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하나교회 담임목사)

불신가정에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운 초겨울 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가면 선물 준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물자가 귀하고, 배고팠던 시절이었습니다. 

주일학교에 가니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교회의 담임선생님이 학용품도, 상품 혹은 선물로 주셨습니다. 배도 마음도 불렀습니다.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교회친구들과 축구를 자주 하였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는데, 운동장에서는 나를 알아주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교회에 계속 출석했습니다. 교회 갔다가 운동장에 가서 축구하는 것이 좋아서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하숙을 하게 되어, 하숙집 가까운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막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날 같은 재미는 없었습니다. 교회에 잘 다닌다고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같이 재미나게 운동할 친구들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배 밖에는 없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믿음이 자랐습니다. 세례도 받게 되었습니다. 1년 쯤 지나면서 교회에도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같이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연합예배와 수련회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든 열심히 출석하다보니 어쩌다가 회장이 되었습니다. 계속 앞에서 섬기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재미 때문만이 아니라, 의무감과 사명감 때문에 계속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섬기는 기쁨도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대학시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가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교역자가 되고 보니 교회출석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다른 교우들은 자유롭게 출석을 하거나 결석을 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직 출석만이 요구되었습니다. 아파도, 힘들어도, 누군가를 보기 싫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출석해야만 했습니다. 잠이 많아서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억지로 나와야 했습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아도 다른 교우들이 돌아갈 때까지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위선자 같았습니다. 그런 내가 싫기도 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하기 싫을 때는 하지 않고, 나가기 힘들 때는 나가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뿐 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목사안수를 받고, 교회목회를 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그래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주일마다 설교하는 일이 고민되기도 합니다. 보통 10년을 일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목회와 설교는 얼마나 오래 해야 전문가가 되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학교는 하루만 가고, 6일은 교회가면 좋겠다.”했던 철없었을 때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많은데, 억지로 참석했던 새벽기도를 통해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정말 좋은 성도님들을 만났으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옛 시인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내 하나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고백했나 봅니다. 돌아보니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교회생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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