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

송세영 국민일보 종교부장이 오늘(2017.5.24.) ‘역사를 잊은 교회’라는 글을 올린 칼럼의 이름은 ‘삶의 향기’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글 내용은 도무지 삶에서 맡고 싶은 향기가 아니다. 되려 역겨움을 안겨 줄 뿐이다. 송부장은 아마 역설적인 제목을 뽑아 교훈을 삼고자 했나 보다. 그가 일러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지난 해 11월 서대문의 연세대 캠퍼스 안에 장로교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이 불에 탔던 일을 그는 기억해 낸다. 그 기념관은 언더우드 (한국명 원두우) 선교사의 아들로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원한경 선교사가 1927년 지어 사택으로 사용한 곳이었다. 90년이나 된 역사를 담은 건물인 셈이다. 대를 이어 그곳에 살던 후손들은 1974년 설립자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집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학교가 그러겠다고 약속했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약속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학교 측은 선교사 가문의 체취가 가득한 이곳을 유학생 기숙사나 교수 연구실로 사용하였다. 연세대학교가 설립자 가문의 요청을 30년간이나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곳에 불까지 난 것이다. 얼핏 화재 소식을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들었더라도 예사로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니, 나는 연세대 캠퍼스 안에 있는 언더우드 기념관을 가 본적이 없기 때문에 기억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는 말이다. 장로교 목사이고 장로교 신학교 교수를 지냈어도 나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

연세대 캠퍼스 안에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은 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장로교인 들이 잘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불이 나고 난 다음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최근 들어서는 지역마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존하고 기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대형 장로교회가 많은 ‘서울’에서 장로교회를 시작한 언더우드 가문의 유적지를 마구 방치할 수가 있는가? 연세대는 믿음을 잃어가는 세속화 된 대학이니까 그렇다하더라도 새문안교회는 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한 언더우드 가의 유산을 어떻게 그렇게 잊어버리고 살았을까? 공연히 원망하는 마음이 예배당 짓는다고 한창인 새문안교회에까지 미친다.

기증을 받은 지 30년 만인 지난 2003년 비로소 기념관이 세워졌지만 지하 보일러실에서 난 불로 기념관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간이나 약속을 어기는 뻔뻔함, 화재를 예방하지 못해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을 훼손한 나태함’을 넘어 그 이후로도 기념관은 지금까지 ‘흉가처럼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무슨 연유일까? 연세대가 설립자의 유산조차 유지하지 못할 만큼 가난해졌는가, 아니면 대학 설립의 역사도 뭉개버릴 만큼 야만스러워 졌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미션스쿨 현주소는 너무나 한심하다. 읽을수록 기가 막힌다. 개인이나 단체나 하나님을 떠나면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송부장의 송곳 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서울 명성교회에서 지난 4월 16일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일어난 낯부끄러운 사건까지 찔러 버린다. 또 다른 종류의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지만 용케 덮어져 있었는데 찔리자 진물이 솟아오른다. 그 예배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인 인요한 박사가 내빈으로 참석한 것. 그가 호남 선교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진 벨 선교사와 교육 선교에 헌신했던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후손임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순천의 기독교기념관은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송부장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인 박사가 단상에 올라 자리에 앉으려 했을 때 교회 장로로 보이는 이가 손짓까지 해가며 제지했다. 앞자리에는 홍준표 당시 대선 후보 등 정치인들이 앉아야 한다고 했다. 뒷자리로 옮기려 했지만 또 다시 제지를 당하자 인 박사는 결국 예배당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부활절 예배가 아니라 전당대회 같았다. 선교사 가족을 이렇게 잡놈 취급할 수 있느냐’며 허탈해했다고 한다. 그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무슨 이런 일이 있는가? 이날 부활절연합예배는 주요 장로교단을 포함한 60여 공교단이 공동으로 준비했었다. 교회연합을 이룬다고 애를 쓴 예배였다. 부산에 살고 있어 가보지 못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국선교역사 자체인 인요한 박사가 설 곳이 없었다는 것은 결국 한국교회 전체가 나서서 가문을 바쳐 기적적인 선교역사를 이룬 초기 선교사들의 후손을 여지없이 내동댕이 쳐버렸다는 것 아닌가? 단상의 어느 한 사람도 그를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배은망덕도 유분수다. 그 지독한 결례의 현장이 선교사들의 신앙유산을 물려받아 세계 최대 장로교회로 성장한 명성교회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도 모르게 비뚤어져 버린 한국교회는 권력 앞에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 아닌가?

세월이 갈수록, 우리 역사를 돌아볼수록, 선교사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은 단연코 없었다고 말할 자신이 생긴다. 그런데 송부장의 말처럼 그런 ”선교사들의 유산을 우습게 여기고, 그 후손을 냉대하며 스스로도 존중하지 않는 역사를 누가 제대로 평가해줄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십 수차례에 걸쳐 단단히 이르는 신명기의 ‘기억하라’(5:15, 7:19)는 명령을 어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깡그리 잊어버리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나는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부산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인 삶을 살다간 장기려 박사. 평북사람이기보다는 46년간 부산사람으로 살다간 한국의 슈바이쳐 바보의사 장기려. 무소유의 삶으로 예수님을 몸으로 보여준 복음병원의 설립자 장기려 박사. 부산교회는, 복음병원을 금지옥엽처럼 여겨온 고신교회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부산기독교대표회장을 지내기까지 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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