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꿈꾸던 목사의 딸 무대 추락사, 재발 방지 대책 전무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20대 보조 스태프가 공연 그림을 그리다가 무대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이 사고를 두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책임자의 진정 어린 사과가 나오지 않은 채 관계자 사이에서는 책임 공방전이 오가고 있다.

지난 9월 6일 오후 1시쯤 경북 김천시 삼락동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근무 중이었던 조연출 박 아무개 씨(23•여)는 다음날 있을 창작 오페라 ‘달하, 비취시오라’ 준비에 한창이었다. 대공연장 무대는 가로 15m 세로 14m 크기의 무대와 가로 12m 세로 6m짜리의 직사각형 상하이동식 승강 무대가 지상 7m 위에 합쳐진 구조였다. 승강 무대는 공연 중 장면 전환이나 연기자의 등장을 위해 무대 바닥의 일부분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도록 만든 공간이다.

김천시예술문화회관 전경

박 씨는 무대 정면 벽과 승강 무대 사이의 8m쯤 되는 공간에서 소품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천경찰서 등에 따르면 박 씨가 사이 공간에서 작업하는 동안 김천시청 소속 무대감독은 승강 무대를 지하로 내리라고 지시했다. 승강 무대가 아래로 내려가면 무대 중앙에는 폭 12m, 깊이 7m의 빈 공간이 생긴다. 박 씨는 작업 결과물을 확인하려 뒤로 이동하다 승강 무대가 내려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7m 아래로 추락했다.

문체부 발행 무대 시설 안전설계지침에 따르면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무대의 경우 주변에 경고등•펜스 등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김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무대에는 안전장치가 없었다. CCTV로 당시 상황을 확인한 박 씨의 외삼촌은 “아이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대로 추락했다”라며 “리프트 주변에 두 명의 보조 스텝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안전장비를 하지 않았고 둘 다 무릎을 꿇은 채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 사고로 박 씨는 안면이 골절됐다. 폐와 간 등 장기도 손상돼 과다출혈 상태로 경북대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그녀는 나흘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10일 오후 3시 30분쯤 숨을 거뒀다. 이 사고로 7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은 취소됐다.

김천시문화예숳회관 홈페이지 공연취고 공고에는 내부사정이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없다.

이 공연은 김천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문위)가 주최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와 호남오페라단이 주관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도 책임자라고 나서지 않았다. 유가족은 분노했다. 박 씨의 부친은 “무대감독이나 주최•주관 쪽이 먼저 우리에게 연락해 잘못을 인정하거나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라며 “아이가 마지막 숨을 쉬고 있던 상황에서 그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씨 부친은 사고가 난 후 관련자들이 오히려 우리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공연을 주최한 김천시도 사고 뒤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따로 대응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천시 관계자는 “사실 그 사고에 대해 잘 모른다”며 “김천시문화예술회관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회관에 가서 구체적인 사항을 들어보라”고 말했다. 또 “좋은 사고가 아니므로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다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공연을 공동 주최한 한문위와 공동 주관한 한문연, 호남오페라단 역시 사고 이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가족은 사고가 난 지 2주가 흘렀지만, 호남오페라단을 제외한 두 곳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사고와 관련한 게시물 하나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안전 불감증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한 공연계 인사는 “우리나라는 안전사고가 일어나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해결책도 항상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안타깝다”라며 “공연을 주최하고 주관한 쪽에서는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왜 그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한 후 개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은 “이번 사고의 실질적 책임자는 무대감독”이라며 “승강 무대를 내리라고 지시한 당사자 무대감독이 박 씨에게 아무런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 결과 승강 무대가 내려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박 씨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김천경찰서는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 송 아무개 씨(55)와 호남오페라단 무대감독 홍 아무개 씨(40)를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20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졌다.

박 씨의 꿈은 성악가였다. 대학원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유학비를 한 푼이라도 더 준비할 요량으로 무대 조연출 일을 해오고 있었다. 박 씨의 아버지 박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69회 출신으로 부산시립합창단과 각종 오페라 무대에서 바리톤으로 활동하다 조금 늦은 나이에 목사로 부름을 받아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

김천시문화예술회관 게시판에는 많은 항의 글들이 오르고 있다.

한편 김천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많은 글이 아래와 같이 올라오고 있다.

“무대스텝이 무대제작중 사망하였습니다.”라는 글은 “무대안전교육은? 무대안전바는 제대로 설치되있었는지? 싸이렌은 있었는지? 무대감독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시행대행단체는? 주최주관단체는? 아무도 아무런 책임없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변 모씨의 이름으로 올라온 글에는 “얼마전 이 곳 대공연장에서 조연출이 추락사고로 사망하는 큰 일이 있었죠. 그런데 그 일에 대한 책임 전가 하기에만 급급하시죠? 한 사람이 허망하게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누구의 잘못인것을 떠나 김천문화예술회관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예술회관측에 잘못이 없을 수 있나요? 이렇게 부실한 무대와 안전의식이 전혀 없는 이 곳에서 앞으로도 다른 공연들을 올릴 생각이신가요? 이번일에 대해서 잘못 인정하고, 관계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제대로 책임지세요!”라고 적고 있다.

“한 소녀가 꿈을 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라는 위 모씨의 글은 “공연법 제11조1항 (공연장운영자는 화재나 그 밖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그 공연장 종업원의 임무ㆍ배치 등 재해대처계획을 수립하여 매년 관할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재해대책계획서는 제출하셨습니까? 제출했다면 사고 직후 매뉴얼대로 대응하였습니까? 공연법 상 공연장 운영자는 실내,외 혹은 객석 규모 별로 안전관리조직을 설치해야 됩니다.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900석 가까이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객석 수가 500석 이상 1천석 미만인 경우 안전총괄책임자 1명 및 안전관리담당자 1명 이상을 두어야 합니다. 그대로 두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안전교육은 제대로 했습니까? 안전교육은 수립된 재해대처계획에 따라 해야됩니다. 했다면 어떤 안전교육을 했습니까? 안전교육의 대상자별 시기와 교육시간은 법률 대로 지켰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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