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개척에 뛰어든 전성준 목사의 눈물 이야기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차를 빌려서 네비게이션에 의지해서 찾아가게 되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 바로 산이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터에 주님의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 주일 대예배는 180여명이 회집하고 오후예배는 80여명이 모여 뜨겁게 예배를 드린다.

오후예배는 찬양팀의 뜨거운 찬양으로 시작했다. 기도와 찬양에서 기자는 이 교회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교회, 현재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계속 자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교회임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고신뿐 아니라 다른 교단일지라도 교회당을 짓고 개척을 시작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고신의 교회가 그것도 수도권에 우뚝 4층짜리 교회당을 건축하고 만 2년이 지난 지금 중고등부 이상의 교인이 250여명을 헤아리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과연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예배 후에 기자는 전목사와 독대하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전성준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일시: 2008120일 오후 330

장소: 주님의 교회 목회실

참석자: 전성준 목사.천헌옥 편집장,

 

참고로 많은 대화를 제목별로 정리하여 올리기로 한다.

최한주 목사의 간곡한 요청에 이끌려 개척을 하기로 결심. 

사실 당시 제게는 3곳 정도의 중형교회에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서울시민교회 최한주 목사님이 방문 하셨습니다. 진해까지 일부러 오신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면서 내려가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어라 하시고는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개척을 제안하셨습니다. 개척 지망생들이 보낸 70여통의 지원서를 받았지만 오히려 제게 필이 꽂혀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제 아내가 개척을 찬성하는 겁니다. 부산에서 개척할 때의 그 고생을 알면서 말입니다. 저도 이것이 제게 주신 마지막 사명이구나 하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사임을 하고 본격적으로 개척을 시작한 것입니다. 

   
▲ 자하 예배당을 준공하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땅을 구입

개교협을 아시지요? 서울의 5개 교회(남서울교회, 서울시민교회, 등촌교회, 향상교회, 잠실중앙교회)가 개척교회협의회를 만들어 1차로는 남서울교회가 주관한 강서남서울교회를 개척설립하고 그 2차로 서울시민교회가 개척을 주관하게 되었는데 각 교회들이 1억원씩 협력을 하는데 시민교회는 2억을 준비하여 6억원과 생활비 3년을 지원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양주시 쪽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하겠다고 하니 복덕방에서 선뜻 물건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어쩌다가 내놓은 것은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습니다. 2개월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자 여러 친구들(정주채,박은조,최한주)이 용인지역을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이곳으로 돌렸는데 첫 부동산에서 지금 이 자리를 소개했습니다. 내놓는 자료를 보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315평에 교회로 건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땅값이 14억이어서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땅을 계약하기로 작정을 하고 내일같이 계약하려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계약을 안했으면 조건이 좋아졌는데 생각을 바꾸어 보시지요. 하는 겁니다. 들어보니 현찰을 많이 주는 매수자에게는 10억원에 넘겨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이곳으로 와서 살펴본 뒤 계약금을 걸었지요.

첫번째 난관을 눈물로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정식 계약을 하고 상당한 계약금이 건너가고 난 다음 자세히 알아보고는 큰 난관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덕방과 매도자가 저를 속인 것이지요. 그것은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차적인 장벽이었는데 매수자에게 등기이전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구청에 들어가 알아본 다음 저는 가슴을 쳤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계약 할걸 후회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교회로 건축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이전의 서류였고 현 소유주가 그것을 농지로 바꾸어 놓아서 농업인이 아니고는 그것을 취득할 수도 없고 당연히 교회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엎드려 무조건 울었습니다. “수억의 돈이 이미 건너갔는데 교회당을 못 지으면 저는 어쩝니까?” 그렇게 울고 난 뒤 구청에 들어갔는데 뜻밖에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길을 한 번 찾아봅시다.” 하는데 정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알고 보니 담당 구청 직원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그 자리에 당신의 종을 심어놓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러 주는 대로 차근히 일을 진행해서 등기이전하고 교회당 설계를 마친 뒤 건축허가를 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결국은 할 수 있었습니다. 

2의 장벽도 눈물 없이는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됐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2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상 착공을 하려고 하니까 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로공사를 찾아가 거기 허가서를 받아오라는 것입니다. 설계사가 도로공사를 찾아 갔지요. 우리 땅의 절반이 도로가 나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하고 나면 제대로 건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건축허가까지 난 것을 착공을 할 수 없다니 어쩌면 좋습니까.

