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실 때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시고 그들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시몬과 안드레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하셨던 것이다. 만일 오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예수님께서는 그때처럼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시고,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말씀하실 것이다.

생각해보자.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아마도 내 생각에는 "로그온(log-on)하라"고 하실 것 같다. "클릭하라"가 아니다. "로그온하라"이다. 다시 말해 약관에 동의하고, 회원에 가입하고, 필요하다면 가입비를 내야 하는, 즉 헌신이 필요한 '로그온'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21세기의 목회에 '로그온'을 했을까 . 그리고 로그온된 삶, 로그온된 사역, 로그온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세상 속에 뛰어들어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세상을 두려워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때를 묻히고 오염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먼 발치에서 구경꾼이 되어 단지 클릭만 한다. 그러나 클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바퀴벌레를 예로 들어보자. 지구상에 바퀴벌레가 없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퀴벌레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암컷 한 마리가 1년에 무려 4만40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미국의 최대 바퀴벌레약 생산 회사 오스틴 피쉬맨은 결국 바퀴벌레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아마도 바퀴벌레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듯 싶다.

이렇듯 세상 속으로 로그온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모양의 불쾌한 일들을 피할 수는 없다. 인종차별, 성차별, 상업주의, 각종 중독 등등…. 나 자신도 개인적으로는 오늘날의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러나 견뎌내야 한다. 바퀴벌레가 없는 세상을 피할 수 없다면 바퀴벌레를 극복하는 삶을 살면 된다. 일본 쓰쿠바 대학의 한 연구원은 바퀴벌레 없는 세상 대신에 바퀴벌레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바퀴벌레 몸속에 생체 로봇을 이식하고 과학자들로 하여금 전염병 확산 경로를 연구하도록 했다.

세상을 등지는 것은 교회의 자세가 아니다. 세상을 회피하는 것도 교회의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해킹과 악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담대하게 세상에 로그온해야 한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로그온해야 한다(요 16:33).

번역·정리=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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