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요 믿음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며”라고 단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대로 예언되고 성취되었으며 오늘날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후(행2장) 탄생한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라고 분명하게 밝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증인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 부활은 믿는 성도들이 부활이라고 외칠 수 있으며, 모든 성도는 ‘예수 부활 나의 부활’이라고 믿는다.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도 없었을 것이기에 부활절은 기독교회의 믿음의 고백이요 대축제인 것이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분명히 기독교인 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축제이지만 너무 세속화되었고 상업주의에 편승해서 그 의미마저 흐려지고 있는 터에 한국교회는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부활절에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함으로써 부활절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으며,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살피고 주님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맞이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문화를 부활절의 경전과 기쁨에 두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따라서 부활절 연합예배의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1947년 남산에서부터 시작된 한국교회 연합예배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이 없지는 않았으나 61년 동안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유일한 진보와 보수 간의 예배였고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연합과 일치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에는 정사(正史)와 비사(秘史)가 있는데 정사는 바른 전통을 가지나 비사나 허사는 전통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후대들에게 거짓을 가리킨다고 볼 때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2007년도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있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60년간 전통적으로 맥을 이어온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가 매년 주최해 오던 것을 2006년부터 한국의 두 연합단체가 대화나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가져다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속한 단체가 귀하면 다른 단체도 귀함을, 모르거나 무시한 처사다.


민주주의는 절대로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데, 절차도 없이 그랬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는 소위 보수측 단체가 치렀고, 2007년도에는 진보측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에는 다시 보수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이 주관하는 부활절예배를 드리게 되었지만 역사는 절대로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인데, 좀 지나치게 두 연합기관이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정이 안되고 강행하기 때문에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온 단체가 법인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2006년부터 보수적인 단체와 진보적인 단체가 함께 드리면서 비로소 한국교회가 보수 진보가 힘을 합해 드리는 것처럼 홍보되고 있는 것은 60년간 이어온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의 역사성을 오해했거나 아예 무시한 잘못된 처사라는 것이다. 따로따로 연합예배를 드리던 것을 1975년부터 진보측과 보수측이 합의하여 진보측이 설교를 맡으면 보수측이 사회를 보고, 다음해는 그것을 바꾸어서 진보측이 사회를 밭고 보수측이 설교를 해온 것이 전통이었고 관행이요 불문율이었던 것인데 그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닌 것이다.

 

둘째로, 부활절을 기념하는 예배는 개 교회 또는 지역단위에서도 정성껏 드리고 있는데, 다만 상징적으로 수도 서울에서 드려진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주제를 통일하고 기도제목을 통일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항상 대전에서 전국연합회의 회장단을 초청하여 설명회를 가지면서 은혜를 나누고 의견을 수렴해서 뜻을 모았는데, 지난해부터는 그것이 없이 몇몇 대형교회 위주로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또한 부활의 기독교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 1998년부터는 부활절 문화행사로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십자가 대행진, 미술전시회, 사진전시회, 꽃꽂이 전시회, 부활의 시 낭송회, 칸타타 등등 다양한 기독교문화행사가 있어서 기독교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전도의 계기로 삼았고 교계나 일반의 반응도 좋았는데 지금은 몇몇 대형교회들의 동원과 목사들만의 행사가 되고 말았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상임총무의 일을 세 번 맡으면서 (대회장 길 자연, 이 중표, 김 장환 목사) 실제로 실무 총책임자로서 이 일에 증인인 것이다.

 

셋째로, 2007년도 시청 앞에서 행해진 부활절 연합예배의 설교제목이면서 주제인 “부활의 성령이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것은 많은 성도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는 죽은 일이 없는데 어떻게 부활한다는 것인가? 부활절의 핵심은 예수 부활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삼위일체 교리로 폭넓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부활이 성령이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말은 좀 어색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부활의 예수여 새롭게 하소서”라고 했어야 그 의미 전달에 있어서 분명하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있다.

