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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교회,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

사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요한계시록 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   /천헌옥

‘남은 자’ 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 강가와 산기슭에 위치합니다. 사데 앞으로는 팍톨루스(Pactolus)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과 산 사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데의 지정학적 위치는 이 도시를 난공불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천혜의 난공불락의 산 위에 리디아의 수도를 건설하여 외적의 침략 걱정 없이 리디아 왕조들은 안락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사데의 역사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기게스 왕조의 5대 왕인 크로이소스(Croesos)가 왕이 되어 편안히 지내고 있을 때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리디아를 침공합니다.

사데는 큰 분지와 넓은 평원으로 이뤄지는 곳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해발 250m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좁은 입구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곳에 페르시아(바사)군이 14일간 포위하고 있었으나, 입구를 찾지 못하여서 침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철벽과도 같은 지형에 안심하며, 사데 왕과 백성들은 싸움에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입구에만 군인들을 매복시켜 두고는 오히려 해이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데 지역 언덕에서 무엇이 떨어졌는데, 성벽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사데 병사 한 명이 졸다가, 쓰고 있던 투구를 절벽으로 떨어뜨린 것이었습니다. 사데 병사는 적을 의식하지 못하고 오직 잃어버린 투구를 찾을 생각으로 성벽 아래로 뚫린 비밀구멍으로 내려와 투구를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그것을 본 페르시아 군사는 고레스 왕에게 보고하였고 그날 밤 정예 병사들을 취약점인 그 구멍으로 올려 보내 성문을 열게 한 후, 난공불락의 성 사데를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당 안에서 우리는 잠깐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이후 사데는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로 더욱 번성하게 됩니다. 수도인 수사에서 사데까지 2,703km 길이의 페르시아 ‘왕의 대로’(King’s Way)가 만들어지면서, 이 도로를 이용해 동서 무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BC 334년,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에 이어 버가모(Pergamon) 왕국, 그리고 로마에 의해 각각 차례대로 점령되었습니다. BC 17년에는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원조로 재건됩니다. 하지만 옛 영광의 모습과 도시의 중요성은 되찾지 못했습니다.

‘황금의 도시’라 불린 사데(Sardis)는 그 별명처럼 화려하고 부유했던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한때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였습니다.

사데교회 앞에서 참빛교회 김윤하 목사와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불렸던 사데교회, 그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도시들이 대부분 밟았던 전철 같이 사데교회도 역시 동일하게 형식은 살았으나 실질적 내면의 신앙은 죽은 교회로 전락하여 회개하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사데교회를 더럽혔는지는 모릅니다. 물질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데가 멸망할 때와 같이 교회를 지키는 파숫군이 조는 틈을 타서 작은 구멍으로 마귀가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회가 다 썩고 부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은 그래도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고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흰옷을 입히고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사데교회에 가는 길목에 뽕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옛날 유대 땅에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도 저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 본 사데교회는 신전 뒤에 조그마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사실은 대지진으로 인해 신전이 파괴된 다음 신전 뒤에 조그마하게 교회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미래를 내다본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시대에 와서 신전을 복원하다보니 사데교회당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신전 뒤에 있어서 살아남은 듯합니다.

뽕나무가 얼마나 큰지 멀리서도 위용이 당당합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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