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본사 발행인, 향상교회 은퇴)

요즈음 필자는, 말해보았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선지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 백성들을 돌이키게 하시려고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귀가 막히고 눈을 감기게 하라고 하셨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런 말씀까지 하셨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며 교회개혁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도 듣는 자들도 실제로 개혁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 몰라서도 그렇고, 알긴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실행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신학교육문제다. 한국루터대학교 M. Rhinow 교수는 지난 20일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모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기조발제를 하면서 한국교회의 신학교육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목사들의 낮은 신학적 수준이 심각한 문제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도 돈만 있으면 다닐 수 있는 (신학)대학교를 찾을 수 있다. 또 대학교 교수들이 대부분 F학점을 주지 않아서 최하 수준의 학생들까지도 목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회의 수많은 목사들이 3년 동안만 신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개신교회의 신학적 수준이 낮다.”

아주 부드럽게 표현했지만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의 문제와 목사들의 낮은 신학적 수준을 잘 지적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패현상은 전적으로 목회자들의 문제이며 책임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원하면 “아무나” 신학생이 되고, 신학교만 졸업하면 “아무나” 목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신학교는 “어디나” 있다.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는 신학교는 무려 400여 곳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부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러면 신학교의 수를 줄이고, 입학사정을 엄격히 해서 자격자를 선발하여 충분히 훈련을 시키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어떻게 신학교 수를 줄일 수 있나? 설사 몇몇 신학교에서 입학사정을 엄격하게 해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떨어뜨린다고 하자. 또 신학훈련을 시킬 때도 기준을 높여 목사후보생으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탈락시킨다고 하자. 거기서 탈락된 사람들이 갈 곳이 없는가? 어서 오라고 하는 학교들이 부지기수이다.

필자와 함께 신대원 입학시험을 쳤을 때 불합격한 형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신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필자보다 먼저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편목으로 고신에 가입하였다. 이러니 신학교육의 강화나 목사자격의 강화는 이론으로만 가능한 일일뿐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제쳐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면 아주 심각한 책임론에 귀착하게 된다. 한 번 생각해보라. 어느 대학에서 의과대 학생들을 아무나 선발하여 공부시키고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라이센스를 주어 의사로 배출시킨다고 말이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신학교에서는 과연 아무나 목사후보생으로 배출해도 된단 말인가? 현장에 있는 교수들은 양심도 없단 말인가?

신학교육은 매우 경건하고 거룩한 사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가끔 어떤 교수들로부터 이 문제로 양심의 갈등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신과 같은 보수주의 신학교 교수들에게서가 아니라 우리가 진보적이라고 비난하는 신학교의 교수들에게서다. 적어도 그들은 신학교육의 저질화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 신학교육의 개혁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필자가 자주 말해왔지만 적어도 고신교회는 이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부실한 신학교육의 당사자들인 고신의 신대원 교수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신학교육 개혁안을 만들어 총회에 제시하고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정원을 5-60명으로 축소하고, 입학시험에서 반드시 과락제를 실시해야 한다. 단순한 과락이 아니라 목사후보생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대원 교수들 중에는 지금 교단의 교회 수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정원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알지만 수가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다. 기드온 300명 용사들을 생각해보라. 자격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를 타락시키는 부작용만 더 커질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도 갈 교회가 없다. 약한 교회들이 부교역자로 목사까지는 청빙할 만한 힘이 없으니 전도사나 강도사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도사와 강도사를 요청하는 교회들이 많으니 신대원의 정원이 결코 많은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전도사나 강도사의 시무기간은 2-5년에 불가하다. 그 후 이들이 목사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둘째로 정원을 축소하면 당장 신학교의 재정상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교수 티오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신규 청빙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교수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먼저 가난을 각오해야 하고 나아가 선교사들처럼 자기의 생활비와 사역비를 스스로 모금하는 노력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선교사 파송보다 신학교 지원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금 선교사의 수가 너무 많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신학교육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좋은 인재를 많이 양성해야 목회도 선교도 잘 할 수 있다. 아무나 목사로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만큼 더 큰 잘못은 없다. 신학교육의 수준이 낮아지면 교회가 쇠퇴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약 25년 전에 총회석상에서 이런 주장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선배들로부터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안목이 좁은 사람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교단미래정책연구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복음병원의 개혁과 신대원 정원 축소, 목사 장로의 시무정년을 65세로 낮추자는 안을 제시했다가 온갖 비난은 물론 몇몇 선배 목사들로부터 “네가 내 먹여 살릴래?”라는 협박까지 당했다.

그러나 만약 그때라도 신학교육을 개혁했더라면 지금쯤 고신교회는 단연 한국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교회가 되었을 것이다. 영성과 실력을 두루 갖춘 목사가 500명만 배출되었어도 고신교회는 물론 한국교회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신학교부터 개혁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 하나님께 어떤 형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 글도 현실성이 없고 실천 가능성도 없는 주장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도 답답해서 속이라도 풀려고 이런 글을 썼다. 혹시 한두 사람이라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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