그래서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는 것 밖에 달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돈이 다 건너가고 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복덕방, 매도인을 원망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기도 했지요. 눈물 반, 기도 반, 기도에 눈물을 포장해서 매일 하나님께 급전을 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도로공사를 찾아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내가 그 땅에 교회를 지으려는 목사입니다하니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때 아! 하나님이 뭔가 손을 썼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신실한 기독인이었는데 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길을 한 번 찾아봅시다.”하는 것이 아닙니까? 설계사가 들어갔을 때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다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태도가 일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315평에 대한 건축을 하되 건물을 앞쪽으로 붙여 지으면 허가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동의서를 얻어 착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난관 역시 눈물과 희생 없이는 건널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막상 교회당을 건축하려니 건축비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 난관이었습니다. 땅은 샀고 건축허가도 착공도 할 수 있는데 돈이 없다니 저는 또 우는 것 밖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은행은 교회당을 짓는다고 하니까 대출도 주지 않았습니다. 우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마냥 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울고 나니 서울시민교회에서 최목사님이 교회 사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하 본당은 완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니 2,3,4층을 지을 돈이 또 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산소가 있는 산까지 다 팔아서 보탰습니다. 시집간 딸이 가진 재산도 톡톡 털어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채도 많이 졌습니다. 진실로 이 교회당은 눈물로 지은 집입니다.

2006118일에 기공예배를 드린 뒤 10개월 만인 107일에 건물을 완공하고 기념집회를 가졌습니다. 김문훈 목사님이 오셔서 개척교회를위한 집회를 해 주셨는데 참으로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빚에 쪼들려 다시 눈물의 기도를 시작했더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작년에 도로공사에서 땅 보상금으로 36천만원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일부 급한 빚은 갚게 되었지요. 그리고 부지를 떼 가는 것도 6미터 위로 선을 다시 그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농지로 되어 있어 마음대로 매매를 할 수 없었기에 싼값에 살 수 있었고, 도로공사에 들어갔기에 거기서 보상금이 나와서 빚을 일부 갚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전화위복의 축복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하 본당 147, 그리고 1층에서 4층까지 각각 55평씩 367평의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 입당예배인도 전성준 목사 설교하는 최한주 목사 축사하는 이성구 목사

개교협과 서울시민교회, 그리고 최한주 목사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어렵고 힘들 때 태산을 만나 울고 있을 때 같이 울어주고 기도해 주신 개교협의 교회들, 특히 시민교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한주 목사님은 기꺼이 교회 사택을 근저당 잡혀 25천을 빌려 주셔서 교회당을 완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것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2007715일 주일 오전에 드리는 교회설립1주년 기념 및 헌당감사예배에 최목사님 그리고 온 당회원들과 성도들이 함께 오셔서 힘을 실어 주신 것은 주님의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되었습니다.

▲ 주님의 교회(전성준 목사)가 서울시민교회(대표 최영석 장로)에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교육에 중점을 두고 시작한 것이 성공적인 전략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우리 교회가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보다 먼저 이곳에 온 교회도 있고 큰 교회당을 가진 교회도 있지만 주님의 교회가 가장 성장하는 교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는 마땅히 전략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눈물과 기도뿐이지요.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시민교회에서 주는 제 생활비를 가지고 부목사와 교육 전도사를 둔 것입니다. 시작부터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것이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교육열이 대단한 사람들에게는 이 교회는 제대로 교육을 하는구나 하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기에 젊은 부부들이 찾아들었거고 교회가 매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당 준공검사가 끝나면 별동을 수리해서 학사관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을 모아 방과 후 공부방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정교회라는 명칭 대신에 목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만 구역 대신에 목장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어하고 결과도 좋습니다. 앞으로 목장에 목회의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 입당예배후 기념촬영하는 전목사와 시민교회 당회원들

등록 가정수는 100여 가정. 

등록 가정수가 100가정 남짓 됩니다. 주일 출석이 170-190명 정도 됩니다. 주일학교 7-80명과 중고등부 3-4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고신 교회에서 온 교인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타 교단에서 온 분들이고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헌금이 교인 수에 비하여 좀 부족한 편이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현재 기도의 제목이 있다면?

이제 계속 기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준공검사입니다. 이전에 허가를 내어준 분들이 3년이 지난 후이라 모두 이리저리 부서를 옮기고 전근을 가서 새로운 분들이 준공을 내 줄려고 보니 조금 이상한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315평에 대한 비율로 건축을 했는데 도로공사에 땅이 122평이 넘어가고 나니까 주차장도 없고 비율도 안 맞고 해서 준공검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기다리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전목사는 아직도 할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해도 지고 심방갈 시간도 촉박하고 기자도 돌아갈 길도 멀고 해서 일어서야 했다. 밖의 기온이 훈훈했다. 전목사의 성품과 같이 교회가 훈훈한 정이 넘쳐나기를 기원하며 돌아오는 기자의 마음도 상쾌했다. 

▲ 인터뷰를 마치고 심방을 가기 위해 나서는 전성준 목사 부부

전성준 목사는 이명숙 사모와 결혼해 3(희진, 은진, 효진)를 두고 있다. 장녀는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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