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의 정신이 필요하다

천헌옥 목사(본사 전 편집인)

여러 가지 일이나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사람, 그것도 지난 지 한 참이나 오래된 옛날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오늘의 사회에서 그런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가 매력을 느낀 사람은 1689년에 태어나 1755년에 사망한 몽테스키외라는 사람이다.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늘 한 두 가지 정도만 말해 보려 한다.

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 그의 전체 이름은 샤를-루이 요셉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이다. 이름이 특이하여 전체 이름을 부르다가는 숨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긴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몽테스키외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한참이나 길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기를 감추기에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들어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

페르시아인의 편지, 국왕과 교황을 풍자

그래서인지 그는 젊을 때 자기를 감추고 무려 8판의 책을 익명으로 써서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책은 바로 [페르시아인의 편지]였는데, 이 책은 서한체로 쓰인 일종의 소설로 페르시아인의 눈과 입을 빌려 1710-20년대의 프랑스 파리의 생활방식을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에서 그 당시 사회를 움직이는 우두머리는 두 마술사라면서 “한 마술사는 아무 적대감 없이 사람끼리 서로 죽이게 하는 힘을 지닌 마술사”인데, 이는 누가 봐도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 14세를 가리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또 다른 마술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3은 1과 같고 그들이 먹는 빵은 빵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마술사인데, 이도 누구든지 교황을 빗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신부의 독신 서약으로 인해 국가의 인구 감소를 초래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 행복에 대한 부정적인 가르침으로 인해 국부의 증가를 저해하고 그 완고한 개종주의로 인해 공민 정신을 교란시킨다는 등등의 이유로 가차 없는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샤를-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When the legislative and executive powers are united in the same person, or in the same body of magistrates, there can be no liberty; because apprehensions may arise, lest the same monarch or senate should enact tyrannical laws, to execute them in a tyrannical manner. -“Charles de Secondat, Baron de Montesquieu (2015). “The Spirit of Laws”, p.206, Library of Alexandria.

이 책 초판이 익명으로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이에 힘입어 일 년 안에 무려 8판까지 발행되는 기염을 토하여냈다. 사람들은 매우 가볍게 책을 읽었고 어떤 이는 경박한 흥미 위주의 책이라고 치부하기도 했지만, 몽테스키외는 저서를 통해 자기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안정적 사회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발전했던 것과 같은 시민적 도덕을 전제로 한다'는 사상이다. 이때 몽테스키외는 지극히 위험한 사회 비판가란 정평을 얻기도 하였다. 그것은 사회를 바꾸어 보고자 했던 그의 집념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내는 사상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주저인 [법의 정신]을 쓰기 위한 도입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였을 때, 저자의 정체를 추적하여 찾아내고 그를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지명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726년 몽테스키외는 회원으로 선출되지만, 국왕은 아카데미 규칙에 따라 그가 파리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준을 거절한다. 그러자 몽테스키외는 거주지를 파리로 옮겼고 1728년에 다시 한번 선출과정을 거쳐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가입한다.

오늘 우리는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몽테스키외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읽는다. 우리 사회의 정치 문화, 그리고 종교를 돌아본다. 과연 세월이 지난 오늘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몽테스키외가 지금 한국에 일 년을 체류하였다면 어떤 풍자적 글을 썼을 것인가? 우리에게는 어찌 그런 글쟁이가 없는지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에 대한 매력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해 유럽 전역을 장기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비엔나, 헝가리, 베니스, 플로렌스, 나폴리, 제노아, 로마 등을 거쳐 1729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18개월을 체류하면서 정치가들과 교분을 쌓았고 많은 글들을 읽고 또 엄청난 양의 여행기록을 남겼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법의 정신, 사법부의 독립

그리고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집필에 몰두하였는데 1734년 펴낸 자신의 주저 <로마인의 위대함과 그 쇠락의 원인에 대한 고찰> 및 31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저서 <법의 정신>을 펴낸다. 두 책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동일한데, 그것은 민족의 복리와 고통을 좌우하는 역사의 결정적 계기란 통치자 개인의 의지나 자의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상태 전반의 본질이라는 사상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와 법률은 임의로 만들어 내고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토양과 기후, 풍습, 교양 및 종교와 같은 자연적, 역사적 조건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올바른 법이란, 개별 민족의 성격과 역사적 발전 상태에 가장 적합한 법을 말한다.

로크가 행정권과 입법권의 엄격한 분립을 주장하였다고 하면 몽테스키외는 이에 더하여 제3의 권력으로 사법권을 추가하여 말한다. 그의 주안점은 행정권과 사법권이 일인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 있기보다는 두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독재가 발호하고 자유가 말살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늘 우리 정치 사회를 바라보면서 몽테스키외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모두가 일인만 쳐다보는 사회에서 몽테스키외의 소리를 지를 자가 등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인의 입만을 주시하는 정치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고통을 받게 되어 있고 신음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 정치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 사회는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불행한 사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막아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걷어내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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