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2 호 2018년 7월 25일 (수) 이 글은 평화연구원이 기고한 칼럼입니다.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개를 든 디테일의 악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귀국 즉시 비핵화를 행동에 옮길 것이며, 폼페이오 장관이 빠른 시간 내에 방북하여 북한의 파트너와 후속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이 서해 인공위성 발사장을 파괴할 것이며,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의 유해도 즉각 송환할 것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할 계획을 밝혔고, 이는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자신의 성과에 대해 성공이라고 평가했으며, 미국 내외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가시적인 비핵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으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3주가 넘은 7월 6-7일간 이루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이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북한은 미국이 강도와 같은 일방적 요구를 강요했다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당시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을 의미하는 북핵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신고를 요구한 반면 북한은 종전선언을 요구함으로써 협상에 난관이 초래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일 개연성이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로 평화협정을 요구했다는 점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7월 20일자 논평을 통해 북·미 정상이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자주적인 남북관계 발전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종전선언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더해 북한은 집단탈북 여종업원 12명의 송환을 요구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8월 이산가족 상봉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나섰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미국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군사연습 중단이 성급했다는 지적과 아울러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 인권법은 미국 의회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향후 5년간 연기됨으로써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압박수단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미 행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는 필요시까지 계속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고, 7월 23일에는 미국기업들을 겨냥해 ‘대북제재주의보’를 발령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북핵 및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다시 난기류에 휩싸이고, 남북 및 북미관계 양자 모두 어려운 형국에 접어들고 있다. 우려되었던 디테일의 악마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일까?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한의 셈법

현 상황에서 북한이 집착하고 있는 이슈는 종전선언이며, 그 배경으로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대내차원에서 제시할 성과 및 명분의 도출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은 금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핵 병진노선의 종료를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발전에 방점을 둔 새로운 전략노선을 채택했다. 아울러 핵실험의 중단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으며, 그 명분은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이 끝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주민들이 이해하는 북한 비핵화의 개념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과 11월 이후 각각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으며, 금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의 폭파에 이어 최근에는 서해 인공위성 발사장의 해체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데 이어 비핵화를 위한 행동들을 실천에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보장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가능하다. 북·미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비핵화 행동을 위한 내부설득에 어려움이 초래될 개연성도 있다.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의 군사적 옵션 선택 가능성이 그 만큼 줄어든다는 셈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종전선언이 도출될 경우 공세적 대북 군사전략의 구사가 어려워지며, 북한을 겨냥한 한미군사연습의 명분도 약해진다. 아울러 유엔사령부의 존속 및 주한미군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전선언으로 북한이 대미, 대남 협상에서 다양한 레버리지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북한은 종전선언을 김정은 정권 및 체제보장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시작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도를 견지하고 있다. 여러 차원에서 북한에게 종전선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딜레마

지난해 미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안보위협은 북한이었으나 금년에는 그 비율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의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 국민들의 우려는 커졌고, 북핵문제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금년의 경우 북핵문제는 최소한 안정화 국면을 유지하고 있으며, 협상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의 주체로 명기하고 양 정상이 서명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북핵 협상의 결과를 성공적이라고 강조하는 논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미국 대선에 대한 러시아 개입 의혹을 포함한 스캔들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과도한 미국 우선주의의 견지로 인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금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핵 협상의 성공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며, 이는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놓았으며, 이미 한미군사연습 중단이라는 카드를 선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대응수단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기만전술과 협상의 파기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미국내에는 상당한 정도의 불신감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비핵화 행동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비핵화의 몸통’에 해당하는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북한의 신뢰할 만한 비핵화 조치 이전까지 강력한 대북제재의 유지에 대한 여론이 높은 편이며, 한미군사연습 재개에 대한 목소리도 들린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약속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고 서해 인공위성 발사장의 해체를 완료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미국의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입증할 보다 확실한 가시적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가 다시 운전석에 앉을 때다

현 단계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근본적인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 불가피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공언과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이 급격하게 약화될 개연성이 있다. 이 경우 최종적인 피해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북한은 대북제재로 인해 지난해 -3.5% 성장을 했으며, 특히 대북제재가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년의 상황은 더 어려울 전망이다. 협상의 결렬은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를 의미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옵션을 포함한 군사적 압박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새로운 조미관계’를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한 김정은 위원장의 대내적 신뢰와 존엄도 역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금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겨냥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협상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최대한 인내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북핵 협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국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타격을 입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과 같은 대북정책 기조를 견지할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동안의 행보에 비추어 북·미 협상국면의 파기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지속된 북·미 간의 극단적 불신과 양국 최고 지도자간의 소위 말폭탄을 종식시키고 협상국면을 도출한 데에는 우리의 역할이 컸다. 이제 다시 한반도 문제를 생산적인 해결의 방향으로 이끌어갈 운전자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미 협상의 난관은 근본적이라기보다는 아직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 간 선제 행동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예견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미 양측의 동시행동을 도출하거나, 선제행동에 대해 상대방의 확실한 보답이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 양측을 설득해 상호신뢰를 고양하는 우리의 주도적 노력이 중요하며, 4.27 및 5.26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우리는 그 능력을 입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제시한 만큼, 9월 UN총회를 목표로 적극적인 대북 및 대미 행보가 필요하다. 최근의 난관은 비핵화의 이행을 위한 실무협의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8월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할 필요도 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종전선언을 매개로 북한의 적극적인 비핵화 행동을 도출하고 평화협정으로 가는 협상과정을 신속히 시작해야 할 것이다. 향후 구축될 새로운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감안할 때 우리 역할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커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북·미 양측 모두 북핵 협상의 순조로운 이행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서 다시 운전대를 고쳐 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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