병과 치료의 최전선인 이 병원에서 그는 쓰레기만을 치우는 청소부가 아니라 인생길 막바지의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주는 인생 선배다.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켜본 최승이 수간호사는 봉사하듯이 일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조호진)
오전 5시 40분가량 병원에 도착,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연구동과 병동을 오가며 간밤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한다. 암 투병으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환자들이 많기에 피와 고름이 배인 쓰레기가 적지 않지만 싫은 내색을 하거나 얼굴 찌푸리는 일은 결코 없다.

환자들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월급까지 받으며 하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칠순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받은 것도 그렇다. 그의 손을 거쳐 병동이 깨끗해지면 환자들의 마음도 환해진다. 그를 기뻐하며 반기는 병원 관계자와 환자, 가족들로 인해 토요일과 일요일도 마다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는 기도한다. 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완치(完治)의 기쁨을 달라고…. 그 또한 마흔 무렵에 사경(死境)을 헤맨 적이 있기에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안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머리숱이 거의 없는 자식 혹은 손자 같은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육신을 바꾸어줄 수 있다면 바꾸어주고 싶다.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켜본 최승이 수간호사는 봉사하듯이 일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직원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인생을 가르치는 어른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청소라는 궂은일을 기쁜 표정으로 하시는 그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다.

정년퇴직 후 청소부로 제2의 인생 출발

그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사립중고등학교 서무과(행정실)에서 근무하다 지난 1998년 정년퇴직했다. 퇴임 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 선택한 일자리가 원자력병원의 청소부다. 땀 흘려 일하되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욕되지 않게 여생을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았다.

장로이기도 한 그는 교회나 일터에서 묵묵한 편이다. 조용한 웃음과 낮은 목소리의 칠순 청소부. 병원 직원들은 그를 여느 청소부들과는 달리 대한다. 그의 전직경력과 교회 직분을 알게 된 직원들은 예의를 갖추기도 한다. 하지만 청소부의 위치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이 병원은 지난 2005년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 표창장을 수여했다. 병원 정규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비정규직원, 특히 청소부에게 표창장을 수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이 병원 시설관리팀 임정묵 씨(49)는 "병원의 궂은일을 내일처럼 하시는 어른의 모습에서 어떤 경건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면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것이 너무 고마워 용역업체 직원임에도 표창장 상신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고희 잔칫날에 시신기증 의사 밝힌 송양섭 장로

▲ 송양섭 씨는 고희 잔칫날에 수건만 선물한 것이 아니라 생명 나눔의 본을 선물하였다. (사진제공 조호진) 9월 8일은 송양섭(하름교회 장로) 씨의 조촐한 고희(古稀) 잔칫날이었다. 이날도 병원에 어김없이 출근해 소임을 다한 뒤 잔치 시간에 맞춘 그는 자녀와 친지, 교인 등 10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시신기증 의사를 밝혔다. 고희 기념으로 수건만 선물한 것이 아니라 생명 나눔의 본을 선물한 것이다. 그는 1년 전,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큰 풍파 없이 살아온 칠십 평생, 곱게 늙어가는 아내는 여전히 화사하고, 2남 2녀의 자녀들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재롱부리는 손자들은 건강하게 잘 자란다. 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다. 하지만 돌려줄 재산도 지식도 없음에 허전했다. 그래서 몸을 나누며 떠나고 싶었다. 3개월 전 아내와 가족들에게 시신기증 의사를 밝혔고, 평생 반려자이자 신앙의 동역자인 아내 이애순 씨(65· 권사)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결정에 약간 당황했다. ▲ 고희 잔칫날, 손자 손녀들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송양섭 씨.(사진제공 조호진)
막내아들 송대진 씨(35·회사원)는 "꼭 그렇게 하셔야 하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아버님은 옳다고 결정하면 결코 번복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며 "이제 아버님의 뜻을 존중해 사후처리 절차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막내아들이 내심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눈이 좋으셔서 어떤 분이 받을지 몰라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동의했다고 송양섭 씨는 귀띔했다.

그는 30여 년 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학교 근무 도중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 간 뒤에도 출혈이 계속되는 등 사경을 헤매자 병원 측은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아내 이 씨는 "병원에서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지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면서 "하늘의 도움으로 잘 살았으니 인생을 잘 마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그는 새벽마다 기도한다. '언제 하늘이 부를지 알 수 없으니 마음 정결히 하며 욕된 것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하고, 이 세상에 누를 끼친 것이 있다면 애써서 갚고 가야겠다. 하느님이 주신 몸을 소중하게 잘 사용했으니 이제 돌려드려야겠다. 죽으면 끝나는 육신, 재로 버리지 않아야겠구나! 각막은 시각장애인에게, 살은 화상 환자에게, 뼈는 필요한 환자에게 나누어주도록 해다오.'

인생 장막(帳幕)이 걷히는 날, 청소부였던 그는 진정한 '마하타르'로 불릴지도 모른다.(뉴스앤조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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