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삶을 산 김현승 시인

▲ 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

가을이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가을의 기도’. 읽을수록 가을의 기도소리는 입에서 내려와 가슴에 파고듭니다. 이 시는 김현승이라는 시인의 것입니다. 이번 새생명 축제를 알리려 교회당 바깥 벽에 내 건 현수막에 축제 내용은 없고 가을의 기도가 씌여 있습니다. 저자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살짝 한 단어를 바꾸기는 했습니다만. 김현승 시인은 1913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로 갔다가 7세 되던 해에 다시 광주 최초로 세워진 양림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광주로 돌아와 숭일학교 초등과정을 수료하는 등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으로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평양으로 간 김현승은 그 유명한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숭실대학교의 전신 숭실전문학교 문리과를 3년 다니다 1년을 남겨두고 병환으로 중퇴하고 부모님이 돌아와 정착해 계시는 광주로 내려와 몸을 추스리기도 하였습니다. 1951년부터 8년간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임종까지 모교인 숭실대학교 교수로 가르치다 지냈습니다. 19733월 하순, 차남의 결혼식을 치르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두어 달 만에 회복하자 이 때부터 그는 신앙에 몰두하였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다시 숭실대학교에 강의를 나갔다가 19754,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설교하러 섰다가 기도하는 중에 쓰러져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투철한 신앙으로 이룬 시의 세계를 누릴 수 있으면...

김현승 시인은 호남 최초의 세례교인 중 한명인 김창국 목사와 광주YWCA 초대회장을 지낸 양응모 여사 사이에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맏형도 목사였습니다. 한국선교 초기에 한의원을 했던 조부가 복음을 받아들인 믿음의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1937년 신사참배 항거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습니다. 아버지와 누이동생과 함께 김현승도 투옥돼 고문을 당했고, 누이동생은 그 일로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고문의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와중에 숭일학교에서 파면됐고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1945년 광복까지 시작(詩作) 역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인의 가슴으로 통하여 태어난 가 바로 1957년 발간된 김현승 시초에 실린 가을의 기도입니다. 너무도 간절하게 고독과 침묵 속에서 홀로 사색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기도며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간 시인의 마음을 오늘 나와 우리 성도들의 가슴에 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을에 우리 모두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모국어로 감사와 소망의 언어를 실컷 퍼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온성 가족 모두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여 생명의 언어를 들려주고, 사람을 살려내는 생산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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