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타오름에 의해 존재하고, 교회는 선교사명에 의해 존재한다." 에밀 브루너의 말이다. 이 말은 선교사명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의 시각은 옳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생존하는 이유는 선교에 있다.

이 선교 사명은 놀라운 현상을 일으켰다. 중동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소수의 하층민과 함께 시작된 교회는 온 세상에 퍼져 나갔다. 오늘날 '세계적 종교들'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세계의 종교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분포 범위가 범세계적인 종교는 기독교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외에도 불교와 이슬람교가 있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아직 발생 지역 밖의 문화들 속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지는 못했다. 세상의 주요 문화 속으로 뚫고 들어간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뿐이다.

예수님은 교회의 선교사명을 여러 가지 은유로 말씀하셨다. 빛, 소금, 누룩이 가장 두드러진 은유이다. 표면상으로 서로 판이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세 가지 은유에 침투 개념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빛은 어둠에 침투하기 위해 존재하고 소금은 고기에 침투하기 위해 존재하며, 누룩은 반죽에 침투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린 세상에 침투하기 위해 존재한다. 침투의 직무를 수행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침투는 한 문화 속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들어가 결국 다른 문화를 지배하는 침투가 아니다. 우리의 할 일은 단순하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복음과 그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것뿐이다.

그 때 하나님은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을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한다. 우리가 이 직무를 수행할 때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의 문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선언한다. 선교 사명을 수행할 때 우리는 하늘의 보화와, 그 보화를 담고 있는 질그릇을 항상 구분해야 한다(고후 4:6∼7). 하늘의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질그릇은 우리의 육체이며 또 그 보화를 감싸고 있는 문화, 즉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체제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질그릇이 아닌 보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그릇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방해하는 짓이다. 문화적 개종은 사람들을 더욱 노예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제국주의를 배격하고 겸손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어느 곳에나 존재하시며 어둠의 권세를 정복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안겨주시는(요 1:1∼14), 바로 그 예수를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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