넷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예배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예배와 행사의 구별이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부활절을 계기로 교회가 사회를 향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좋은 것이로되, 예배와는 구별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마음은 필자만이 가지는 심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섯째로, 성례는 세례와 성찬인데 성찬예식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사회자가 성찬에 참여해야 할 사람과 참여해서는 안 될 사람을 설명하지 않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저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없는데 성찬에 참여토록 함으로써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기본진리를 범하게 했다는 것이다.


소위 대권주자들이나 정치인들이 TV에 보면 사찰이나 법당에 가서 공개적으로 기독교가 금하는 절을 하고 손바닥을 엎치락뒤치락하고, 또 기독교 절기 행사에 와서는 조심해야 할 성찬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7-34절에서 무질서한 성찬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강하게 하셨는데 우리는 이를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린도 전서 10장 21-22절의 “너희가 주의상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라는 말씀을 혼동케하거나 위배하도록 했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목회를 하면서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죄의 고백 없이 성찬에 참여치 말도록 가르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묻고 싶다. 오늘날 소위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앙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이나 태도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를 위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후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소위 대권주자들이나 정치지망자들이 분명히 자기가 믿는 신앙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나치게 표를 의식해서 절에 가면 불교인이 되고, 성당에 가면 천주교인이 되고, 교회에 오면 기독교인이 되는 행위는, 신앙적 진리를 떠나서도 자기 정체성도 철학도 없다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신앙심에 대한 철학과 정체성이 없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인지 매우 한심스럽다.


<존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에서 그리고 그것에 바탕을 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등에서 그것이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化體說)이건 개혁파의 영적임재설(靈的臨在說)이건 간에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오직 세례를 받은 분별력 있는 성인만이 참여 할 수 있고, 유아세례를 받았을지라도 입교하지 않은 자(고전11:27-29), 참된 신앙고백이 없는 자, 비방거리가 있는 자들은 자신을 살펴 참여하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구태여 기독교교리문답 중 성찬부분의 요리문답 “96. 주의 성찬이 무엇인가?” 와 “97.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최자 측이나 분별없이 성찬에 참여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것은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분명히 성찬은 주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마태복음 26장 27절, 마가복음 14장 22~25절, 누가복음 22장 19~20절,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찬과 관련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68문에서 175문까지를 보아도 성찬에 참여할 사람과 참여해서는 안 될 사람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여야 한다. 아무튼 대권주자들이나 정치지망자들이 성찬참여논쟁은 논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대오각성하는 계기로 삼아 솔직하게 잘못되었음을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밝혀야 할 것이다.


성찬의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이며 성경의 진리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성경의 원리대로 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교계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다종교 국가에서 다른 종교단체에 참여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교계의 어떤 지도자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따위의 엉뚱한 권면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궤변일 뿐이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공적으로 타종교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자신의 종교를 밝히고 적어도 타종교의 의식에는 참여하지 않는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는 것이다. 필자는 어느 누구를 비난하거나 특정한 사람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기본자세이며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최근에 소위 지성인임을 자부하는 어떤 학자가 요한복음을 강의하면서 성경의 원리에서 벗어난 강의를 해서 물의가 일어나자 교계의 어떤 지도자를 찾아가 대화했는데, 어떤 기자와 인터뷰한 것을 보면서 필자의 눈을 의심케하는 심각한 것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지도자는 열려있는데 수많은 성도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서 어느 말이 진정성이 있는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분들이 제발 모든 면에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실망을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하나님 앞에 죄인이 분명하지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독교의 가치와 윤리관이 분명히 서야겠다는 생각이다.


부활의 주님, 길이요 생명이신 주님 앞에 어떤 구차한 변명도 없이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제발 진리에 목숨 걸게 하시고, 비진리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먼저 기독교계가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을 만치 잘못된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사단법인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는 부활신앙 확산을 통한 부활생명 문화 확산을 위하여 예수 부활 나의 부활, 예수 생명 나의생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 나아갈 것이며, 이를 계기로 전도의 기회를 삼아야 할 것이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위한 참여와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세계 모든 크리스천의 축제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CIN뉴스제공)

이 글은 2007년 부활절 연합예배를 두고 쓴 글이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제기이기에 올린다(편집자)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