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6]

유럽인들은 “루마니아”에 대하여 두 가지 깊은 인상을 갖고 있다. 루마니아의 망명작가 게오르규가 짓밟히는 인간성의 처절한 모습을 담아 쓴 “25시”라는 소설과 “드라큘라”라는 영화다. 드라큘라는 1897년 아일랜드 작가가 쓴 소설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 후에 전 세계적으로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드라큘라”라는 영화를 통해 더욱 유럽의 공원묘지는 소름끼치고 무서운 곳으로 알고 있다.


공원인가? 묘지인가?


그러나 유럽공원묘지는 “드라큘라”영화에서 보는 것과 달리 참 아름답게 잘 꾸며진 공원 그 자체다. 누구나 처음 유럽생활을 시작할 때 정원 같고 아담한 이곳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가족끼리 산보를 하거나 경치가 좋아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분위기도 괜찮고 식사할 곳을 골랐는데 안타깝게 그 곳이 공원묘지인 때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콕스키르”공원묘지는 발트해의 해풍과 함께 북유럽의 투명한 햇살을 받고 있는 “명당”자리로 누가 봐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곳이다. 묘지라기보다 시민의 쉼터이자 공원이라고 해야 옳다. 드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숲을 두고 묻혀 있는 사자(死者)와 더불어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곳을 묘지라고 부르지 않고 “스콕스키르 공원”또는 “우드랜드”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 공원묘지의 개념은 아직 시체가 무덤에 남아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그 공간이 여전히 사자들의 몫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에 비해 유럽 공원묘지는 사자는 이미 흙으로 돌아간 자체이기에 그 나머지 공간은 살아 있는 자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하겠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묘지를 공원처럼 쉽게 찾아가는 것이다. 한국도 묘지가 숭배 대상이 아닌 공원으로, 산 사람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공원처럼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덤이 흙으로 돌아간 흔적이라는 성경적인 개념으로 바뀔 때에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 묘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소름끼치고 무서운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묘지에 나무를 심고 아름답게 꾸며놓아도 산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교회당인가? 묘지인가?


종종 유럽 교회당은 “산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다”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것은 교회당 안에 있는 지하 묘를 두고 한 말이다. 유럽의 교회당이나 성당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지하 무덤이 있다. 실제로 그 무덤의 숫자는 매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보다 더 많을 때가 있다. 신앙과 삶의 중심지인 교회당 안에 묘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체적으로 동양인들은 죽은 자를 산 자에게서 가급적 멀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묘지는 마을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 그에 반에 유럽인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간격을 가급적 좁히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동, 서양인이 가지고 있는 생사관의 차이를 다소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대체적으로 유럽인들에게 죽음은 삶과 가까운 곳에 있으며, 삶과 죽음은 영원히 분리될 수 없다는 생사관을 엿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인에게 죽음은 삶과 공존할 수 없는 것, 영원한 이별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소 무속신앙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동양인들에게 죽음은 이별이라는 의미가 강한 반면, 비교적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영향아래 살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죽음은 일시적인 분리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겠다.


관광지인가? 묘지인가?


유럽의 관광명소 중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비엔나는 볼거리 또한 만만치 않는 곳이다. 비엔나를 다 둘러보아도 이곳을 가보지 않는다면 아주 후회하게 될 곳이 있다. 바로 유명한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중앙 공원묘지이다. 이 중앙공원묘지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당대에 유명한 음악가들이 묻혀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차르트 묘지를 중심으로 슈베르트, 베토벤과 요한슈트라우스 1세가 주변에 묻혀 있으며, 묘지 오른쪽으로 요한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 브루크너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묻혀 있다.


유럽에 공원묘지가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 무수하게 산재해 있다. 독일 바그너와 그의 딸과 아들 지크프리트, 독일낭만파 문학의 선구자 얀파울, 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프란츠리스트가 묻혀 있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시립공원묘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의 대 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묻혀 있는 하이델베르크 시립 공원묘지, 프랑스 에밀졸라와 배우이며 극작가였던 사샤 귀트리와 프랑스의 영화감독 트뤼포가 잠들어 있는 몽마르트 언덕은 유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지금도 이 같은 무덤을 찾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국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평소에 무덤을 찾는 경우가 별로 없을지라도 유럽에 와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찾는다. 뭇 사람들이 적지 않는 입장료와 시간을 투자하여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 로마 바티칸과 카타콤,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의 무덤 그리고 유럽의 교회당 안에 있는 무덤들을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유럽 최고의 명당, 교회당


한국과 같이 유럽도 차이는 있긴 하지만 엄연히 명당이 존재하고 있다. 유럽 제 1의 명당은 아무래도 교회당을 따라올 것이 없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은 명당 중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웨스트민스터란 “서쪽의 대 사원”이란 뜻으로 붙여진 단순한 이름이지만, 그 자리는 결코 평범한 곳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13세기 이후에 영국 왕의 대관식장이었고, 왕가의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이었고 그리고 무덤이었다. 1066년 이후부터 영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른 것만 40명이 넘는다. 또한 역대 왕만 17명이 넘게 묻혀있다. 이곳은 반드시 왕족들만은 아니라 각계각층, 영국을 찬란하게 빛 낸 위인들이 함께 묻혀있다.


정문에서 몇 발자국만 가면 제일먼저 녹색 대리석에 새겨진 처칠 경의 무덤이 보인다. 워낙 큰 글씨로 “윈스턴 처칠을 기억하라”(remember winston churchill)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금방 눈에 뛴다. 처칠은 마땅히 웨스트민스터에 묻힐 자격이 있는 국가유공자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그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한적한 시골 교회 옆 뜰에 묻혔다. 처칠 무덤 옆에는 아프리카 탐험가요, 복음전파에 심혈을 기울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무덤이 있다. 리빙스턴의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혔지만 그의 몸은 영국 왕실의 예대로 영국인이면 누구나 묻히고 싶어하는 이곳, 그것도 가장 자리에 묻혔다. 좀더 가까이 들어가면 성가대 석 오르간 왼편에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묘비, 제단의 좌측에는 대영 제국을 건설했던 대 재상들의 기념비들이 몰려 있다.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제단 남쪽 입구이다. 일명 “시인의 코너”로 불리는 이곳에는 영문학을 빛낸 시인과 작가, 예술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영문학의 원조 초오서의 묘비를 비롯하여 롱펠로우, 브레이크, 드라이든, 바이런, 밀턴, 엘리엇, 셰익스피어, 워즈워즈, 헨델 등의 묘비, 기념비 아니면 석상이 세워져 있다. 시인이나 작가, 더구나 선교사들을 왕족과 같이 이처럼 예우한 나라가 그렇게 흔한가?


묘지를 준비할 것인가? 영혼을 위해 준비할 것인가?


위대한 복음전도자 빌리그레함이 “12시 5분전”이란 책에서 “당신의 생애는 지금 몇 시입니까?”라고 묻고 있는데 비해 모세는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90:10)이라 했다. 모세의 고백대로라면 지금 40세인 사람의 인생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하겠다. 60살이라면 9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 15분 정도의 인생을 남겨 놓고 있다는 말이다. 15분이면 아침에 일어나 거울보고 세수하면 딱 맞는 시간이 아니던가?


“자기 나이를 바로 셀 수 있는 사람이 적다”라는 말처럼 인생의 나이 또한 바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종종 동물보다 어리석을 때가 많다. 제비나 철새들은 추운 겨울을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거나 다람쥐나 개미는 식량을 미리 비축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미래에 대해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세상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 영혼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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