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_한국고등신학연구원(키아츠 원장)이 김하나 목사에게

 

김재현 박사(한국고등신학원 원장)

작은 연이라도 만들자면-

당신의 교회가 성장하는데 도와준 것도 없는데, 이런 글을 쓰자니 어딘가 미안한 감도 듭니다. 그래서 작은 연의 기억이라도 찾으려 했습니다.

지난 9월인가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프린스턴신학대학 이사와 부회장(?)의 직책으로 동문모임을 가지려 한다고. 저는 두말도 하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하나는 아마 Th.M.을 했지요? 저는 2003년에 그 신학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2년 전인가 경기지역교회협의회 신년하례회에서 김삼환 목사는 ‘검소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을 나누자’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참석자들이 다들 속으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단상에 있는 당신은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2016년에는 스코필드 내한 100주년을 맞이해 김삼환 목사와 정운찬 전 총리의 인연 때문에 스코필드재단에 기금을 후원해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무총장 자격으로 함께 갔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아 미안한 감도 듭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이 50이 넘어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주변의 일에 옛날처럼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나이인데도 온종일 마음속에 슬픔과 분노가 치솟습니다. 몇 자를 적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당신네가 이런 글을 읽을 리가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넋두리라도 하지 않으면 제 존재에 대한 슬픔 때문에 견디기가 힘듭니다.

 

종교개혁500주년, 적시타를 때린 궁여지책?

21세기 들어 연이어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새로운 출발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 이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그리 애써 왔는데… 당신은 2017년 10월에 적시타를 때렸습니다. 노회가 보통 이 시기에 열려서 그랬겠지요. 최소한의 역사의식이 있다면, 임시노회라도 종교개혁500주년을 넘겨서 했더라면 하는 바람은 사치였을까요? 수많은 목사들과 학자들과 성도들이 이제 다시 3 ‘Sola’에 의지해 바로 살아보고자 한 노력에 당신은 자의반 타의반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74엑스폴로 세대의 종언?(40년의 황금기 주역들)

되돌아보니 74엑스폴로는 한국교회의 성장과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인해주는 출발점이었고, 당신 세대의 주 무대였습니다. 목 좋은 곳에 십자가만 세워도, 아무리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도 교회는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정말 당신 세대는 참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김삼환 목사도 많은 긍정적이고 좋은 헌신을 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세대들은 어느덧 한겹 두겹 한국교회 다음세대 양식창고를 헐어먹었습니다. 당신들의 수고의 결과를 마음껏 찾아 사용하는데, 누가 머라 하겠습니까? 돈과 권력 앞에 무엇이 무서웠겠습니까? 어쩌면 먼저가신 하용조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이 오히려 복된 분들이 아닐까요? 당신과 주변의 몇몇 분들의 작금의 여러 행태들을 보면서 74엑스폴로 세대의 끝을 보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때는 당신이 우리를 판단해 자르고 세웠을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 세대가 당신을 속아낼 때가 되었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역사가로서 반드시 지금의 사건을 나름대로 기록해서 후세에 남길 것입니다.

 

솔직해지자, 권력-돈-핏줄의 가치

솔직히 말씀하시지요? 왜 수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이렇게 하시는지?

당신이 주례를 서 주고 받은 돈 중 일부인 60억을 갖고 장학재단을 세웠다고 세간에 비웃음과 조롱을 받은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는 기본 격언을 상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 아쉬울 것이 없는 분이 총회와 교회와 사회의 일반상식마저도 우습게 여긴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권력이 아닌가요? 1만 명의 교인만 가져도 그 자체가 지역 권력이지요? 재적10만명은 그 자체가 권력의 달콤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그 열매를 공유할 수 있지요.

돈이지요? 제가 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항간에 1년에 천억이라는 말들이 돕니다. 돈은 아름다운 꽃과 같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돈은 악의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돈의 달콤함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으셨는지요?

핏줄? 그래도 나름 공공성과 사회의식을 가져오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역시 핏줄 전승 하에서는 언제든지 바꿔 신을 고무신만큼도 가치가 없는 것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권력-돈-핏줄의 삼각관계가 가장 확실한 이유일 것입니다. 혹시 아들이 아닌 제 3자가 후임으로 왔을 경우, 언젠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참혹한 치부 때문인가요? 이는 소문과 추측으로만 끝나길 바랍니다.

