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탐방]정찬수 목사, 편집장과의 특별대담에서 밝혀

 


▲ 푸른초장교회당 /담임목사 정찬수

기자가 푸른 초장교회(경기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85)를 찾았던 6일의 날씨는 춥고 흐렸지만 정찬수 담임목사(고신37회)의 얼굴엔 이제 그 흐림이 다 지나가고 맑은 웃음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대지 300평 시유지200평, 500여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100평의 아담한 교회당을 짓고 100여명의 장년교인들과 정말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정목사는 그러나 이런 행복을 위해선 많은 눈물의 세월이 있었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목회의 행복도 결코 그냥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많은 눈물과 준비의 세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눈물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응답을 체험한 담임목사의 설교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인지라 기자가 교회를 찾았을 당시에도 본당은 중보기도팀의 기도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빈손 들고 시작한 개척이었지만 3년 9개월의 짧은 기간에 푸른초장교회는 아름다운 교회당을 가진 교회로 서 있었다. 오랜 기간 개척을 해왔던 기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주위가 시골 같은 분위기에 교회당이 있는 이곳엔 공기도 맑고 깨끗해서 교인의 50%가 아직도 서울에 있지만 주일이면 아이들부터 서로 어서 가자고 졸라댈 만큼 환경도 아늑하고 조용했다. 그 분위기에 꼭 맞는 온화한 타입의 정목사와 오후를 함께 지내면서 너무나 짧은 기간에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간증을 들을 수 있어 기자는 참으로 즐거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정찬수 목사와의 인터뷰

대담자 천헌옥 목사(코람데오닷컴편집장)

         정찬수 목사(푸른초장교회 담임)

장   소 푸른초장교회 목양실

일   시 2007년 12월 6일

 

   
▲ 정찬수 목사 /초른초장교회 담임목사

천헌옥 편집장/  목사님은 북서울 교회라는 비교적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까?


정찬수 목사/
   네 교회당 건축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서울 외곽으로 조금 벗어난 지역에 교회당 부지를 마련하였는데 간다 안 간다하는 문제를 가지고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조용히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2003년 12월 말일로 사직을 한 것이죠. 13년간 목회를 했지만 저는 정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 손에는 정상적으로 계산한 퇴직금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으로는 사택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집사람의 동창들이 돈을 빌려주어서 겨우 사택을 얻을 정도였죠. 막막했습니다. 몇몇 교인들이 함께 개척하자고 했지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방학동에서 어린이 집을 하는 원장님이 어린이집 공간을 한켠을 빌려 주겠다고 해서 2004년 3월 1일에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약 17평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감사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장/  그러다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정목사/   그 17평의 작은 교회당에서 만 2년을 지냈습니다. 그 기간은 거의 날마다 강대상에 엎드려 우는 것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심지어 노회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에게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 17평도 어린이집 원장이 세를 주고 얻은 것을 우리가 사용했을 뿐인데 주인은 우리더러 50만원의 세를 달라고 해서 이중으로 세를 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가달라고 하니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2년 동안 교인들이 죽을힘을 다해 모은 돈은 2천만원, 그 돈으로 나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곳을 보여주셨습니다.


편집장/  아니 대지가 300평인데 2천만원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정목사/   아니지요.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당시 양주시는 도시계획을 하는 중이어서 대지가 있어도 건축허가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은 아파트 사이에 위치하면서 종교부지로 구분되어 있었고 건축허가까지 득하고 있었습니다. 부동산에서 땅주인을 만났을 때 제 마음은 절박한 심정으로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주인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2천만원만 계약금을 드리고 나머지는 사장님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얻어 교회당을 건축해 주십시오. 준공필이 떨어지면 그때 우리가 정리하고 이전등기를 하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은 그분은 5분 동안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허참, 교회는 지어야 겠지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계약이 이루어지고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편집장/  대략 건축일정과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 되는지요.


정목사/  2006년 2월에 계약하고 그해 6월에 완공하고 이전등기를 했습니다. 본당 70평과 부속건물 30평해서 100여평의 건축을 한 것이지요. 대지가 3억 6천만원 그리고 건축비가 2억 4천만원 해서 6억원이 소요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전등기를 하기까지 땅주인이 자기 인감을 찍고 대출받아 건축을 해 준 것이지요. 이런 일을 보면서 성도들이 감동을 받아 헌금을 시작했어요. 이전등기를 할 때까지 거의 4억에 가까운 헌금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헌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렵게 헌금을 한 상태에서 교회의 비품까지 각자가 또 헌물을 했습니다. 지금은 2억 정도의 빚이 남았지만 생각하면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편집장/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정목사님의 눈물을 받아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이곳에서 교회를 시작할 때 상황을 조금 더 들려주시겠습니까?


정목사/  네, 그 당시 교인들은 거의 서울 방학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승용차로 오면 2-30분 걸리는 거리지만 교인들은 한분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예배를 드리는 날부터 매주일 10여명씩 교인들이 몰려왔습니다. 보니까 인근 교회들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안 받았습니다. 돌아가라고 했더니 막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만약 받았다면 금방 수백 명으로 부흥할 수 있었겠지만 목회윤리상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일은 잘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편집장/  그러면 어떤 분이 등록을 했습니까?


정목사/  이사 온 분이나 새로 믿기로 하고 나온 분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존 교인들 보다 조금 더 많은 성인교인 100여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학교가 30여명 중고등부가 30여명 청년부가 20여명이 됩니다.


편집장/  정목사님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목회를 하십니까?


정목사/  처음부터 저는 교회의 슬로건을 ‘초대교회 DNA를 가진 교회’라고 걸었습니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는 것으로 알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편집장/  그 외 목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정목사/ 네 제가 울산큰빛교회의 가정교회 세미나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홈스테이로 갔던 그 가정이 얼마나 섬기는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정교회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섬김에서 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지요. 우리 교회도 지금은 가정교회로 너무나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특징은 주일 대예배 시간에 모든 교인이 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초중고 청장년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아이들도 처음에 떠들었지만 점차 에배에 익숙해 집니다. 모든 성도가 다 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신앙이 자라야 한다는 게 제 목회 소신이고 철학입니다.


편집장/  오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목사/ 네,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람데오닷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저도 글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 정찬수 목사의 가족 /사모님옆으로 두 딸, 그리고 아들

정찬수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37회 졸업생으로 이현경 사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는 대학 4학년에 잠시 휴학하고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오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미국에 들어갔는데 비행표만 해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보답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행하며 마음을 키우고  있고 차녀는 고1 그리고 장남은 늦둥이로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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