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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추억영원한 나라로 간 뒤 나의 손주들에게도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슬픈 추억

마지막 짧은 세월에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집사 임명되고

천국 가신 아버지는 평생 교직에 몸을 담으셨다.

내 어릴 때는 그야말로 박봉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추석이 되었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뭘 사주었다고 자랑질을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볼라치면 추석은 아직 멀었어... 했다.

아마 그날이 추석날이었나 보다.

아침에 꽁보리밥을 먹고 나갔더니 애들이 모두 새옷을 입고

입에는 그 맛나는 부침개나 떡을 물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다그쳤다. 그러나 엄마는 끝까지

오늘은 추석이 아니다를 되뇌었다.

지금 생각하면 못 받아서 흘렸던 내 눈물은 그냥 액체였지만

못해주어 흘렸던 어머니의 눈물은 피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권사가 된 후 남모르게 구제에 힘썼던가 보다.

   
 

 

즐거운 추억

인천에서 개척을 할 때이다.

추석 전날 부모님이 계시는 마산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엄청 많이 개통되어 있고 KTX, 고속버스 등

운송수단이 다양화 되어 있다. 그래도 고속도로는 밀리는데

당시는 추석 전날 일찍 출발해도 다음날 도착하는 일이 예사였다.

밀리는 고속도로가 너무 짜증이 나 그만 국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국도 역시 밀리기는 일반이었다.

, , , 애들 셋은 그래도 신바람이 났다.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별을 세고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지치도록 달려 다음날 마산에 도착했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녹초가 되어 잠에 떨어져 정작 추석은 어찌되었는지

비몽사몽간에 지나가고 다시 귀경하는 전쟁을 치렀던 그 옛날 일이

지금 즐겁게 떠올라 내가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명절의 전통

양가 부모님이 다 천국 가시고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전통을 세웠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무조건 가족들이 다 모인다.

추석 하루 전에 내가 사는 인천 16평의 작은 집에 손주들까지 다 모여

방방이 자고 거실에 자고 무조건 하룻밤을 함께 잔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 8시경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린다.

사회는 아들 셋, 며느리 둘에게 순번을 정해 맡겨 순서지를 만들어 오게 한다.

기도 역시 돌아가면서 한다.

그리고 설에는 부모님께 세배하고 형제들 간에 인사를 한다.

함께 식사를 하고 다과를 나누며 담소한다. 큰아들과는 신앙적 담소가 토론이 되기도 한다.

이 전통은 내가 죽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이어받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나만의 추억이 되지 않고 다 자란 후 할아버지가 영원한 나라로 간 뒤

나의 손주들에게도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람한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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