 

크기라는 잔머리학의 처세술로 십자가를 팔지 말라

한국사회와 시민들, 기독교인들이 이제 아주 톡톡해졌습니다. 그래서 헌금이 얼마나 명확하고 확실하게 사용되는지를 면밀히 볼만큼 영특해졌습니다. 잔머리학으로 성도 대중들을 우민한 존재로 보지 마시지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십자가를 팔아 보호막을 치는 데는 슬픔과 조소를 동시에 보냅니다. ‘Here I Stand’를 외친 루터에게 파문장을 보내는 교황의 변명과 너무나 똑같이 들립니다. 김삼환 목사나 김하나 목사가 아니어도 그 정도의 십자가를 질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10개의 건강한 교회로 분립해서 성도들에게 자존심과 교회출입의 편리성까지 제공하면 어떨까요?

중세 일부 일그러진 교황들처럼 십자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더 비참하게 하지 마십시오. 솔직하게 ‘돈과 권력이 너무 좋더라,’ ‘내 핏줄 외에는 물려주고 싶지 않더라’고 고백하면 차라리 비굴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대담한 세습이 떳떳하게

수 십 개의 교회가 이미 세습을 떳떳하게 진행했는데, 왜 당신들만 갖고 그러느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비겁했습니다. 여기에는 아마 이미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가진 명성교회의 위치를 우리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80년대 대학시절 다니던 충현교회의 건축은 한국교회의 성장기에 전국에 신 고딕양식의 융성기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당신네 교회가 아무런 저항 없이, 저항을 받더라도 뭉개어 버리면서 성공한다면, 이제껏 그래도 눈치를 보고 세습을 했던 자들이…. 이제는 너무나 떳떳하게 백주에 광장에서 세습을 자랑스럽게 단행할 것입니다.

벌써 성복교회-수동교회의 광대한 제국을 만든 임-모 목사는 세습이 아니라 세대교체라는 망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내더군요. 그런 일들은 이제 더 밀려올 것입니다.

 

과부와 을들의 눈물 어린 빵을 짓밟지 말라

당신이 1년에 결정할 수 있는 수백억의 교회재정 중에 당신이 직접 낸 헌금이 얼마나 될까요? 부자들이 낸 헌금이 몇 프로나 될까요? 당신 교회는 예외일지 몰라도, 대부분의 교회의 헌금은 가난한 자들, 작디작은 을들의 눈물 어린 헌금 아닙니까?

그 헌금을 사용하는 당신에 accountability나 credibility를 요구하는 것은 사치인가요? 이사야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목숨 걸고 외친, 가난한자 빈자, 이 시대 을들로 표현되는 이들의 눈물 어린 빵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권력과 세습의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지혜롭게 저항하라, 현명한 촛불세대의 지혜를 기대하며

한국사회는 지난 1년 눈앞에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세계가 찬탄한 촛불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놀랍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교회 내부를 향해 촛불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명성교회 출석예상인원에 버금가는 5만여 명이 20여번만 촛불을 든다면, 그 교회는 바뀔까요?

이제 촛불을 듭시다.

20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하는 피날레가 아니라, 한국교회 세습을 단절하는 출발점으로 삼읍시다.

명성교회 세습을 끝까지 막아낼 전략팀 구성을 제안합니다.

의식 있는 선배들이 예전의 장수들처럼 전면에 자리해 주십시오.

저희도 뒷자리를 따르겠습니다.

한국교회 희망을 촛불을 들어봅시다.

 

이제 명성교회 성도들의 지혜로운 저항도 촉구합니다.

단, 명성교회라는 보편교회의 틀은 깨지 않기를 꼭 부탁합니다.

폭력이나 욕설이나 감정적인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저 루터가 주장한 종교개혁의 두 요소인 양심과 성경말씀에 근거해 주십시오.

건전한 상식과 양식과 인간의 보편적 판단과 공공성에 기초해주십시오.

 

저는 지난 38년 어간 명성교회의 명성을 쌓아오는데 공헌한 성도들의 지혜를 믿습니다. 그럴듯한 태업의 방법, 저항의 방법을 찾을 것이라 믿습니다.

의식을 갖고 헌금을 하실 거지요?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절차적 정당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거지요?

기도와 함께 무엇인가 행동을 하실 거지요?

무엇이 한국교회를 살리고, 지금까지 흘렸던 명성교회 부흥을 위한 눈물이 헌신이 헛되지 않은 길인지 고민하고, 실행하실 거지요?

 

오늘만은 분노해 보렵니다.

마치 술 취한 자처럼, 미친 자처럼, 심장이 이리 산만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쌓아온 한국교회인데, 사회의 걱정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것입니까?

 

두서없이 글을 씁니다.

비록 담벼락에 낙서라 생각되더라도 오늘만은 제가 속마음의 분노와 좌절을 그저 가감 없이 올립니다.

한국교회를 그래도 여기까지 섬겨온 수많은 민초들, 을들, 우리같이 힘없는 성도들… 미안합니다. 특히, 이 시대를 자라나가는 젊은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2017년 11월 12일

명성교회 세습대관식이 열리던 주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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